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모 순찰지구대의 모습.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늑장 출동하는 바람에 범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택시기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상해요?”(112 상담원)
“저… 어….”(김씨)
택시기사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상담원이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등의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답변을 유도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위험을 알릴 수도 있었다. 결국 부자연스러운 대화에 전화는 끊어졌고 상담원은 김씨에게 더 이상 확인 전화를 걸지 않았다.
범죄의 위험이 닥쳤을 때 누르는 112. 하지만 시스템의 운영을 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실 한국의 112 시스템은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뛰어난 전산 시스템에 비해 제도 운영은 후진적이란 평이다.
“웬 남자가 쫓아와 신고했는데 30분 넘어도 출동 안 해”
112 제도는 범죄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결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112 신고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경찰관은 ‘직무유기’나 ‘업무처리 미숙’이란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2003년 9월29일 인천에서 일어난 새마을금고 강도사건은 경찰관의 늑장 출동으로 범인 검거에 실패한 대표적 경우. 경찰은 사건 발생 4분 만인 오전 8시34분경 경비업체로부터 112신고를 받았으나 아침조회와 근무교대를 이유로 출동을 미뤘다. 경찰관은 출동지령 13분 만인 오전 8시47분 현장에 도착했지만, 범인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20대 여성 K씨는 “지난해 여름 이태원 밤길을 걷다가 미행하던 30대 남자를 발견하고 112에 신고했지만, 보내준다고 하던 순찰차는 3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며 어이없던 기억을 떠올렸다. 5월11일 신호등 고장을 112에 신고했던 고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경찰관의 늑장 출동에 항의하다 오히려 공무집행방해범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날 출근하던 박씨는 오전 7시50분경 안양시 평촌동 B고 앞 6차선 도로의 신호등이 고장 나 등굣길의 학생들이 불편을 겪는 현장을 목격했다. 오전 8시부터 112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건 박씨는 “20분 뒤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경찰관이 내리지도 않고 돌아갔다”며 “1시간 뒤 나타난 세 번째 경찰관마저 현장을 살펴보지 않은 채 돌아가려 해 항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출동한 인근 파출소 직원이 신호등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어 해당 경찰서 교통계에 연락을 취하면서 출동이 늦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112 제도의 답답한 운영에 대한 비판에 경찰도 나름의 항변이 없지 않다. 경찰청의 집계에 따르면 112 신고 건수는 해마다 급격히 늘어 2003년의 총 신고 건수가 2002년보다 15.8% 늘어난 407만8925건으로 하루 평균 1만1175건에 이르렀다. 이중 허위·장난·오인 신고가 평균 5.7%에 달한다는 것. 또한 112신고 후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5분 넘게 소요되는 사안은 교통체증 등 불가항력의 요인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우리나라의 112 시스템은 외국 경찰이 견학할 만큼 발전해 있지만, 범죄 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하는 요원들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며 “각각의 범죄와 문자 신고에 대한 대응법을 교육하고, 선진국처럼 이용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긴급신고 번호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