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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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쇼’ 끝난 한반도… 베트남 모델이 북핵 해법

‘체제 보장’ 속 단계적 핵 폐기로 親한국·친미 정권으로 진화시켜야

  •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입력2021-03-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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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AP=뉴시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AP=뉴시스]

    향후 북·미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북한이 미국의 전향적 태도를 압박하고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경우다. 핵물질에 ICBM까지 보유한 북한은 그 이전과 차원이 다른 상대다. 이 경우 미국이 무력으로 북한을 제압할 수도 있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무력 충돌은 특히 북한과 북한 주민에게 파멸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당장 미국 본토를 겨냥해 ICBM을 쏠 수 없는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한 미군을 공격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현상 유지다.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북한의 궁핍을 장기화할 수 있지만 핵 폐기로 이어지긴 어렵다. 북한이 투발 수단 없이 핵만 보유한다면 미국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는 없다. 미국이 애써 협상에 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제재로 정권이 위협받지 않는다면 자발적으로 핵을 폐기할 동인이 없다.


    한국 들러리 세운 트럼프 대북정책

    세 번째는 북한이 ICBM 개발 등 군사 모험을 삼가고 미국과 ‘단계적 핵 폐기’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협상에 나서는 경우다.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가능한 현실적 선택지다. 다만 양측이 풀어야 할 선결 과제가 있다. 북한은 핵 폐기 협상을 위기 모면을 위한 임시방편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 핵 폐기가 진정성 있는 결단임을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 미국도 핵 폐기 후 북한에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 외교 관계 수립 등 실질적 체제 보장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 미래일까. 필자는 세 번째가 한반도 문제의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한국, 북한에 유익하다고 본다.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동맹국을 존중하며 다양한 국제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오랜 동맹인 한국에 반가운 소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하고 한국을 들러리 세우는 모양새였다. 괄목할 만한 결과도 없었다. 

    미국의 통상적 대외협상은 전문가 그룹 차원의 사전 협의 과정이 그 시작이었다. 실무진이 건설적인 합의에 도달하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나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2018년 이후 진행된 북·미 회담은 미국의 전통적 국제 협상과 많이 달랐다. 최고결정권자가 즉흥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실무자들의 반대로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정치 쇼’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한국을 통해 북·미 관계를 풀어야 한다. 북한의 바람직한 미래 모습은 한국과 경제적으로 교류하고 시장을 공유하는 친(親)한국·친미 국가다. 북·미 관계 진전으로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된다면 그야말로 미국 대외정책 역사에 남을 커다란 성과다.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도 우호국이 된 베트남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北에 우호 메시지 일관되게 보내야

    여기서 한국의 핵심적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은 북·미 협상에서 양측이 모두 신뢰하는 변호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은 한 나라였다. 한국의 대북 정보력과 정보 독해력은 미국을 능가할 수준이다. 국민 상당수가 북한과 교류·협력에 적극적인 편이다. 북한 주민도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 대다수 탈북자는 탈북 후 정착지로 미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다. 그 결과 수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으로 이주했다. 

    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이 취할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서둘러 미국이나 한국의 가치를 전파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요청하는 분야에 대해 상생이 가능한 것은 협력해야 한다. 당장 북한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는 피해야 한다. 교류를 확대하다 보면 북한도 자연스레 한국이 가진 보편적·합리적 가치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테다. 시간문제인 것이다. 

    한국은 북한에 일관된 우호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때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하면서도 소리 없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을 조용히 지원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은 북한에 코로나19 방역 물품과 식량을 대외 공표 없이 무상 지원했다. 북한도 중국에 여러 경로로 사의를 표했다. 다만 교류에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한국이 북한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내용을 서류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가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김형덕은… 1974년 북한 자강도 희천시 출생. 1993년 북한을 떠나 이듬해 9월 8일 한국 입국. 2001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1년 북한 이주민 최초로 국회의원 정책비서 활동. 2017~2019년 민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정책자문위원. 현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한국자유총연맹 전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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