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셨습니까?”
6월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긴 어깨 끈이 달린 가방을 둘러멘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L의원이 총총걸음으로 의원전용 출입구에 들어섰다. 국회 권위가 과거와 다르다지만 의원과 일반인의 출입구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상태. 당연히 경비원이 그를 막아섰다.
“이쭛쭛인데요.”
L의원이 멋쩍게 신분을 밝혔다.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실세로 활동, 정치권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지만 얼굴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L의원을 국회 경비들이 알아볼 리 없었다.
“아, 그래요. 저쪽(방문자 안내 부스)으로 가세요.”
L의원과 의원회관 경비원이 웃지 못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오너드라이버로 첫 등원에 나선 우리당의 J의원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경비원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인사가 “회관을 두서너 바퀴 돌았다”며 초선의원의 이색적인 등원을 설명했다.
의원회관 입구에서 ‘가로막힌’ 이의원은 그나마 나은 경우.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당선자 시절 ‘웬만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대로변의 국회 정문에서조차 “어떻게 오셨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검은색 대형 차 어느새 비주류
6월5일 첫 본회의를 연 17대 국회의 주역은 단연 187명의 초선의원이다. 152명의 우리당 의원 중 70%가 넘는 108명이 처음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한나라당 역시 소속의원 121명의 절반이 넘는 62명이 초선의원이다. 초선의원들은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 서는가 하면 권위에 대응해 전쟁도 불사할 태세를 보인다.
권위 파괴와 변화는 우선 승용차에서 두드러진다. 초선의원인 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9인승 트라제, 이인영 의원은 카니발을 타고 등원한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뉴EF쏘나타, 노회찬 의원은 싼타페를 등록했다.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의원 승용차 170여대 중 2000cc 안팎의 중형차가 70대나 된다. 과거 주류이던 검은색 대형 세단은 어느새 비주류로 전락했다.
기자와 정치인은 악어와 악어새에 곧잘 비유된다. 그런 양측의 관계에도 변화의 흐름이 느껴진다. 군 출신 A의원은 젊은 국회 출입기자들을 ‘이등병’쯤 되는 직급이라고 여긴다. 정당 출입기자 중 연차가 가장 낮은 기자를 기자세계에서는 ‘말진’으로 부르는데, ‘말진’이라는 표현을 들은 A의원이 이를 ‘이등병급의 언론사 직위’로 받아들인 것.
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한 기자가 “임선배”라고 부르자 “내가 왜 당신 선배냐”며 무안을 주면서 “‘의원님’이라고 부르고, ‘기자님’이라고 서로 존대하는 게 맞다”고 맞받았다. 3성장군 출신인 한나라당 H의원은 기자가 ‘선배’라고 호칭하자 “혹시, 육사 나왔느냐”고 진지하게 되묻기도 했다.
초선의원들은 잘못된 기사에 항의하는 방법도 ‘신세대’답다. B초선의원(여성)은 ‘허리 사이즈’ 때문에 모 스포츠신문과 부딪혔다. 모 스포츠신문이 B의원의 허리둘레를 36인치로 적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 허리둘레가 31인치인 B의원은 “이러니까 스포츠신문이 문제란 얘길 듣는 것 아니야. 당신 꺼 3cm라고 하면 기분 좋으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초선의원 187명이 연출하는 ‘새로운 흐름’이 어색하기는 기자들도 비슷하다. 초선의원들이 모이는 곳이면 ‘이름’과 ‘생김새’를 맞춰보느라 기자들도 눈을 바쁘게 돌려야 한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이런 기자들이 안쓰러웠던지 이름과 사진을 함께 실은 조그만 책자를 펴냈다. 기자들은 연찬회 등에서 이 책자로 겨우 ‘이름과 얼굴을 맞추는’ 퍼즐을 풀어나갔다.
모여! 즉각 반응 ‘신입생’ 정서 사라져
국회 입성 첫 일주일 동안 톡톡 튀는 언행으로 경쾌한 파열음을 일으킨 ‘기(氣) 센 초선들’의 파워는 의정활동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여야 의원 22명이 ‘파병추진 중단 및 원점 재검토 권고 결의안’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17대 국회의 앞날을 짐작케 한다.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정파적 이해를 떠나 소신과 성향에 따라 한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당에선 여당 특유의 일사불란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김혁규 총리카드’를 둘러싸고 초선의원들이 반발한 게 대표적 사례.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특보 문희상 의원은 특보직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선의원들은 문의원을 ‘제2의 권노갑’, ‘총독’으로 부르며 ‘공공의 적’으로 묘사했다. 문의원은 “내가 무슨 권노갑이냐”며 반발했지만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임종인 의원은 한 모임에서 “어떤 재선의원이 ‘군기 잡겠다’고 해 모욕을 느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군기 잡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말했다. 군기를 잡겠다던 김부겸 의원은 “초선 무서워서…”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나라당 역시 초선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이 주축인 당내 최대 모임인 ‘국가발전연구회’의 준비위원장과 간사를 초선의원들이 맡았다. 특히 정책전문가 위주로 짜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향후 현안마다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슈 경쟁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최근 정책 현안 연구를 위해 모임을 꾸렸다.
‘모이라’는 외침에 민감한 초선의원 특유의 ‘신입생’ 정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당직자들이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하면 “일정을 살펴보고 결정하겠다”는 초선의원이 적지 않다. 우리당 한 당직자는 “초선의원 모임 중에 108번뇌라는 게 있다던데, 요즘 우리들이 의원들에게 연락하는 게 꼭 108번뇌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1학년 모이라는 식의 모임엔 안 갈 것”이라며 “초선의원을 거수기로 보는 선배들도 이젠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과거 국회가 정권의 들러리이던 시절 초선의원은 거수기 노릇에 만족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톡톡 튀다가는 다음 공천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선의원들의 이런 결기에는 부정적 평가도 뒤따른다. 지나치게 이미지 관리에만 열중한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소신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국정을 먼저 생각하는 거시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원로 정치인들은 숨기지 않는다. 김원기 신임 국회의장은 공개적으로 초선의원들의 진중함을 요청하기도 했다. 17대 초선들의 튀는 행보와 소신껏 일하겠다는 각오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6월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긴 어깨 끈이 달린 가방을 둘러멘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L의원이 총총걸음으로 의원전용 출입구에 들어섰다. 국회 권위가 과거와 다르다지만 의원과 일반인의 출입구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상태. 당연히 경비원이 그를 막아섰다.
“이쭛쭛인데요.”
L의원이 멋쩍게 신분을 밝혔다.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실세로 활동, 정치권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지만 얼굴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L의원을 국회 경비들이 알아볼 리 없었다.
“아, 그래요. 저쪽(방문자 안내 부스)으로 가세요.”
L의원과 의원회관 경비원이 웃지 못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오너드라이버로 첫 등원에 나선 우리당의 J의원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경비원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인사가 “회관을 두서너 바퀴 돌았다”며 초선의원의 이색적인 등원을 설명했다.
의원회관 입구에서 ‘가로막힌’ 이의원은 그나마 나은 경우.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당선자 시절 ‘웬만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대로변의 국회 정문에서조차 “어떻게 오셨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검은색 대형 차 어느새 비주류
6월5일 첫 본회의를 연 17대 국회의 주역은 단연 187명의 초선의원이다. 152명의 우리당 의원 중 70%가 넘는 108명이 처음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한나라당 역시 소속의원 121명의 절반이 넘는 62명이 초선의원이다. 초선의원들은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 서는가 하면 권위에 대응해 전쟁도 불사할 태세를 보인다.
권위 파괴와 변화는 우선 승용차에서 두드러진다. 초선의원인 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9인승 트라제, 이인영 의원은 카니발을 타고 등원한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뉴EF쏘나타, 노회찬 의원은 싼타페를 등록했다.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의원 승용차 170여대 중 2000cc 안팎의 중형차가 70대나 된다. 과거 주류이던 검은색 대형 세단은 어느새 비주류로 전락했다.
기자와 정치인은 악어와 악어새에 곧잘 비유된다. 그런 양측의 관계에도 변화의 흐름이 느껴진다. 군 출신 A의원은 젊은 국회 출입기자들을 ‘이등병’쯤 되는 직급이라고 여긴다. 정당 출입기자 중 연차가 가장 낮은 기자를 기자세계에서는 ‘말진’으로 부르는데, ‘말진’이라는 표현을 들은 A의원이 이를 ‘이등병급의 언론사 직위’로 받아들인 것.
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한 기자가 “임선배”라고 부르자 “내가 왜 당신 선배냐”며 무안을 주면서 “‘의원님’이라고 부르고, ‘기자님’이라고 서로 존대하는 게 맞다”고 맞받았다. 3성장군 출신인 한나라당 H의원은 기자가 ‘선배’라고 호칭하자 “혹시, 육사 나왔느냐”고 진지하게 되묻기도 했다.
초선의원들은 잘못된 기사에 항의하는 방법도 ‘신세대’답다. B초선의원(여성)은 ‘허리 사이즈’ 때문에 모 스포츠신문과 부딪혔다. 모 스포츠신문이 B의원의 허리둘레를 36인치로 적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 허리둘레가 31인치인 B의원은 “이러니까 스포츠신문이 문제란 얘길 듣는 것 아니야. 당신 꺼 3cm라고 하면 기분 좋으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초선의원 187명이 연출하는 ‘새로운 흐름’이 어색하기는 기자들도 비슷하다. 초선의원들이 모이는 곳이면 ‘이름’과 ‘생김새’를 맞춰보느라 기자들도 눈을 바쁘게 돌려야 한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이런 기자들이 안쓰러웠던지 이름과 사진을 함께 실은 조그만 책자를 펴냈다. 기자들은 연찬회 등에서 이 책자로 겨우 ‘이름과 얼굴을 맞추는’ 퍼즐을 풀어나갔다.
모여! 즉각 반응 ‘신입생’ 정서 사라져
국회 입성 첫 일주일 동안 톡톡 튀는 언행으로 경쾌한 파열음을 일으킨 ‘기(氣) 센 초선들’의 파워는 의정활동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여야 의원 22명이 ‘파병추진 중단 및 원점 재검토 권고 결의안’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17대 국회의 앞날을 짐작케 한다.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정파적 이해를 떠나 소신과 성향에 따라 한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당에선 여당 특유의 일사불란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김혁규 총리카드’를 둘러싸고 초선의원들이 반발한 게 대표적 사례.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특보 문희상 의원은 특보직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선의원들은 문의원을 ‘제2의 권노갑’, ‘총독’으로 부르며 ‘공공의 적’으로 묘사했다. 문의원은 “내가 무슨 권노갑이냐”며 반발했지만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임종인 의원은 한 모임에서 “어떤 재선의원이 ‘군기 잡겠다’고 해 모욕을 느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군기 잡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말했다. 군기를 잡겠다던 김부겸 의원은 “초선 무서워서…”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나라당 역시 초선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이 주축인 당내 최대 모임인 ‘국가발전연구회’의 준비위원장과 간사를 초선의원들이 맡았다. 특히 정책전문가 위주로 짜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향후 현안마다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슈 경쟁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최근 정책 현안 연구를 위해 모임을 꾸렸다.
‘모이라’는 외침에 민감한 초선의원 특유의 ‘신입생’ 정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당직자들이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하면 “일정을 살펴보고 결정하겠다”는 초선의원이 적지 않다. 우리당 한 당직자는 “초선의원 모임 중에 108번뇌라는 게 있다던데, 요즘 우리들이 의원들에게 연락하는 게 꼭 108번뇌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1학년 모이라는 식의 모임엔 안 갈 것”이라며 “초선의원을 거수기로 보는 선배들도 이젠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과거 국회가 정권의 들러리이던 시절 초선의원은 거수기 노릇에 만족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톡톡 튀다가는 다음 공천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선의원들의 이런 결기에는 부정적 평가도 뒤따른다. 지나치게 이미지 관리에만 열중한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소신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국정을 먼저 생각하는 거시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원로 정치인들은 숨기지 않는다. 김원기 신임 국회의장은 공개적으로 초선의원들의 진중함을 요청하기도 했다. 17대 초선들의 튀는 행보와 소신껏 일하겠다는 각오는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