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기자]
-국민 앞에 두 차례 사과한다고 했는데 너무 약한 표현 아닌가. ‘반성’이라는 표현 정도는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반성? 내가 반성할 일은 없다고 본다. 그 사람들(박근혜, 문재인)이 솔직하지 않은 거지. 나한테 약속을 강하게 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 출마를 도와달라면서 ‘박사님이 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약속하는데 믿고 할 수밖에 없잖은가. 근데 약속을 깨버렸으니 방법이 없지.”
-권력이라는 속성을 너무 잘 알 텐데 그 말을 믿었다고?
“박 전 대통령이 결과가 저래서 그렇지, 전에는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지.”
-어떻든 좌우, 여야를 넘나들며 선거운동을 하는 행보에 비판적인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만 하면 그만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좌파니, 우파니 해서 진영으로 딱 갈라져 있는데, 내가 둘 다 가봤지만 본질적으로 별 차이도 없다.
보수는 탄핵정국 이후 말만 보수지 실제로 뭘 하겠다는 것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고, 진보도 마찬가지다. 경제사회 구조를 보는 시각도 별 차이가 없고, 그저 정권을 어떻게 엔조이(enjoy)할지에만 관심이 있다.”
-이념은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본다.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중요치 않다.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또는 ‘당신들이 지향하는 바가 뭐야’라고 물으면 제대로 이야기도 못 한다.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정치인은 없어 보인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적에 탐욕을 갖고 있었다. 그 탐욕이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탐욕이 한계를 넘어서면 그 사회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포용적 성장을 하려면 결국 시장경제의 잘못된 점을 시정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와 한미동맹은 기본 아닌가.
“당연하지.”
-여당과 청와대는 그걸 허물고 있는 것 같다.
“허문다고 해서 허물어지지 않는다. 종국적으로 그런 사태가 오면 국민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이 정부는 사회주의인가.
“제대로 된 사회주의도 못 하고, 사회주의 기본 메커니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권력에 대한 탐욕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념 탓인가, 무능 탓인가.
“무능이다. 능력이 없는 거지, 무슨 놈의 이념! 사회주의적 이념은 전 세계에서 끝나버린 건데.”
“집착이 없으니 마음 편하다”
-이 사람들을 대통령 만들어줬는데 이런 푸대접을 받나 하는 마음고생이나 배신감은 없나.“마음고생이라는 게 뭔가에 집착해야 하는 거지. 도와줬으면 그걸로 끝이다. 채권자로 사는 게 채무자로 사는 것보다 편타(편하다). 자리에 안달복달했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다 잃어버리는 거야.”
-그런 멘털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인지상정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 거다, 독일에서 학위 끝나고 귀국하려고 하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우리 지도교수님이 ‘너, 그런 나라 가서 살 수 있겠어? 사람이 모욕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고 묻더라. 내가 답을 못 하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모욕스러운 거야’라고 하더라. ‘자기 생사여탈권을 쥔 지도교수한테도 함부로 덤비는 놈이 독재 치하에서 어떻게 살 거냐’면서 말이야.(웃음) 내가 그런 소리 듣고 살아온 사람이다.”
-대통령을 가리지 않고 비판했는데 권력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은 없나.
“죄를 지은 게 없는데 뭐가 두려운가. 공직에 가는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을 이야기한 거다. 공천을 책임 지는 사람은 관련자를 피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런 기본적인 게 안 되는 사람들이다.”
-자서전을 펴낸 이유는.
“현실정치를 더는 하지 않으려 했다. 다만 후배 정치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어 준비한 거다. 그런데 결국 다시 나오게 됐다. 그런 점에서 나는 기구한 삶이다.”
-평생 주류로 살아온 것 같은 데 기구하다니.
“이런(선거운동) 걸 세 번이나 했으니 기구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 느끼는 게 그렇다.”
-여든 나이에도 이렇게 정치 중심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니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행동력이 있는 한, 끊임없이 세상과 동행하니까 가능한 거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아는가.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외신도 보고 신간 서적도 다 보고. 그리고 그것들을 나 혼자 우리나라에 대입해 생각해보고. 나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다 갈 거다. 내 기억력이 여전하고 작동하는 한 해봐야지. 나는 여태까지 세상을 적당히 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자주 안 만나고 누구에게 의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민심을 읽는 촉이 대단히 예민하다. 비결은?
“국민 정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열두 살이었다.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때부터 유세장을 다니면서 청중 반응을 보고 이번에는 누가 당선하겠구나 생각했다. 예측에 실패해본 적이 없다.”
-그런 촉을 가지려면?
“노력해야지. 특히 역사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나라를 다스려 어떻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승만, 박정희 정도밖에 없다. DJ(김대중)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았는데, 자기는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문 대통령이 편안하게 임기를 마치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탄핵을 염두에 둔 말인가.
“탄핵은 무슨. 나라를 위해 탄핵 이야기는 그만해야 한다.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하면 편하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자서전 제목이 ‘영원한 권력은 없다’이다. 그럼 뭐가 영원한가.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드골, 처칠도 말년에는 다 이상한 사람이 돼 물러났다.”
-DJ는 74세에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헛웃음을 지으며) 각자가 자기 자신을 모르면 안 된다. 여든 먹은 사람이 국민에 대해 책임을 못 지는 짓을 해선 안 돼.”
-어떤 말년을 꿈꾸나.
“나야 원래부터 평민이었다. 총괄 선거대책위원장 끝나면 평민으로 돌아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