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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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 후원회 봉투 열렸다

국회의원 너도 나도 때아닌 책 출간…사실상 ‘정치자금’ 1억 원 안팎 모금 기회로 활용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11-07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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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기념회? 후원회 봉투 열렸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몰린 인파(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19대 총선을 5개월 앞둔 2011년 11월, 국회에는 때아닌 ‘출판기념회 붐’이 한창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18건이었지만, 올해는 10월 말까지 32건이 열렸다. 연말까지 10건 이상의 출판기념회가 예정돼 있다. 국회의원회관 게시판은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포스터로 가득하다. 정쟁이 끊이지 않는 국회지만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벽보에서만큼은 여야는 물론, 초·재선 구분도 없다. 의원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기 때문이다.

    책값 명목 비공식 후원금 거둬

    의원이 의정활동 경험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의정활동 성과와 소신을 밝히는 행위는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출판기념회를 빙자해 ‘편법으로’ 정치자금을 모은다는 점이다.

    2004년 소액 다수 후원자로부터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한 이후 기부금품 모금을 위한 집회(후원회)는 금지됐다. 그러나 ‘청목회 사건’ 이후 소액 후원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국회 보좌진의 한결같은 얘기다. 청목회 사건은 청원 경찰 친목모임(청목회)이 청원경찰법 제정을 위해 회비를 거둔 다음 이를 10만 원씩 쪼개 일부 국회의원에게 후원한 것을 두고 검찰이 ‘입법 로비’라며 수사한 사건을 말한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10월 5일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최규식, 강기정 의원에게 각각 벌금 500만 원과 90만 원을 선고했다. 이명수, 조진형 의원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민주당 K의원실 보좌관은 “청목회 수사 이후 같은 회사나 단체에서 다수가 10만 원씩 쪼개 후원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토가 생겨났다”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의원 ‘돈가뭄’ 시달려

    출판기념회? 후원회 봉투 열렸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출판기념회가 9월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소액 다수 후원을 적극 유치하지 못하면서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돈가뭄’에 시달린다. 의원은 매년 1억5000만 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거둘 수 있다)까지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후원금 1억 원을 넘기기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야당 중진 J의원실 모 보좌관은 “1억 원 가까이 (정치자금을) 모은 우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연말이 다가오는데 지금껏 3000만 원에서 4000만 원 정도밖에 모으지 못한 의원도 많다”며 얼어붙은 의원회관 분위기를 전했다.

    자발적 소액 다수의 후원자를 찾지 못한 의원이 돌파구로 삼는 것이 바로 ‘출판기념회’다. ‘책’을 매개로 지지자를 끌어모아 세 과시를 할 수 있고, ‘책값’ 명목으로 이른바 비공식 ‘후원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는 외형상 책을 펴낸 출판사가 주최한다. 그러나 형식과 달리 내용 면에서는 사실상 의원의 ‘후원금’ 모금 행사인 경우가 적지 않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A씨는 “정치인이 펴내는 책은 1쇄 기준으로 최소 5000부, 보통 1만 부를 찍는다”며 “출판기념회 한 번 하면 대부분 소진된다”고 말했다.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형식상 출판사의 주최 행사라는 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수입과 지출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가 책값을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무상으로 책을 나눠준 경우에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

    일반적으로 의원들도 동료 의원이 여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때는 ‘10만 원’ 정도를 내고 책을 한두 권 받아오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친소관계에 따라 그 액수가 달라진다. 30만 원이나 5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을 책값 명목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출판기념회를 통해 ‘품앗이 후원’을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H의원실 관계자는 “한번은 의원이 동료 의원 출판기념회에 100만 원을 보내라고 해서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적이 있다”면서 “선관위 답변이 ‘통상적 금액이면 상관없지만, 통상적 범위를 넘어서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해를 피하려면 후원금으로 보낸 100만 원어치 책을 다 가져와야 했지만, 그 많은 책을 가져다 어디에 쓰겠느냐”며 “몇 권 받아오고 말았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 후원회 봉투 열렸다
    동료 의원이 보내는 ‘품앗이 후원금’ 외에도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와 관련된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 등에서 책을 대량 구매하는 것도 관행처럼 됐다. 국회 등 대관 업무를 담당하던 B공기업 인사는 “후원회를 할 때는 후원금을 내고 영수증 처리를 했지만, 후원회를 열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책을 산다”며 “우리 회사를 관장하는 상임위 소속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최소 50권, 많게는 100권까지 구매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과 사장의 친소관계에 따라 더 많은 책을 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동료 의원이든 상임위 관련 기관이든 책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하면 기본적으로 책을 쓴 저자(의원)가 챙길 수 있는 인세 수입이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공식적인 수입이다. 또 한 가지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의 일정 부분을 저자인 의원과 출판사가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모 의원실 관계자의 얘기다.

    대부분 출판사에서 기획출판

    “국회의원 책은 대부분 기획 출판을 한다. 출판사는 책을 만들어주는 대신 일정 부수를 의원이 책임져 비용을 보전해준다. 책 한 권 펴내는 데 보통 5000만 원, 많게는 7000만 원 정도 든다. 그런데 출판기념회를 한 번 하면 1억5000만 원에서 2억 원까지 걷힌다. 행사 비용이 어느 정도 들겠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비용 조로 출판사 몫을 제하면 의원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억 원 가까이 된다. 요즘처럼 후원금이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 없다.”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정치자금을 모으기에는 ‘출판기념회’가 안성맞춤인 셈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출판사가 주최하는 출판기념회를 우리가 단속할 권한은 없다”면서 “다만 출판기념회에서 정치인이 무료로 책이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저촉돼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너무 자주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도 사전 선거운동일 수 있어 눈여겨본다”고 덧붙였다.

    출판기념회는 2012년 4월 총선 90일 전인 1월 12일까지 열 수 있다. 정기국회 회기 중인 11월에도 국회에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유독 많은 이유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MB 출판기념회로 명암 엇갈린 두 사람

    선거법 위반 신학수 씨 청와대行 vs 기소한 검찰 간부는 옷 벗어


    출판기념회? 후원회 봉투 열렸다

    (왼쪽) 신학수 민정1비서관 (오른쪽) 박철준 전 대전고검 차장

    이명박 대통령은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두 번 구설에 올랐다. 2007년 대선을 9개월 앞둔 3월에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었던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청중을 동원하면서 교통 편의와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관련자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법상 제3자에 의한 기부 행위 금지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대구지검에 고발된 6명 가운데 5명은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고, 1명은 벌금 50만 원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전지검에 고발된 1명도 벌금 50만 원이 확정됐다.

    또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면서 교통 편의와 식사를 제공받은 39명에게는 모두 3397만9000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대구에서 참석한 24명에게 2728만 원, 대전에서 참석한 15명에게 669만9000원이 부과된 것. 다만 2007년 출판기념회 때는 이 대통령이나 캠프 관계자가 직접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그해 2월 열었던 출판기념회 때는 이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에서 이 대통령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출판기념회 때 총무 구실을 했던 신학수 당시 동아시아연구원 총무부장(현 민정1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저서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7700권을 한나라당 지구당과 교회 등에 무상으로 배포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신 전 부장은 2004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대통령의 출판기념회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은 신 전 부장은 2005년 다스(주)의 아산공장 관리팀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산공장 공장장(이사)을 지냈다. 올해 1월엔 청와대에 입성해 총무비서관을 지냈고, 6월부터 민정1비서관으로 일한다.

    신 비서관이 이 대통령 재임 중 승승장구하는 반면, 2002년 이 대통령의 출판기념회를 문제 삼아 이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던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옷을 벗어 대조를 이뤘다.

    2002년 11월 이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던 이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박철준 부장검사였다. 박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차장과 부천지청장을 지내고 2007년 2월 인사에서 검사장급으로 승진해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맡았다. 그러다 2008년 3월 이 대통령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 인사에서 대전 고검 차장으로 발령나자 사표를 냈다. 검찰 주변에서는 “사시 동기와 후배까지 지검장이나 대검 부장을 맡는데, 후진(後進) 인사를 낸 것은 ‘나가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해석이 많았다. ‘검사는 피의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확인시켜준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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