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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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 침해냐, 가계 통신비 인하냐

휴대전화 제조사 강력 반발…정부는 “유통구조 바로잡는 일”

  • 정호재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3-11-25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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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비밀 침해냐, 가계 통신비 인하냐

    과거에는 스마트폰을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일까, 아니면 이동통신시장에 번거로운 규제 하나가 더해지는 것일까. 올해 말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 하나에 국내 이동통신 업계와 정보기술(IT)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닌 국내 스마트폰 제조산업이 순식간에 붕괴한다는 것이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제조사의 논리다. 반대로 정부(특히 미래창조과학부)는 급증하는 가계 통신비를 잡고 복잡한 유통구조를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반박한다. 정부와 제조사 간 긴장감이 높아지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오랜만에 정부 방침에 조심스럽게 힘을 더한 모양새다. 줄임말로 ‘단통법’ 혹은 ‘단유법’으로 부르는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안)이 갈등 한복판에 서 있다.

    또 다른 논란 ‘제조사 보조금’

    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 전, 지난 1~2년 사이 반복적으로 불거진 휴대전화 보조금 이슈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호갱님(호구+고객)’이라는 비속어를 시사용어로까지 격상시킨 ‘17만 원 스마트폰’ 얘기다. 90만 원을 넘나드는 최신형 스마트폰이 일부 인터넷 카페나 지방 대리점에서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팔리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과거와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휴대전화 보조금은 몇 년 전만 해도 이동통신사들의 독무대였다. 이동통신 3사가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경쟁사의 고객을 번호이동을 통해 빼앗는 것이 유일했다. 이를 위해 최신 휴대전화를 정가보다 싸게 팔아 젊은 이용자의 환심을 사는 보조금을 만능열쇠로 활용했다. 이에 정부는 이동통신사의 (과잉)보조금을 불법으로 보고 정기적으로 단속에 나서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2012년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이 커지면서 보조금 지급이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먼저 100만 원 내외의 고가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소비자는 이 같은 신제품에 열광하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또 국내 제조사들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신제품 생산 주기를 전례 없이 단축해나갔다. 결과적으로 이는 이동통신시장의 주도권이 이동통신사에서 제조사로 넘어가는 계기로 작용했다.



    최신 스마트폰의 가격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조사 보조금’도 질과 양을 늘려갔다. 오랜 기간 이동통신사 보조금과 싸워온 정부는 최근에는 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보조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 식의 ‘차별적 대우’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영업비밀 침해냐, 가계 통신비 인하냐

    이계철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3월 14일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이동통신 3사의 보조금에 대해 총 53억1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결정을 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위). 올해 초부터 이동통신사들은 LTE 가입자 확보 및 유지를 위해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무료 음성통화 서비스와 망 고도화, 브랜드 마케팅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라는 제조사가 1년에 2차례 신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에 내놓는 가격(출고가)이 모두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휴대전화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신제품이 나오면 구제품은 가격 하락 폭이 무척 크다. 제조사는 신제품이 앞으로 몇 대 팔릴지 예상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휴대전화는 각 이동통신사의 주파수 특성, 전용 응용프로그램 설치, 디자인 등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한다. 많이 만들면 원가 절감에 좋지만 막상 만들고 팔지 못하면 모두 악성 재고로 변한다.

    보조금 문제는 100만 원짜리 스마트폰 A1을 내놓은 뒤 6개월마다 신제품 A2, A3를 내놓았을 때 생긴다. 이 경우 A1은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제조사는 대리점이나 양판점 등에 보조금(혹은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제조사의 보조금 액수는 이동통신사별 재고 물량이나 판매량 추이, 또는 신제품과의 경쟁력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각 판매점과의 계약 대수와 실적, 심지어 친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판매 장소와 시기별로 각각 다른 액수가 보조금으로 지급돼온 것이다.

    확실한 점은 각 제조사가 생존 기간이 짧아진 고가 스마트폰의 판매를 촉진하려고 시간이 지날수록 출고가의 상당액을 영업망에 환급해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국내 이동통신시장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판단이다. 이동통신 상품 구매자는 대부분 제조사나 이동통신사가 주는 보조금 액수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매자의 속임수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신제품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 고객은 ‘100만 원’으로 표시된 구제품을 정가 그대로 구매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인터넷 거래에 밝은 일부 젊은 층이 보조금 혜택을 독식한다는 게 미래부의 설명이다.

    미래부 “차별적인 보조금 없애야”

    정부가 준비한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은 이 같은 폐해에 집중한다. 100만 원에 출고된 A1 제품의 판매가격이 전국적으로 80만 원→60만 원→40만 원 등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조사 및 이동통신사) 보조금 공시를 통해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자는 취지다. 이렇게 정보가 투명해지면 소비자 처지에서는 스마트폰 판매점을 마음 편히 찾을 수 있어 소비 진작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해외 스마트폰의 국내 유입도 활발해져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보조금 지급 명세와 단말기 판매량, 출고가 등을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제조사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교체 주기가 빠른 한국 시장의 보조금 지급 여부가 해외 시장에 알려질 경우 정상적인 영업이 힘들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렸다. 관련 업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판매량이 급감하고 영업비밀 침해까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휴대전화 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실제 시행되면 국내 휴대전화시장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과잉 규제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는 제조업체에 과연 어떤 도움이 될지 살펴봐야 한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 법안이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모두 견제하는 듯하지만, 사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은 상당 부분 공개된 상황이라 결국 제조사 보조금만 겨냥한다는 불만도 내비친다.

    이동통신사들은 이번 법안이 궁극적으로는 이동통신시장을 정상화한다는 측면에서 반긴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제조사에 빼앗긴 이동통신시장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동통신사들이 이 법안을 반긴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동통신시장이 획기적인 규제가 필요할 정도로 비정상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소비자 모두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11월 18일 미래부의 법안 설명회에 나선 홍진배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우리나라 가계 통신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세계 3위 수준이며, 심지어 단말기 교체 주기(16개월)는 세계 1위 수준”이라면서 “과다하고 불투명한 보조금 경쟁을 잡을 수 없다면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하나인 ‘가계 통신비’ 인하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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