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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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만 거치면 지구촌 사람 모두 연결

‘좁은 세상’ 과학적 증명한 ‘6단계의 분리’ … 할리우드 배우들도 두세 단계 안에 엮여 있어

  •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 hjeong@mail.kaist.ac.kr

    입력2003-01-23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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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명만 거치면 지구촌 사람 모두 연결

    ‘케빈 베이컨 게임’에 따르면 할리우드 스타나 충무로 배우 모두 한두 사람만 거치면 연결된다. 케빈 베이컨, 로버트 와그너, 마크 마이어, 이대근, 박근형, 김정은(왼쪽부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먹서먹할 때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고향이 어디세요? 학교는 어딜 나왔어요?” 이렇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어느새 “아, 그럼 아무개를 아시겠군요? 세상 참 좁네요”라며 허물없이 대화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듯 ‘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게 바로 다섯 명만 거치면 온 세상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6단계의 분리’다.

    ‘6단계의 분리’라는 말은 1920년대 헝가리의 작가 카린시가 쓴 ‘연쇄(chain)’라는 책에서 유래했다. 카린시는 당시 지구상의 15억 인구 중 누구나 여섯 명만 거치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를 입증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6단계 분리라는 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하버드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67년 사람들간의 관계 형성을 연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300통의 편지를 미국 중부에 위치한 두 개 마을에 뿌리고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보스턴에 살고 있는 주식중개인 A씨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것. 편지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보스턴의 A씨를 제일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전하기를 반복해 최종적으로 보스턴의 A씨에게 도착하도록 했다. 단, 편지 봉투에는 전달자의 이름을 적도록 해 편지가 전달된 경로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실험을 통해 성공적으로 배달된 편지에 적힌 사람의 수를 세어보니 평균이 5.5명으로 나왔다. 결국 밀그램은 카린시의 소설에 나오는 내용을 입증함으로써 6단계 분리를 확인한 셈이다. 그의 웹사이트(www.stanleymilgram. com)에 들어가면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김정은과 이대근도 손쉽게 연결

    스탠리 밀그램이 ‘6단계의 분리’를 실험한 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상은 그때와는 무척 다르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은 좀더 좁아졌고,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몇 단계의 분리일까. 컬럼비아대학 사회학과 던칸 와트 교수는 2001년 12월부터 현대판 ‘6단계의 분리’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40여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밀그램이 우표가 붙은 편지를 이용했지만 던칸 와트 교수는 이메일로 좁은 세상을 입증할 계획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언론에 알려졌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실험자측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http://smallworld. sociology.columbia.edu)를 방문하면 된다.

    ‘세상이 좁다’는 것은 일반 대중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분야에도 적용된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의 인맥,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망이 그렇다. 2002년 11월 국내에 개봉됐던 영화 ‘트랩트’에 출연한 미국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은 자신의 이름을 딴 ‘케빈 베이컨 게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란 할리우드의 영화배우들을 함께 출연한 영화를 통해서 케빈 베이컨과 연결하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영화 ‘오스틴파워’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마크 마이어라는 배우는 이 영화에 로버트 와그너와 함께 출연했는데 이 로버트 와그너는 ‘와일드 씽’이라는 영화에서 케빈 베이컨과 함께 출연했다. 이런 관계를 통해 마크 마이어는 로버트 와그너를 거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 그리고 케빈 베이컨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 로버트 와그너는 케빈 베이컨 넘버1이 되고, 로버트 와그너를 통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 마크 마이어는 케빈 베이컨 넘버2가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20만명이 넘는 할리우드 대부분의 배우들이 단지 두세 명만 거치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것. 이 게임은 1980년대 중반 크게 유행하였고, 그 당시 대학생들은 영화배우 이름만 대면 그의 케빈 베이컨 넘버가 몇인지 즉각 대답하고, 누가 어떤 영화에 함께 출연했으며 어떤 배우를 거쳐 연결되는지 줄줄이 외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케빈 베이컨 게임을 할리우드가 아닌 충무로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2002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을 꼽으라면 단연 ‘가문의 영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직폭력배의 딸 역할을 한 김정은씨는 가문의 영광에서 박근형씨와 연기했는데 박근형씨는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 안성기씨와 함께 출연했다. 그리고 안성기씨는 1984년 ‘고래사냥’이라는 영화에서 이대근씨와 함께 연기했다. 결국 이대근씨는 안성기, 박근형을 거쳐 김정은과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한국 배우들을 연결하면 할리우드가 아닌 충무로에서도 한국 영화배우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실제 충무로 네트워크를 연구하고 있고,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 영화배우들의 네트워크도 2, 3명의 배우를 통해 모든 배우들이 연결되는 좁은 세상임을 알 수 있었다. 누가 충무로의 케빈 베이컨이 될지를 드러내는 일만이 남아 있다.

    10억개 웹페이지 19번 클릭하면 도달

    그렇다면 전 세계 컴퓨터를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은 얼마나 넓을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웹페이지의 수는 1999년에 10억개 정도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10억개의 웹페이지는 몇 단계를 거쳐야 모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최근 필자가 포함된 노트르담대학 바라바시 교수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0억개의 웹페이지는 마우스를 19번 클릭하면 모두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어떤 웹페이지는 두 번만 클릭하면 찾아갈 수 있고, 또 어떤 웹페이지는 60번을 클릭해야 닿을 수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19번 클릭하면 웬만한 웹페이지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6명을 통하거나 19번의 클릭을 통하면 전 세계 사람들과 모든 웹페이지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세상은 알게 모르게 서로 링크된 참으로 좁은 곳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더욱이 이 세상은 인터넷을 통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지 않은가. 과연 2003년 현재는 몇 단계를 거쳐야 지구 끝까지 연결될까? 컬럼비아대학의 연구결과가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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