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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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진실게임’ 속시원히 밝혀질까

한나라당 ‘팩트’ vs 국정원 ‘조작’ 팽팽 … 검찰에선 “새 정부 출범 이전 결론내릴 것”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1-23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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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 진실게임’ 속시원히 밝혀질까
    한나라당은 공식적인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된 바로 직후인 2002년 11월28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도청내역’을 공개했다. A4용지 27장에 국회의원 24명, 언론사 사장 2명, 기자 8명 등 총 39명의 통화내역을 담은 이 폭로물에는 강한 휘발성이 내재돼 있었다. 사흘 뒤인 12월1일 한나라당은 수위를 높여 2차 폭로에 나섰다. 2002년 1월3일부터 3월26일까지 박지원 당시 대통령정책특보를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 장관, 민주당 의원, 언론사 간부의 통화내역 등 16건의 통화내역은 권력 중심부의 민감한 비밀대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가톤급 폭로물이었다. 대선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터져나온 역풍이 도청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설사 도청을 했다 하더라도 왜 이 시점에 그걸 터뜨리느냐”는 여론에 밀린 한나라당은 도청자료를 책상 서랍 속에 밀어넣었다.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도청문제와 관련,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국정원도 마찬가지. 국민들은 이런 엇박자 시선에 ‘도청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줄곧 보냈다. ‘국가가 개인의 전화통화를 불법으로, 파렴치하게 엿들었다’는 의혹은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진위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도청과 관련,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도청문건의 출처, 그리고 휴대폰 도청의 진위 여부다. 먼저 문건 출처에 대해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국정원 현직 간부의 제보로 도청자료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 신분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이후보가 선거에서 이긴다는 전제 하에 “선거가 끝나면 그 사람을 통해 도청의혹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체된 8국(과학보안국)의 기능이 어디로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파악중”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국내 도청팀은 총 41명이 3개 조로 구성돼 있으며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도 이 조직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인사는 도청자료 공개 여부를 재차 묻자 “객관적으로 확인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검찰이 이와 관련해 깊숙하게 발을 넣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조금만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보였다.

    선거도 끝났는데 덮어두자?

    ‘도청 진실게임’ 속시원히 밝혀질까

    2002년 12월1일 한나라당사에서 이부영 선대위 부위원장(위쪽 사진 오른쪽)과 안상수(왼쪽) 의원이 도청자료를 보여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아래쪽 사진 가운데)이 2002년 11월28일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도청자료를 폭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제보자 신분 공개 대신 정황논리로 ‘팩트’임을 강조한다. ‘도청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내용 투성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같은 당 홍준표 의원에게 2002년 3월21일 전화한 내용이 그중 한 사례다.

    공개된 도청자료에서 전의원이 “당의 살 길이 무엇이냐”고 묻자, 홍의원은 “이총재는 영남 지지율이 급락함에 따라 후보교체론이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총재가 인식을 바꿔야 하는데 고집을 부려 답답하다”고 대답했다.



    3월이면 이회창 대세론이 한창 굳어지고 있을 때.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이총재를 향해 ‘고집 부린다’ ‘후보교체론이 대두될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한 것은 괘씸죄에 걸리기 십상이다. 홍의원이나 전의원이 기자, 외부기관원, 제삼자를 상대로 이러한 민감한 통화내용을 통화시점까지 적시해가며 알려주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홍의원은 “도청 이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신건 국정원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국정원 반박의 출발점은 내부보안 시스템이다. “국정원 문건은 출력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하다못해 일반기업들도 ‘보안’ 코드를 걸면 문건 출력이 어렵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도청 진실게임’ 속시원히 밝혀질까

    보안경비업체 ‘에스원’의 도청탐지 팀원들이 첨단장비를 이용해 도청되는 주파대역을 찾고 있다.

    국정원은 도청의혹이 제기된 직후 내부감찰을 벌였다. 감찰 방향은 두 줄기였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도청문건과 내용을 본 적이 있는지, 문건을 본 적은 없으나 정보활동 과정에 들은 적이 있는지 여부였다. 이 과정에서 내부직원 A씨 등 몇몇 인물의 행적에 의혹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국정원의 움직임은 곧바로 한나라당에 전달됐다. 한나라당 기획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청문건이 공개된 직후부터 국정원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국정원 감찰팀이 A씨를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안테나에 잡혔고 대선을 2, 3일 앞두고 그를 서울시내 모 호텔에 사실상 감금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도청자료를 넘겨준 국정원 고위 간부가 기자회견을 준비중”이라는 소문이 잇따랐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이 양심선언 방지를 위해 A씨를 적극적으로 마크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대선이 끝난 2002년 12월2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주변에서 이에 대한 얘기가 다시 흘러나왔다. 소문은 두 가지였다. 민주당에서 파견된 인수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정원 직원 K씨가 내부직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 같다. 국정원이 도청과 관련, A씨에 대해 모종의 액션을 취한 것 같다.” 이 관계자는 정보 출처에 대해 “내부직원들이 전달한 얘기”라고 말했다. 1월 초 국정원 유인희 공보관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 관련 고소는 사실이나 A씨를 감금한 적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A씨의 경우 부서 통폐합 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오해가 생겼고, 이것이 유언비어로 확대재생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의혹을 사던 이 국정원 직원은 현재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 국정원 관계자는 귀띔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기획위 관계자는 “만일 처벌을 한다면 도청을 자인하는 꼴이 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정원이 보는 도청의 전말은 한나라당의 조작 및 자작극이다. 한나라당이 사설 정보기관, 국정원 직원들의 보고서 내용, 언론사 내부정보 보고서 등을 취합, 조작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정형근 의원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국정원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칠 것

    “정의원이 국정원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치흐름을 알고 도청시스템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가지 기본적인 팩트(국정원 보고서, 언론사 정보)만 가지면 완벽한 도청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그는 조작된 도청 시나리오의 대표작으로 지난해 10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과 이귀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의 4억 달러 대북 지원설 축소수사 의혹 등과 관련, 정의원이 폭로한 도청문건을 든다. 정의원은 “국정원 도청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파악했다”고 주장했지만 국정원은 내부감찰을 통해 금융감독원 출입 직원의 정보보고서가 유출됐고 이것이 가공, 조작돼 도청 시나리오로 둔갑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공개한 여러 가지 폭로물의 특징은 “내용만 있고 근거와 실체가 없는 것”이라며 “민감한 내용을 폭로하면 국민들은 의혹을 가지게 되고, 여당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일쑤였다”며 “도청도 이런 수순으로 전개시키려던 야당식 공작”이라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과 국정원은 휴대폰 도청 여부를 놓고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자료 가운데 상당수는 휴대폰 도청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1월 초 “국정원 11국 소속 연구단이 카스(CASS)라는 휴대폰 도청장비를 개발했다”며 도청공방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내놓았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국정원은 펄펄 뛴다. 신건 국정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이스라엘 모사드 등 세계 어떤 나라의 정보수사기관도 휴대전화 감청능력은 없다”며 국정원의 결백을 주장했다. 국정원과 한나라당의 상반된 주장에 최근 검찰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정보통신업체 관계자로부터 “CDMA 휴대폰 도청이 가능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한 관계자는 “우리 기술진은 이론적으로 휴대폰 도청이 가능하나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며 여전히 휴대폰 도청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국정원 도청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2부는 그동안 사건기록 검토와 함께 관련자들의 통화내역 확인작업을 진행해왔다. 검찰은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과 관련 △국정원의 불법도청 가능성 △도청 없이 단순 첩보, 정보문건이 유출됐을 가능성 △사설정보팀의 도청자료일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수사중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도청자료 가운데 100% 팩트인 것도, 100% 소설인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 한 관계자는 “다음달 새 정부 출범 이전에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수사원칙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도청과 관련한 한나라당과 국정원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부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도청의혹은 단순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을 넘어선다. 도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이 된다. 반면 한나라당이 조작을 했다면 한나라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도청의혹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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