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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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 벤처 창업 한물갔네!

코스닥 거품 꺼지며 ‘캠퍼스 벤처’ 열기 시들 … 투자유치 힘들고 학내 여건도 예전만 못해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3-01-23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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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들 벤처 창업 한물갔네!

    교수 및 연구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벤처 창업 열기가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신기루를 쫓다 발목 잡힌 기분이었죠. 이제 후련합니다.”

    서울의 A대학 공과대 B교수는 지난 3년간 자신이 이끌어왔던 벤처기업을 최근 외부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개점 휴업 상태로 꼬박 1년을 지내고 난 후였다.

    한동안 대학캠퍼스를 달궜던 교수들의 벤처 열기가 사그라들고 상당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교수처럼 과감히 회사를 정리하는 일은 흔치 않다. 교수라는 신분의 특성상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다. 벤처캐피탈에 몸담았던 한 벤처회사 사장은 “교수들이 대개 자기 자본보다는 펀딩을 형성해 설립하기 때문에 학교와 사업에 적당히 양쪽 발을 담가둔 채 실속이 없어도 회사를 정리하지 않고 이름만 걸어놓는 곳도 다수”라고 전한다. 이 때문에 벤처를 창업한 교수들의 창업 결과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태. 다만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수들이 창업한 벤처의 30% 정도가 ‘개점 휴업’ 상태로 추정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최근 교수들이 창업하는 벤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창업보육센터와 기술이전센터까지 갖추며 캠퍼스발(發) 창업을 장려해온 한양대의 경우 2000년과 2001년 각각 9명의 교수가 창업을 한 데 반해 2002년에는 2명의 교수가 창업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같은 캠퍼스 벤처의 침체된 분위기는 비단 한양대만의 사정은 아니다.

    벤처 창업 2001년부터 급격히 줄어



    2002년 12월, 중소기업청의 의뢰로 한국벤처연구소(소장 한정화·한양대 교수)가 실시한 교수 및 연구원 벤처 창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교수들이 창업하는 벤처는 2001년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해 2002년에 상당히 위축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98년 교수가 창업한 벤처는 42개에 불과했으나 99년 143개로 늘었고, 2000년 385개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2001년 상반기에는 46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천안대 홍길표 교수(경상학부)는 “2002년 이후 교수들의 벤처 창업 현황을 정확한 수치로 집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각 대학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코스닥과 벤처 열풍이 식은 2001년부터 신규 창업하는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한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관계자는 외적 환경요인에서 찾는다. 그는 “점차 벤처 거품이 걷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벤처 비리가 터지면서 엔젤 투자자들도 부동산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며 “‘기술’에 의존해 투자유치를 전략목표로 삼아 자기 자본 없이 창업하려던 교수들이 난관에 부딪혔다”고 설명한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과거 일부 투자자들이 학벌과 인맥 등을 보고 교수들에게 투자하기도 했으나 사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교수들의 연구결과가 학문적 성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 시장에서 획기적인 반응을 일으킬 만한 기술은 드물었다”며 “이제 교수가 창업한 벤처라는 이유로 투자를 결심하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라고 전한다.

    전문가들은 교수들의 창업 열기가 시들해진 이유가 테헤란 밸리 침몰의 여파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교수들의 창업에 대한 대학의 태도 변화 역시 교수들의 창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 벤처와 정부의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정부가 교수 벤처 장려책을 슬그머니 거둬들이고, 창업한 교수들이 수업의 질 문제로 도마에 오르자 대학들은 하나 둘씩 교수들의 창업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앞다퉈 창업보육센터를 만들고 벤처를 창업한 교수들을 스타로 만들었던 대학이 태도를 바꾼 것. 이 때문에 한때 학교의 ‘자랑’이었던 창업 교수가 오히려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 됐다.

    교수님들 벤처 창업 한물갔네!

    벤처 거품이 걷히면서 교수 창업 벤처에 대한 투자도 부쩍 줄어들었다. 사무실 집기를 거리에 내놓고 허탈해하는 닷컴기업 직원.

    석·박사 과정에 있던 제자 3명과 함께 2000년 ‘실험실 창업’을 했던 B교수도 2001년 초 창업한 교수들이 본업인 수업은 나 몰라라 하고, 돈벌이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슬슬 대학의 눈치를 보게 됐다. 결국 대학측에 잘 보이려고 보직까지 떠맡다 보니 회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주변에서는 “애들(석·박사) 너무 잡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제품 개발을 늦출 수 없어 제자들을 독려했던 것이 학생을 혹사시키는 것으로 비친 것. 결국 B교수는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그의 실험실 창업은 학교 밖을 나가보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실험’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책임자는 “교수의 연구결과가 사장되지 않도록 교수들의 벤처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교육자로서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지적 사이에서 교수 창업은 사외이사제도와 함께 뜨거운 감자가 돼버렸다”며 “이 같은 현상은 대부분의 대학이 교수들의 벤처 창업에 대한 뚜렷한 원칙 없이 정부 정책에 장단을 맞춘 데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의 교수 창업 현황을 “신기루를 쫓던 사람들이 사라져 오히려 교수 창업이 건실해지고 정상궤도에 올라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창업 환경이 침체되면서 교수들로 하여금 창업에 대한 보다 신중한 태도를 요구해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지면서 학계나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한양대 창업보육센터 김유신 운영팀장은 “시장과 독점적 판매책을 확보한 뒤에야 창업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게 교수 창업의 최근 경향”이라며 “그 결과 시장에 진입하고 매출이 신장되는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새로 창업한 기업의 숫자는 줄었지만 준비된 창업이 상대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는 것. 그동안 교수 및 연구원들의 창업 전 사전준비 정도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서강대 이태수 교수(기계공학)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교수가 1999년에 설립한 ‘옥서스’(당시 옥시테크)는 산소발생기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으로 LG전자 만도공조 등에 산소발생기용 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2001년 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출발해 지난해 22억원까지 끌어올렸으며 올해 목표는 50억원. 이교수의 성공을 놓고 주변에서는 “교수 개인의 전문 분야가 사회적 수요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교수는 95년부터 보건복지부 G7 선도기술과제 의료용 산소발생기 개발 프로젝트 등 산소농축 관련 연구를 진행해 기존 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는 등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온 것.

    그러나 탄탄한 준비과정을 거쳐 창업한 뒤에도 상아탑에 머물러 있던 교수들은 마케팅과 세무회계 등 경영능력 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벤처의 파이를 키울 만한 자금관리와 펀딩 및 인력관리 문제 역시 벤처의 순항에 암초로 작용한다. 김홍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장은 교수 창업의 실패 원인은 “독자적인 실험실 기술을 바탕으로 의욕적으로 창업에 도전하나 막상 기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이 있어 일반 사업자들만큼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교수 벤처를 비롯한 각종 벤처들의 실패 사례를 정확히 분석해 그 원인을 공개한다면 정부에서 수억원씩 지원하는 것 못지않은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패 사례를 연구하면 벤처 경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 한정화 교수팀은 “정부에서 마케팅 관리와 전략, 자금조달과 재무관리, 사업타당성 분석 등을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교수 및 연구원 창업기업, 신기술 창업기업, 보육센터 내 창업기업 등에 대한 심층적인 경영컨설팅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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