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김재명기자]
“앞으로 2주밖에 안 남았으니까 이것저것 토론할 시간도 없다. 지금 상황에서 뭐가 가장 유권자 피부에 와 닿을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다. 내가 20대 총선 때 들고 나온 것도 ‘포용적 성장’과 경제민주화다. 그거 두개로 선거 운동했다. 여당 비난한 적도 없고 개인을 비난한 적도 없다. 그런 선거운동은 안 한다.”
-한때 공동 선대위원장 이야기도 있었다.
“선거 본부라는 게 사람이 많다고 해서 잘되는 건 아니다. 작지만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데 시간낭비하지 말아야 하는데 공동위원장은 회의도 해야 하고 밤낮으로 의견도 들어야 한다. 지금 시간이 없다.”
-며칠 전만 해도 이런 상황(단독 선대위원장)이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 별로 없었다.
“나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 압박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나를 너무 압박했다. 구국의 일념을 가지고 하라는 거다. 편안하게 살라 하지 말고, 이제 뭘 더 바라겠느냐면서.
나도 좀 편히 살다 죽어야하지 않겠나 했는데 할 수 없는 거지. 우리 할아버지(가인 김병로) 생각도 났다. 77세 때에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사시느냐’ 물으니 ‘이 녀석아, 내가 안 도와주면 아무것도 안되니까 하는 거야’ 하셨다. 할아버지도 지금 내 행동을 보면 잘했다고 할 꺼다.”
그는 이번 선거운동이 명예회복 성격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안과 치료를 기다리다 점잖은 사람들로부터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에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는 힐난성 질문을 들었다는 대목을 읽었다. 당시 좀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다.
“그렇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을 때 뭐라고 답했나.
“답을 못했다. 이게 국민들의 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아닌가 느껴졌다. 이번에 자서전내면서 ‘두 번 사과한다’고 까지 썼지만. 사과갖고 되겠느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두 번에 걸쳐서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는데 나를 원망하는 이야기들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사모님 반대는 없었나?
“집사람도 구국의 일념으로 하라고 자꾸 그러는 거다. 내가 며칠 전에 (선대위원장) 1%의 가능성은 있다고 했는데 집사람은 50% 가능성 얹어 줄 테니 51%의 가능성으로 하라는 거다. 우리 집사람도 ‘당신 남편이 문재인 정권 만들어서 나라가 이렇게 됐다’고 원망하는 소리를 많이들었다고 한다.”
-생물학적 나이로 여든이다.
”아직까지는 나를 지탱할만한 힘이 있다. 머리도 예전과 똑같이 작동한다. 별로 잊어버린 것도 없다. 3년간 놀고 지낸 것도 아니고. 최신 서적, 세계경제구조 변화, 동향이니 이런 걸 꾸준히 지금까지 공부해오고 있기 때문에, 생소한 건 하나도 없다. 내가 매니지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됐다면 감히 덤벼들지도 않았다.”
-노욕이니, 심지어 댓글에는 노망이란 거친 말까지 있다.
“정치가 결정 안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소위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 2016년 총선 때 민주당 비대위 대표했을 때 종편에서 나를 얼마나 씹어댔나. 총선 앞두고 60석 80석도 못한다면서 자기들 멋대로 이야기했다. 그래놓고 정작 총선에서 1당 하니까 말 한 마디도 안 해. 그게 우리나라 평론가들이라는 사람들이다.
어떻든, 내가 그동안 나를 선거기술자라고 자랑한적 있는가, 스스로 뭐 하겠다고 이야기한적 있는가, 다 찾아와서 애걸복걸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서 나름대로 뭘 좀 기여를 하겠다는 거지 내가 무슨 특별한 욕심 있어서 하는 거 아니다.”
-당신 삶을 이렇게 마지막까지 몰아대는 동력은 뭔가?
“내가 배운 게 경제다. 나의 주 생명력을 줬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상황이 이렇게 백척간두에 서게 됐는데, 나 나름대로 국민을 위해 기여를 해야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강박감이 있다.
지금 우리가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는 건 의료 보험 시스템인데 내가 그걸 도입한 사람 아닌가. 의료보험 도입할 때도 싸우며 일했다. 막강 관료들은 물론 같은 동료 교수들도 의료보험 다 반대했는데 그걸 관철시킨 사람이다. 아파도 돈 없어서 병원 못가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그가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고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시절에는 보험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의 아이디어는 독일 모델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1881년에 독일 경제상황이 1970년대 중반 우리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스마르크가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그게 기초가 되어서 독일이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고 있고 민주주의도 실현할 수 있었다.
최근 구라파에 코로나감염자들이 많은데 독일은 왜 적은가? 의료체계가 다른 곳보다 잘되어있어 가능한 거다.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경제만 생각해갖고 다른 거를 다 등한시하면 언젠가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내가 경제민주화 주장한 것도 국가라는 공동체가 기능을 발휘하고 안정적으로 가려면 한 경제 세력이 나라를 지배하는 사태를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차세대 리더 안 보인다”
-계속 이겨왔다. 이번 선택은?“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국민이 현명하기 때문에, 지난 3년간 이 정부 실정 놓고 봤을 때 어떻게 판단할거냐. 그런 확신을 갖고 있다. ”
-지난 3년 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대안세력을 찾는 행보를 한 걸로 아는데.
“양 정당이 하도 한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70년대 후반 출생자가 주도하는 정치세력이 나타나길 간절히 바랐다. 그게 나오면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나로서는 세컨드 초이스를 한 것이다. 퍼스트 베이스가 없으니 차선으로 가는 거야.”
-미래 리더가 안보이던가?
“이번에 보고 대단히 실망했다. 큰 정치를 하는 척 하면서 큰 당에서 공천이나 하나 얻어 볼까 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총선이 끝나면 대선인데 보이는 주자가 있나?
“현재로선 안 보이는데, 이번 총선 끝나면 새롭게 나타나는 사람 있을 거야.”
-시대가 누군가를 만들지 않을까.
“그렇지. 그중에서 잘 선택해야지.”
-어떻든, 박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도울 때 칭찬을 하면서 시작했다. 이번에 황 대표를 향해서도 ‘정직’이란 표현을 썼고.
“박근혜(존칭 생략)를 칭찬했던 게 아니다. 그를 내가 왜 택했느냐, 과거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의 불행이 탐욕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권력이나 물질에서 탐욕이 심하거나, 주변에 가족 많아서 사고 쳤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통령 만들면 나라가 정상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혜는 결혼 안해 자식이나 가족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대통령했고 해서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고 해서 도와준 거다. 근데 선거 막바지에서 문제가 있다는 걸 느꼈다.”
-문 대통령은?
“그 사람 대통령 만들려고 간 거 아니다. 당시 야당이 무너져서, 보수정권의 장기집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건전한 야당 존속 위해 도와줘야겠다, 그래서 갔던 거다. 그 결과가 문(文)을 만든 거지. 이번에도 황교안을 대통령 만들자는 생각에서 가는 게 아니다. 이번 국회에, 현 여당이 소위 자기 주변 패거리들과 함께 다수로 들어오면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대한민국이 추락할지 모른다는 절박감에서 돕는 거다.”
-모두 도와주고 나중에 비판으로 돌아서니,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거 아닌가.
“선택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 당에서 맨날 뽑아놓으면 그 다음부턴 선택이 없는 거 아닌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국민도 똑같다. 현 정치 제도 하에서 정당에서 패거리 거느리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 능력에 관계없이 국민은 선택할 수밖에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