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배트 잡아본 적 없다”
그가 돌아왔다. 유니폼 대신 ‘나도 짝을 찾고 싶다’고 적힌 파란 재킷을 입고. 9월 4주간 방송된 SBS 짝짓기 프로그램 ‘짝-노총각·노처녀 편’에 출연한 ‘남자 4호’ 최익성은 “평생 기다려준 홀어머니께 더는 불효하고 싶지 않다”며 “10년 안에 2000억 원을 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0월 중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최익성은 1994년 삼성 라이온즈에 연습생으로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11년간 6개 팀에 몸담았다. 2005년 12월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된 이후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 독립리그를 비롯해 멕시코, 베네수엘라, 대만 리그에 진출하고자 노력했다. 끝내 몸담을 팀을 찾지 못한 채 돌아왔고, 2007년 추석 “늙은 아들이 아픈 거 더는 못 보겠다”는 홀어머니의 말에 미련 없이 야구계를 떠났다.
운동선수 재활용 밴드, 일반인에게 전파
야구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그의 인생은 방랑 그 자체였다. 술장사도 했고, 종로 뒷골목 여관에 머물며 친구 가게를 봐준 적도 있다. 한때 강원도 화악산에 올라가 닭을 기르고 고추농사도 지었다. 돈이 있으면 찜질방에서 잤고, 없으면 선후배 집에 신세를 졌다. 낡은 차에서 홀로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다. 야구 코치나 트레이너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수도 없이 받았지만 독한 마음으로 거절했다.
“사흘 전에도 한 프로구단에서 ‘코치로 일할 생각 없느냐?’는 전화가 왔어요. 요즘 프로야구 감독들이 젊어지면서 젊은 코치가 많이 필요해요. 또 나만큼 열심히 트레이닝하고 야구를 사랑한 선수가 없죠(웃음). 하지만 호랑이는 풀을 뜯으면 안 되잖아요. 야구를 버려야 새 인생이 열린다는 생각으로 뒤도 안 돌아봤어요. 은퇴한 이후로는 정식으로 배트 한 번 안 잡아봤습니다.”
그는 2009년 MBC 드라마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까치’ 역을 맡은 배우 윤태영에게 야구를 가르치던 인연으로 캐스팅됐다. 그가 맡은 역은 주연 ‘마동탁’의 룸메이트 선배. 처음에는 별 비중이 없었지만 배역이 점차 커지면서 총 20부작 중 16부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는 “조연배우 중 유일하게 여주인공 김민정과 단독 신을 찍었다”며 뿌듯해했다. 최익성은 이 밖에도 올해 개봉한 영화 ‘굿바이 보이’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연기자 노동조합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기회가 닿으면 진지하게 공부해 다른 작품에도 꼭 출연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두번째 책 ‘0.0069’를 들고 있는 최익성(왼쪽), 그의 자서전 ‘저니맨’.
그가 “2000억 모으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라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10월 6일 RJ컴퍼니에서 발간한 두 번째 책 ‘밴드 테라피, 기적의 10분-0.0069’(이하 밴드 테라피)다. ‘0.0069’란 하루 24시간을 분으로 환산(1440분)했을 때 10분이 차지하는 비율. 즉 하루에 10분만 밴드를 이용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사이에서 알아주는 ‘몸짱’이었다. 야구를 그만둔 지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울룩불룩한 팔 근육 탓에 웬만한 셔츠는 맞지 않고, 탄탄한 허벅지 근육 탓에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없다. 워낙 몸을 아끼지 않고 경기해 부상도 잦았다. 부상으로 재활훈련을 할 때면 늘 밴드를 이용했다.
“역기는 외부 근육을 키워주는 반면 밴드는 탄성을 이용해 내부 근육을 만듭니다. 그만큼 몸속이 단단해지고 아픔이 덜해지죠. 몸매도 매끈해지고요. 지금도 오승환(삼성), 류현진(한화) 같은 프로야구 선수가 밴드로 물리치료를 해요. 왜 이 좋은 밴드를 국가대표만 이용하고 국민은 모르나요? 좋은 건 나눠야죠.”
그는 이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고 사진 모델까지 했다. 선물로 주는 밴드의 단가를 낮추려고 미국에 직접 가서 밴드를 대량 구매해왔다.
“한국 대형마트에서 이 밴드를 1만 원에 팔아요. 그러면 책 정가가 너무 높아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볼 수 없잖아요. 직접 뛰어서 중간 과정을 없앴고 모델비, 원고비, 감수비 등을 줄여서 책 정가를 1만7000원에 맞춘 거죠.”
아무리 책이 잘 팔린들, 출판으로 2000억 원을 벌기는 역시 무리 아닐까. 그는 “그래서 해외 진출과 사업 다각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밴드 테라피’와 ‘저니맨’은 미국, 일본의 유력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협상 중이다. 또한 RJ컴퍼니는 ‘전자책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에게는 ‘출판업계 위기’를 타계할 아이디어가 많다. 그는 출판업을 사양 산업이라 보는 시선이 못마땅하다.
“요즘 책은 책이 아니라 상품이에요. ‘서울대 가는 법’ ‘10억 버는 법’ 처럼 제목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책만 즐비하죠. 3만 권 정도야 마케팅만 잘하면 쉽게 팔 수 있어요. 하지만 10만 권 이상 파는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독자 마음을 움직여야 해요. 저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봅니다.”
‘밴드 테라피’가 탄생하는 데는 도서출판 M·K 구모니카(38) 대표의 도움이 컸다. 구씨는 책 ‘나는 독한 여자를 연기한다’ ‘2030 여우들’ 등을 쓴 출판기획자로, ‘짝-노총각·노처녀 편’에 ‘여자 1호’로 출연해 최익성과 ‘러브라인’을 이뤘다. 하지만 둘은 결국 짝이 되지 못했다.
“짝 출연 후 모니카 씨랑 따로 만나 ‘밴드 테라피’ 원고를 보여줬어요. 아무래도 전문가니까 ‘탁탁’ 수정 포인트를 잡아주더라고요. 표지 디자이너, 영업사원 등 사람도 많이 소개해주고요. ‘짝’ 출연을 통해 진짜 ‘짝’은 못 만났지만 사업 파트너로서 ‘짝’은 잘 만난 것 같아요. 지금은 연락을 잘 안 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촬영 내내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던 두 사람은 왜 끝내 커플이 되지 못했을까. 그는 “야생마 같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여자와는 만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자 1호’와 특별한 ‘짝’이 되다
그의 자서전 격인 ‘저니맨’에는 여자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다. 그는 “41년 동안 스쳐간 여자야 많지만 인생을 바꾼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야구장을 다시 찾았다. 선수로서가 아니라 해설자로서다. KT 인터넷 방송인 올레TV는 스포츠채널 IPSN을 통해 ‘프로야구 편파중계 방송’을 한다. 중립적 중계가 아니라 특정 팀만 응원하는 것. 롯데 자이언츠 마해영, 두산 베어스 박철순 등 각 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가 해설자로 등장하는 프로그램. 삼성 해설자가 최익성이다. 최익성은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 라이온즈 공격에서 삼성 강봉규 타자가 사구을 맞자 “저거 퇴장 아닙니까! 공을 어디다 던지는 거예요!”라고 흥분해 화제가 됐다.
“5차전 전날 김태균 SK 수비코치, 김태한 삼성 투수코치, 김한수 타격코치 등 왕년 삼성맨들이 함께 모여 식사했어요. 한국시리즈에서 이렇게 상대편 코치, 그리고 해설자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면서요. 삼성이 우승을 하니까 마치 내가 우승한 것처럼 전율이 돌더라고요.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기도 하고요. 해설로나마 삼성이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탠 것 같아 뿌듯합니다.”
11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계를 누볐지만 방출을 밥 먹듯 당하는 바람에 정식 은퇴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일본에서 ‘저니맨’을 읽은 일본 팬들이 도쿄 한 노천카페에서 은퇴식을 열어줬다. 그의 유니폼이 걸린 카페에 일본 팬 100여 명이 모여 그에게 꽃다발을 전달해줬다. 그는 팬들에게 큰절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한국에서 방출되고 미국에 진출하려다 실패했는데 은퇴식은 일본에서 했습니다. 진정한 ‘저니맨’이죠. 선수로는 일본, 미국 진출에 실패했지만 출판사 사장으로서는 꼭 해낼 겁니다. 최익성의 ‘방랑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켜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