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를 모은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 ‘범 내려온다’의 한 장면(왼쪽). 박범계 법무부 장관.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캡처, 동아DB]
추윤(추미애-윤석열) 배틀 2회전을 연상케 한 박신(박범계-신현수) 배틀이 싱겁게 봉합됐다. “신현수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티타임에 참석해 거취를 일임하고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도 참석했다”는 청와대 설명대로 “박범계 장관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라던 신 수석은 싱겁게 사의를 접어버렸다.
실패한 신현수의 항명
그의 항명은 절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휴가 기간에 법무부 측과 검찰 중간 간부 인사안을 협의해 ‘윤석열 검찰’ 바람대로 권력 핵심부를 수사하는 이들을 유임시켰다. 하지만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연구관에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직을 부여함으로써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조사한 검찰 수사팀을 수사해 기소할 수 있게 했다. 좌천된 특수수사 검사와 공안 검사들을 요직으로 복귀시키지 못하고 검찰개혁 태스크포스팀(TF)을 만들게 했다. 정작 여당은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려 한다.“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여권 내에서 현저한 시각차가 드러났으니 불안한 동거에 들어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렸으니 후임자를 물색해 신 수석 교체로 갈 것이다”라는 예측이 나온 데 주목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 수석 복귀를 위해 애썼을 뿐인데, 곧바로 이런 전망이 나온 것은 신 수석은 물론이고 대통령에게도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 때문에 참는다며 윤 총장이 퇴임하는 7월을 의식해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한민국의 핵심 권력 자산은 군과 검찰 등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을 통해 군을, 민정수석을 통해 대검찰청과 경찰청·국세청·국가정보원을 은밀히 통제한다. 군 위에는 국방부 장관, 검찰청 위에는 법무부 장관, 경찰청 위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국세청 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지만, 이들은 권력기관 통제에서는 ‘얼굴마담’인 경우가 많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청와대 조직을 통해 권력기관부터 틀어쥐려 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흔들기’를 해 수뇌부를 바꾸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등을 만들어 권력기관을 흔들며 장악해 들어갔는데, 검찰개혁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래서 과거사위를 움직여온, ‘숨겨놓아야 할’ 권력인 민정수석(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런데 검찰이 그를 ‘찌름’으로써 더 큰 사달이 났다. 문재인 정부는 징계에도 실패하자 윤 총장 포용 쪽으로 돌아섰다. 윤 총장이 “형”으로 부른다는 대학·검찰 선배인 신현수 씨를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한 것이다.
文, 여당 압박에 검찰 인사 재가?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동아DB]
박범계 장관은 호시탐탐 윤석열 퇴임 후 대검찰청 장악을,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가수사본부로 쪼개지는 경찰청 통제를, 노련한 정치인인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정원 지배를 노릴 수 있다. 관료 출신인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정도만 국세청 직접 통제를 피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일어나게 마련인지라, 청와대는 몰래 통할 수 있는 사람을 해당 조직에 심어놓는다. 이들을 관리하는 자리가 민정수석이다. 민정수석이 흔들리면 이들은 힘과 역할을 바로 잃어버린다.
신 수석이 윤 총장의 요구를 들어주려 한 것은 문 대통령의 검찰 통제를 돕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윤 총장 고립 인사를 재가한 이유는 여당의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 여당은 박주민 의원 주도로 검찰을 무력화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 제정을 6월 중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려면 대통령과 대검찰청 사이는 멀어져야 한다.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직후인 2월 10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출신 최재성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은 민주당 윤호중 의원(법사위원장)과 정청래 의원을 만났고, 검찰 중간 간부 인사안을 만들던 2월 18일에는 박범계 장관이 같은 당 윤호중 의원, 김종민 의원을 만나 신 수석의 사의에 관해 논의했다. 이는 민주당이 신 수석 사의에 적극 대응했다는 뜻이다. 신 수석 복귀로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자 “후임 물색 후 신 수석을 교체할 것”이라는 의견이 번져나갔다.
21대 총선이 1년가량 지난 지금 대통령과 여당을 하나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힘은 공천권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여당 후보 공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임기 말 여당과 대통령은 분리되게 마련이다. 아쉬운 쪽은 문 대통령이다. 여당도 문재인 정부가 잘해야 프리미엄을 얻지만, 문 대통령은 180석을 가진 여당의 도움이 없으면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 없다.
文, 여당 통제 가능할까
신 수석을 임명해놓고도 문 대통령이 박범계 장관 인사안을 재가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문 대통령의 여당 통제가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레임덕은 야권이 아니라 여권 인사들에 의해 발생한다. 이를 줄이려면 4대 권력기관을 통해 여당 실력자들을 감시해야 하는데, 그것을 지휘할 민정수석이 무력화됐다. 오히려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그 기관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의 분석을 들어보자.
“신 수석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여당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 수석의 복귀로 그러한 기회마저 잃게 됐다. 문 대통령은 여당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여당 지지층 덕분이었다. 신 수석 사태를 계기로 지지층을 거느린 여당 실력자들이 앞에 나서게 됐다. ‘범이 내려오듯 당(黨)이 내려오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당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국정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여당의, 여당을 위한, 여당에 의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