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판매 촉진 전략으로 할인행사를 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이용한 것이다. 한 백화점 세일 기간에 몰려든 쇼핑객들.
노후에 대한 대다수 사람의 인식 구조는 ‘당위론과 현실론의 갈등’이다. 즉, 당위론적으로는 노후에 대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현실적인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적다. 소비를 줄이면 현실의 생활이 고통스럽고, 자녀 교육비를 줄이자니 마음이 불안하다. 고통과 불안감을 최소화하면서 저축이나 투자액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심리학과 경제학의 융합 학문인 행동경제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상황마다 최적의 판단을 내린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경제적 동물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살면서 느끼는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과 행위는 때때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 바로 호모 이코노미쿠스이다.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노후에 대비한 저축이나 투자액을 늘릴 수 있다.
먼저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뮤지컬을 보려고 15만 원짜리 티켓을 샀다. 그런데 공연장에 도착한 순간 티켓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갑에는 티켓을 다시 살 돈이 있다. 티켓을 다시 사겠는가, 아니면 포기하겠는가.’
마음의 회계장부와 노후 준비 계정
이번에는 바뀐 상황이다.
‘뮤지컬을 보려고 티켓을 알아보니 15만 원이다. 현장에서 티켓을 사려고 공연장에 도착한 뒤 보니 15만 원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 티켓을 살 돈은 충분하다. 티켓을 사겠는가, 아니면 관람을 포기하겠는가.’
아마 사람은 대부분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다시 사지 않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두 번째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12%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왜 대부분 첫 번째 상황에서는 포기하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티켓을 매입했을까. 바로 마음속에 다른 계정(account)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뮤지컬 관람 계정’에서 티켓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계정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에서는 뮤지컬 관람 계정이 아닌 다른 계정의 돈이었기 때문에 그 돈을 빼내 티켓을 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회계장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이 재무제표에서 각 계정을 통해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듯이 인간도 마음속에 회계장부를 두고 재산을 평가하거나 조합한다.
마음속 회계장부는 때로는 불리하게, 때로는 유리하게 작동한다. 공돈이 생기면 펑펑 써버리는 것이 전자의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마음속에 노후자금이라는 계정을 만든 뒤 거기에 돈을 넣어두면, 사람들은 잘 인출하지 않는다. 게다가 세제혜택으로 중간에 해약하면 손해가 막심할 경우 더더욱 빼서 쓰질 않는다.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계좌 같은 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노후에 대비한 저축을 늘리고 싶다면, 하루빨리 마음속 회계장부에 ‘노후 준비 계정’을 만들고, 거기에다 꼬리표를 붙여두자.
마음속 회계장부의 부정적 측면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망설이기 전략’이다. 연말정산 환급금, 성과급 등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겼을 때 이를 ‘기타 계정’으로 분류하면 돈을 쓰게 된다. 어디에 쓸까 고민하지 말고, 일정 기간 돈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일정 금액을 노후 준비 계정으로 옮겨놓자.
다시 질문 하나.
‘마을 주민 600명이 전염병에 걸렸다.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 다음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A. A치료법을 쓰면 200명을 살릴 수 있다.
B. B치료법을 쓰면 600명 모두 구할 확률은 3분의 1이고, 아무도 구하지 못할 확률은 3분의 2이다.
다시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C. C치료법을 쓰면 400명이 죽는다.
D. D치료법을 쓰면 아무도 사망하지 않을 확률은 3분의 1이고, 600명이 모두 사망할 확률은 3분의 2이다.
프레이밍 효과와 손실회피 심리
행동경제학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
‘죽는다’는 표현보다 ‘산다’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는 손실회피 감정과도 관련 있다. 사람은 ‘산다’는 것을 ‘이익’으로 여기고, ‘죽는다’는 것을 ‘손실’로 여긴다. 손실회피 감정이란 이익보다 손실에 2배 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적 편향을 의미한다. 이런 심리는 왕왕 과소비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살 때 3000만 원짜리 풀 옵션 자동차를 300만 원 할인받는 경우와 기본 2400만 원에서 300만 원짜리 옵션을 추가하는 경우, 어느 쪽이 더 싸게 느껴질까. 같은 금액이지만 할인받는 쪽이 더 저렴하게 느껴진다. 할인을 이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판매를 촉진하려고 쓰는 할인전략은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이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할인된 물건을 사면 이익인 것 같지만 때때로 과소비를 부추기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손실회피 감정은 잘못된 투자 의사결정을 낳기도 한다. 주식에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A주식과 B주식은 수익이 플러스이고, C주식은 마이너스이다. 돈이 필요해 주식을 팔아야 한다면 어떤 주식을 팔겠는가. 대부분 A와 B를 선택한다. 마음속 계정에 A와 B와 C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또 손실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수익이 난 주식을 매도한다.
그러나 테렌스 오딘 UC버클리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손해가 난 주식을 파는 것이 수익률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런 심리적 편향을 막으려면 ‘전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행동경제학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글로벌 관점을 가져야 하다”고 조언했다. 여기서 글로벌 관점이란 전체적인 관점을 의미한다. A와 B와 C를 개별적으로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덩어리, 즉 포트폴리오로 바라보고, 전체 수익률로 환산해서 보라는 것이다. 글로벌 관점을 가지면 손실회피 감정으로 인한 잘못된 투자 의사결정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손실회피 감정을 긍정적으로 역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노후에 대비한 저축을 할 때 노후에 대한 부정적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된다.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 저축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컵에 물이 반밖에 안 차 있느냐, 반이나 차 있느냐’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의미한다. 시각의 차이는 작은 것 같지만 그것이 돈에 적용될 때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행동경제학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