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사회운동가인 ‘이브 렌슬러’의 작품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시작부터 바로 이 금기를 통렬하게 깨부순다.
“○○, 세상에… 내가 말했네요”라고. 작품명 ‘Vagina’의 뜻이기도 한 이 ○○라는 단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연극배우 서주희 씨가 연극무대에 올려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9월15일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맹연습 중인 연극배우 장영남(33) 씨는 그래서 더 버겁다. 사회의 금기를 깨뜨리는 일도 힘든데, 앞서간 선배 배우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도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연극배우로서 모노드라마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능력도 아직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가 뭔가 모험을 하도록 자극을 줬다. 언젠가는 한번쯤 깨지거나, 밟히거나 아니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기분이 들 텐데, 조금 일찍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이 작품은 나에게 또 다른 추억을 남길 듯하다.”
장 씨는 요즘 대학로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다. 1995년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 2001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자상에 이어 2002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으로 제38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동료 배우들이 함께 공연하고 싶은 여배우로도 자주 꼽는다. 하지만 장 씨에게는 이런 주변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이고 고민이다. 장 씨가 이 작품을 통해 모험을 선택한 본질적인 이유다.
“내가 나를 더 버려야 할 시기에 오히려 뭔가를 챙기는 느낌이 들어 혼란스럽다. 주변의 호평과 관심이 자꾸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한다. 호흡이 자꾸 짧아지고, 막혀버리는 듯하다. 다 털어버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연기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신기하고 놀랄 때가 많다”는 장 씨. 조금은 쑥스럽고, 조금은 뻔뻔할 수밖에 없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549호 (p9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