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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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실험·마약제조 탈북자의 출국 막은 까닭은 …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6-11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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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체실험·마약제조 탈북자의 출국 막은 까닭은 …

    북한의 인권탄압을 증언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제지당한 A씨.

    3월3일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북한의 생체실험을 증언했던 50대의 탈북과학자 A씨가 6월9일 미국 의회에서 북한 인권탄압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관계기관의 방해로 출국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씨는 외교부로부터 적법하게 발급받은 단수여권에 미국 비자까지 받아 6월5일 공항에 나갔는데, 뜻밖에도 A씨의 여권은 분실신고가 돼 있었던 것. 여권 분실신고를 낸 적이 없는 A씨는 “이 여권은 줄곧 내가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관계기관은 분실신고된 여권이라는 주장만 반복하며 A씨의 출국을 막았다.

    2002년 한국에 온 A씨는 탈북자 가운데 드물게 북한 과학원에서 수여한 화학박사 학위를 가진 인텔리다. A씨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979년 봄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평양에서 북쪽으로 15마일 떨어진 평성 근처의 군부대 수용소로 불려갔다. 그곳에서 큰 유리창을 통해 정치범을 상대로 한 화학가스 생체실험이 행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형편없는 몰골로 가스실에 갇힌 두 명의 생체실험 대상자는 쏟아지는 가스 속에서 3시간 넘게 절규하며 버티다 절명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보도가 있은 후 국정원의 관계자는 “A씨의 증언은 믿을 만하다. 그는 특별한 탈북자다”라며 A씨의 증언이 사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에서 과학자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쭛쭛대학 출신인 A씨가 함흥의 한 화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의 대학 동창생은 독해물(毒害物)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독가스 제조를 맡은 동창생은 독가스 제조가 여의치 않아 고민하다 우연히 A씨가 쓴 논문에서 해결법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로 인해 A씨는 3개월간 동창생의 일을 도와주고, 이어 그렇게 만든 독가스가 성능을 발휘하는지 살펴보러 갔다 정치범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을 목격한 것.

    A씨는 “생체실험을 할 당시 나와 동창생은 정치범의 인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죄를 지으면 저런 꼴을 당하는구나.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온 뒤 비로소 인권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북한 눈치를 보느라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권 유린을 당하는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의회에 가서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증언하려고 한다”라며 미국 의회 증언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한편 A씨는 북한에 있을 때 마약을 제조해 북한 정부기관에 제공했고 그 기관은 마약을 해외로 밀수출한 바 있다고 증언했다.



    최근 국제 엠네스티(사면위원회)는 북한의 생체실험을 취재해 2월1일 영국의 BBC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악의 제국 탐험(Access to Evil)’을 내보냈던 제작팀에 미디어상을 수여했다. 현재 미국 상원은 북한 인권법을, 하원은 북한 자유화법을 만들고 있다. 미국 의회는 6월9일, BBC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 A씨의 증언을 들을 예정이었다. 관계기관이 분실 여권을 핑계로 A씨의 출국을 막은 사실은 또 다른 인권 침해 시비를 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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