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를 통해 인간 수명이 언제쯤 끝날지 추론할 수 있다. [GettyImages]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활동성을 잃고 언젠가는 멈춘다. 죽음의 정의는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변화했지만, 간단하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생물학적 기능의 중지라고 하자. 그렇다면 무시무시한 죽음에 언제쯤 도달하게 될지를 미리 알 수도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러한 정보가 적혀 있는 곳이 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 성격, 지능 등을 갖고 태어나는데, 그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정보 기반의 설계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걸 우리는 DNA라고 부른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DNA’에서 혈관 속에 있다던 바로 그것이 맞다.
DNA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화학구조가 바뀌는데, 이걸 통해 인간 수명이 언제쯤 끝날지를 연구한 결과가 있다. 가장 간단한 탄소 화합물 중 탄소 하나에 수소 4개가 붙어 있는 메탄이라는 녀석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작용기 중 하나를 메틸기라고 부른다. 이게 DNA에 달라붙으면 DNA 메틸화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염기서열 부위에 달라붙으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메틸화 현상을 분석하면 포유류의 노화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 중 하나인 개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기 위해서는 흔히 7을 곱하면 된다고 알려져 있다. 3세가 된 개는 인간으로 치면 21세 정도이며, 개가 만약 12세라면 84세 노인과 비슷한 것이다.
인공 장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2019년 미국 과학자들은 DNA 메틸화를 적용해 새로운 나이 환산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개는 어릴 때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천천히 늙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가 3세라면 이미 40대 후반이지만, 12세라고 해도 인간으로 치면 70세 정도라는 것이다. 개뿐 아니라 사람도 얼마나 늙었는지 이렇게 정밀하게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남아 있는 수명도 알아낼 수 있다. 물론 질병이나 사고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변수는 배제해야 한다. 호주 과학자들은 척추동물 252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한 결과 최종적으로 인간의 자연수명은 38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환경이 개선되고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 원시인은 자연수명대로 사망했으나, 21세기 인간은 80세를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선다. 2016년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과학자들은 기록상 보고된 최고령 사망 나이 정보를 토대로 최대치에 도달한 인간 수명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인간은 한계를 넘어서는 삶의 기간을 영위했고, 그렇게 계산된 최대 평균 수명은 115세, 절대 한계 수명은 125세라는 결론이었다. 자연수명에 비하면 분명 짧은 수명은 아니지만, 막상 한계라고 하니 오기가 생긴다. 혹시 과학기술을 이용해 그 이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새로운 몸’일 것이다. 유전자가 정해놓은 자연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영혼까지 끌어올려 살아도 125세라는데,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그 이상 몸을 고쳐 쓰는 건 무리다. 자동차도 어느 정도 되면 부품이나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빈티지 자동차의 경우 외관은 고풍스럽더라도 엔진룸 덮개를 열면 내부는 완전히 새것일 개연성이 크다. 우리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는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비록 거죽은 늙었더라도 장기(인공 장기)는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 ‘로보캅’의 주인공은 사이보그다. 뇌 등 주요 장기를 제외하고 몸 대부분이 기계장치로 교체돼 남아 있는 생체 비율이 매우 낮다. 그 대신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공 장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익숙하게 떠오르는 대상은 아마도 이런 사이보그일 것이다. 물론 장수를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보니 인공 장기를 통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분야는 기계식 인공 장기가 아니라, 세포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 인공 장기다. 로보캅처럼 불의의 사고로 손상됐거나 만성질환으로 기능이 쇠퇴한 몸속 조직과 장기를 새롭게 교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비슷한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많은 연구진이 피부나 각막 같은 조직은 물론 심장, 폐, 췌장 등 다양한 장기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성과를 보이는 것이 이종장기 분야다. 인간 장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고, 윤리적 문제도 고려해야 해 인간이 아닌 동물 장기를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동물의 장기를 가져다 쓸 수는 없으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장기를 가진 영장류가 후보로 올라왔지만, 그동안 비용이나 관리 측면에서 연구가 쉽지 않았다. 그 대신 인간이 이미 많이 키우고 있고, 새끼도 많이 낳으며, 장기 형태도 영장류 못지않게 인간과 유사한 돼지가 실험 대상으로 뽑혔다. 이제 돼지 장기가 인간 몸에 들어갔을 때 발생할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거부반응인데, 장기를 몸에 이식하는 순간부터 장기가 괴사하기도 하고, 혈액이 돌면서 혈관이 망가지기도 한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거부반응의 원인을 제거할 수도 있지만, 삭제된 유전자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사람의 몸에서 얻어낸 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꾸고, 이를 시험관 속에서 배양해 안전한 장기를 만들어내는 세포 기반의 인공 장기 기술도 나오고 있다. 상태가 안 좋은 장기에서 건강한 세포만 골라 인공 배양한 후 3D프린터로 장기를 찍어내는 바이오 프린팅이라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영화에서는 기대했던 것과 다른 형태로 인공 장기 기술이 발전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성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최대의 삶보다 중요한 건 최선의 삶
최근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에는 인공 장기로 152세까지 거뜬히 산 인물(설리번)이 등장한다. [넷플릿스 홈페이지 캡처]
광활한 우주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비하면 인류는 찰나를 산다. 수명을 몇 년 늘린다 해도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수명을 늘리는 데 집중하느라 늘어난 수명만큼의 시간을 쉽게 지나쳐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오래 사는 최대의 삶보다 더 중요한 건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사는 게 아닐까.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