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튿날부터 바로 집무에 들어간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가 만들어갈 도시는 어떤 모습이 될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상황. 그러나 그 구체적인 청사진에 대해서는 ‘아직 정답이 없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답에 가까워 보인다. 기본 얼개와 방향성을 빼놓고 나면 세부사항을 공개하지도, 확정하지도 않았기 때문. 다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는 있다. 선거운동 기간 박 시장 측에서 내놓았던 정책공약과 이를 만드는 데 관여했던 전문가의 설명, 박 시장이 이전에 펴낸 관련 책 등이 그것이다.
박 시장이 선거를 앞두고 펴낸 정책자료집 ‘희망공약’ 가운데 ‘도시’ 관련 부분은 먼저 서울의 권역별 격차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단순히 강남북 불균형이 문제가 아니라 도심-서북-서남-동북-동남 5개 권역이 재정과 일자리, 교육 등에서 모두 심각한 편차를 보인다는 것. 그러면서 정책자료집은 뉴타운 사업 같은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던 이전의 방식은 답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다양한 수단의 조합’을 강조한다. 특히 재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이 동네를 떠나게 돼 커뮤니티가 붕괴하는 현상을 막을 대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다
은평구가 추진해온 ‘두꺼비하우징 사업’을 그 예로 거론한 것이 대표적이다. 낡은 주택을 한꺼번에 헐어내고 대단위 고밀도 아파트단지를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주택단지를 수리하고 보수해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는 프로젝트. 어느 지역 주민이든 걸어서 5분 이내에 공공행정시설과 병원, 보육시설, 방과후 활동 공간, 도서관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사회서비스 시설을 확충해나간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이는 선거기간에 박 시장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전임 시장의 이른바 ‘랜드마크 건설형 도시 리뉴얼’에 대한 비판과도 맞아떨어진다. 많은 예산을 들여 눈에 번쩍 띄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삶의 질’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박 시장 측의 기본 방침 또한 마찬가지. 그 대신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민센터와 도로, 주차장, 관리사무소 등 기본 편의시설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게 정책공약의 골자다.
이와 함께 정책자료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참여’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다. 서울시, 자치구, SH공사 등 공공부문과 시민·전문가 단체 등 민간부문이 협력해 도시계획의 얼개와 사업 진행을 결정하는 ‘협력형 거버넌스’에 관한 언급이 주요 관련 공약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본의 사례를 참조한 듯 보이는 ‘주민참여형 마을 만들기’나 ‘마을 만들기 공공사업’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도시 재정비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박원순 서울시의 가장 뚜렷한 차별점이 될 것임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캠프 정책자문단의 본부장을 맡았고, 당선 이후에는 내년도 예산편성을 위한 민간전문가 자문회의에 참여한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박원순 시장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때문에라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짓기만 하면 팔려나갔으므로 뉴타운식 재개발이 가능했겠지만, 수익이 불투명한 현재 상황에서는 건설사 역시 선뜻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는 것. 시가 나서서 굳이 요건을 강화하지 않아도 기존 대규모 재개발 사업의 한계가 명확해졌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 주민은 일단 도장만 찍고 나면 진행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전 방식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얘기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이와 관련해서는 역시 선거캠프 정책자문단에 관여했던 변창흠 세종대 교수가 11월 3일 시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 공개한 토론 자료를 통해 변 교수는 “뉴타운 사업을 진행 중인 구역에서 중단할 경우 갈등과 소송이 제기될 수밖에 없으므로 공공부문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문제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사업을 결정한 지역도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의사를 다시 확인해 중단이나 지구지정 해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대신 변 교수는 노후 주택단지의 경우 주민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협동조합을 통한 재개발 등 대안적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박 시장의 ‘마을 공동체’나 ‘협력형 거버넌스’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박 시장은 최근 수년간 4권의 ‘마을 연작’ 시리즈를 통해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특히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결과물을 바탕으로 2009년 4월 펴낸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는 전국 곳곳의 소규모 지역 공동체와 조합, 커뮤니티를 방문한 경험담을 담았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제안한 아이디어를 지방자치단체가 도와 수익사업이나 교육 개선 같은 구체적인 결과물로 연결해온 지역이다. 쉽게 말해 행정과 운동의 경계선상에 있는 이러한 ‘공동체 문화’를 서울에서 활성화하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도시계획이나 재정비 사업의 결정 과정에 결합하는 일이 박 시장이 그리는 ‘협력형 거버넌스’ 프로세스임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분명 조형물과 디자인으로 상징되는 전임 시장의 ‘사업’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눈여겨 볼 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해당하는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도시 행정에 익숙해진 시민으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이러한 방식이 ‘공동체’로서의 경험이 일천한 21세기 서울에서도 가능할지, 이를 현실화할 메커니즘과 구체적인 모델은 무엇인지 역시 아직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선거에 관여했던 전문가들 또한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수현 교수는 “구체적인 모델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다만 행정기관이 나태할 틈을 주지 않는 한국 국민 특유의 열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눈에 보이는 것보다 쉽게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주목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서울시민이 원하는 서울의 미래가 ‘랜드마크로 빛나는 첨단 현대 도시’냐, 아니면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마을’이냐에 달려 있다.
박 시장이 선거를 앞두고 펴낸 정책자료집 ‘희망공약’ 가운데 ‘도시’ 관련 부분은 먼저 서울의 권역별 격차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단순히 강남북 불균형이 문제가 아니라 도심-서북-서남-동북-동남 5개 권역이 재정과 일자리, 교육 등에서 모두 심각한 편차를 보인다는 것. 그러면서 정책자료집은 뉴타운 사업 같은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던 이전의 방식은 답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다양한 수단의 조합’을 강조한다. 특히 재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이 동네를 떠나게 돼 커뮤니티가 붕괴하는 현상을 막을 대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다
은평구가 추진해온 ‘두꺼비하우징 사업’을 그 예로 거론한 것이 대표적이다. 낡은 주택을 한꺼번에 헐어내고 대단위 고밀도 아파트단지를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주택단지를 수리하고 보수해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는 프로젝트. 어느 지역 주민이든 걸어서 5분 이내에 공공행정시설과 병원, 보육시설, 방과후 활동 공간, 도서관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사회서비스 시설을 확충해나간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이는 선거기간에 박 시장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전임 시장의 이른바 ‘랜드마크 건설형 도시 리뉴얼’에 대한 비판과도 맞아떨어진다. 많은 예산을 들여 눈에 번쩍 띄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삶의 질’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박 시장 측의 기본 방침 또한 마찬가지. 그 대신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민센터와 도로, 주차장, 관리사무소 등 기본 편의시설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게 정책공약의 골자다.
이와 함께 정책자료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참여’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다. 서울시, 자치구, SH공사 등 공공부문과 시민·전문가 단체 등 민간부문이 협력해 도시계획의 얼개와 사업 진행을 결정하는 ‘협력형 거버넌스’에 관한 언급이 주요 관련 공약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본의 사례를 참조한 듯 보이는 ‘주민참여형 마을 만들기’나 ‘마을 만들기 공공사업’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도시 재정비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박원순 서울시의 가장 뚜렷한 차별점이 될 것임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캠프 정책자문단의 본부장을 맡았고, 당선 이후에는 내년도 예산편성을 위한 민간전문가 자문회의에 참여한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박원순 시장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때문에라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짓기만 하면 팔려나갔으므로 뉴타운식 재개발이 가능했겠지만, 수익이 불투명한 현재 상황에서는 건설사 역시 선뜻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는 것. 시가 나서서 굳이 요건을 강화하지 않아도 기존 대규모 재개발 사업의 한계가 명확해졌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 주민은 일단 도장만 찍고 나면 진행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전 방식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얘기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이와 관련해서는 역시 선거캠프 정책자문단에 관여했던 변창흠 세종대 교수가 11월 3일 시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 공개한 토론 자료를 통해 변 교수는 “뉴타운 사업을 진행 중인 구역에서 중단할 경우 갈등과 소송이 제기될 수밖에 없으므로 공공부문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문제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사업을 결정한 지역도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의사를 다시 확인해 중단이나 지구지정 해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대신 변 교수는 노후 주택단지의 경우 주민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협동조합을 통한 재개발 등 대안적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박 시장의 ‘마을 공동체’나 ‘협력형 거버넌스’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박 시장은 최근 수년간 4권의 ‘마을 연작’ 시리즈를 통해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특히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결과물을 바탕으로 2009년 4월 펴낸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는 전국 곳곳의 소규모 지역 공동체와 조합, 커뮤니티를 방문한 경험담을 담았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제안한 아이디어를 지방자치단체가 도와 수익사업이나 교육 개선 같은 구체적인 결과물로 연결해온 지역이다. 쉽게 말해 행정과 운동의 경계선상에 있는 이러한 ‘공동체 문화’를 서울에서 활성화하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도시계획이나 재정비 사업의 결정 과정에 결합하는 일이 박 시장이 그리는 ‘협력형 거버넌스’ 프로세스임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분명 조형물과 디자인으로 상징되는 전임 시장의 ‘사업’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눈여겨 볼 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해당하는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도시 행정에 익숙해진 시민으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이러한 방식이 ‘공동체’로서의 경험이 일천한 21세기 서울에서도 가능할지, 이를 현실화할 메커니즘과 구체적인 모델은 무엇인지 역시 아직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선거에 관여했던 전문가들 또한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수현 교수는 “구체적인 모델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다만 행정기관이 나태할 틈을 주지 않는 한국 국민 특유의 열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눈에 보이는 것보다 쉽게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주목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서울시민이 원하는 서울의 미래가 ‘랜드마크로 빛나는 첨단 현대 도시’냐, 아니면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마을’이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