교통사고가 나면 뼈나 근육 이상만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생명을 좌우하는 대동맥의 상처 여부 확인이 우선시돼야 한다.
유명을 달리한 최모(83)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필자의 병원 응급실에 급히 실려온 최씨는 이미 대동맥이 파열돼 출혈이 심각한 상태라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평상시처럼 길 건너 슈퍼마켓에 다녀오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자가용에 치는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 당시 지정 병원에서 진단받을 때는 늑골과 골반 골절만 발견돼 수술은 하지 않고 안정 치료만 받은 뒤 퇴원했다.
문제는 몇 달 뒤 대동맥이 파열되면서 시작됐다. 환자와 보호자는 사고 직후 골절 치료에만 신경 쓰다 더 큰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몰랐다. 대동맥 등 심혈관계 이상의 가능성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 결과는 명백히 달랐을 것이다.
대동맥 자체에는 그것을 지탱해줄 특별한 해부학적 구조가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교통사고나 산업현장에서의 사고 등으로 대동맥에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미세한 상처가 날 수 있는데, 이를 대동맥 박리(Traumatic Dissection)라고 한다. 이 상처가 대동맥의 강력한 혈압과 혈류를 견디지 못하고 파열로 이어지면 응급처치 여부와 관계없이 환자의 80% 이상이 사망한다. 교통사고 관련 사망자의 20%가량이 대동맥 손상과 관련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외상성 대동맥 박리는 가슴에 큰 충격이 가해지는 사고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안전벨트도 이를 모두 예방하지는 못한다. 대동맥이 파열되면 대개 심한 흉통이 동반되지만, 큰 사고 직후이기 때문에 이를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복합적인 부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의료진조차 여러 가능성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대동맥에 대해서는 놓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진단은 일단 X레이 촬영으로 시작하지만, 대동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대부분 CT 같은 검진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대동맥에서 아주 작은 상처만 확인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를 무심히 지나쳐선 안 되며, 상처 부위와 크기에 따라 즉각적인 치료 및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교통사고 등으로 큰 신체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나 그 가족이라면 골격계와 신경계 이상 여부에 대한 관심은 물론, 대동맥 등 심혈관계의 치명적 이상 여부를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 이에 대한 전문의의 판단과 권고사항에 대해 신뢰를 갖고 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고로 가슴 부위에 큰 충격을 경험한 환자라면 가슴과 등 위쪽을 중심으로 작은 이상이나 통증, 호흡곤란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결코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이재환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전임을 수료하고 미국 뉴욕 콜롬비아 의과대에서 대동맥 중재술 연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