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김치 같은 음식 우메보시.
음식 이름을 놓고 한국인은 묘한 민족 감정을 드러낼 때가 많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음식 이름이었다. 오뎅을 어묵, 우동을 가락국수, 사시미를 생선회, 다꾸앙을 단무지로 바꾸는 식이었다. 어떤 것은 한국어로 정착했고, 또 어떤 것은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대체 가능한 좋은 한국어가 있다면 이는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한국어로 바꿔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옳지 않다.
처지를 바꿔놓고 보면 음식 이름에서 언어 순화라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 바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요즘 일본에서 김치를 많이 먹으니 이를 일본인이 쉽게 발음하게 하고 또 자신들의 음식문화에 편입하려고 ‘조센츠케모노’ 또는 ‘조센츠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어떨까. 음식 이름은 그 음식을 주로 먹는 지역이나 그 음식이 유래한 지역의 명칭을 따르는 것이 세계적 관례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특히 김치라는 이름에 대해 한국인은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민족적 감정을 드러낸다. 일본사람도 반드시 김치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이 ‘기무치’라고 발음하는 것을 두고 한국의 음식문화를 빼앗기기나 한 듯이 여긴다. 몇 해 전 영화 ‘식객’은 김치에 대한 민족적 감정을 마케팅에 이용했다. 일본의 극우신문에 ‘KIM-CHI’라고 영문 발음을 그대로 쓴 광고를 내면서 그 영화가 무슨 ‘독립투사의 영화’인 양 굴었다. 여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일본인을 붙잡고 ‘김치’ 발음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그들 대부분은 ‘기무치’라고 한다. ‘김치’라고 말할 수 있게 그들의 구강구조를 수술로 바꾸자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니, 이런 억지는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우메보시에 대한 글인데, 김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일본인에게 우메보시는 한국인에게 김치와 비슷한 음식이다. 이 음식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얀 밥에 빨간 우메보시를 박아 일장기처럼 보이는 도시락을 싸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일본 어른들은 이 우메보시 때문에 걱정이다. 젊은이들이 우메보시를 잘 안 먹고, 또 먹는다 해도 전통적 방식의 우메보시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단맛과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우메보시가 크게 번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통음식을 안 먹어 골치 썩이는 젊은이가 있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전통의 우메보시란 매실에 소금과 차조기 또는 소금만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우메보시는 매실 향이 산다. 일본 여행을 갈 때면 나는 이런 우메보시 찾기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일본 백화점이며 재래시장이며 곳곳을 뒤져봐도 전통의 우메보시를 찾기 어렵다. 10여 곳 뒤지면 한 곳 정도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전남 광양의 한 매실농원에서 이 전통의 우메보시를 찾았다. 일본의 한 업체가 이 농원에 우메보시 제조를 부탁했는데, 그중 일부를 국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일본 업체는 이 우메보시에 화학조미료와 단맛을 첨가해 가져가고, 한국에는 전통 방식 그대로의 우메보시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포장지에 ‘한국산 일본 전통 우메보시’라고 쓴다면 일본인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