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화력발전소 완전 폐쇄한 영국, 원전 강국 향한 강한 의지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270% 증설, 롤스로이스와 손잡고 SMR 개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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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이었다. 1600년 연간 2만5000t이던 영국 석탄 생산량은 1830년대엔 연간 3000만t으로 대폭 늘어났다. 영국은 한때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의 85%를 차지하기도 했다.

    142년 만에 문 닫는 석탄화력발전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석탄화력발전소인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가 9월 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위키피디아]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석탄화력발전소인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가 9월 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위키피디아]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인 1750년 영국 런던이 유럽 최대 도시가 된 주된 이유는 석탄이라는 에너지원 때문이었다. 18세기 중엽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석탄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증기기관, 증기선, 증기기관차가 탄생하고, 석탄을 연료로 한 제철법이 개발되면서 석탄 수요는 급증했다. 영국은 가장 먼저 상업용 석탄화력발전소가 세워진 나라다. 미국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에디슨전등회사가 1882년 세계 최초로 런던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했다.

    그랬던 영국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석탄을 연료로 하는 발전을 완전히 중단하는 첫 국가가 된다.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이달 말 문을 닫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독일 에너지기업 유니퍼가 잉글랜드 노팅엄셔에서 운영하는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가 그 주인공이다. 1968년 가동을 시작한 이 발전소의 설비용량은 2000㎿(메가와트)로, 매일 홍차 10억 잔을 끓일 수 있는 전력을 200만 가구에 공급해왔다. 이 발전소가 폐쇄되면 영국 석탄화력발전은 14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 폐쇄는 2030년까지 발전 부문 탈탄소화,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한다는 영국 정부의 목표에 따른 것이다. 영국 공영 BBC 방송에 따르면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 해체 작업은 10월 시작돼 2년간 이어지며, 이후 냉각탑을 비롯한 발전소 부지 철거 작업이 이뤄질 계획이다. 직원 170명 중 120여 명이 해체 작업에 참여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었지만 1990년대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가 생산된 후 가스발전소가 급성장하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석탄화력발전은 1990년 영국 전체 전기 공급량의 80%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지난해에는 전체 전력의 1%에 그쳤다. 이 시기 가스발전이 34.7%, 풍력·태양광발전이 32.8%, 원자력발전이 13.8%, 바이오에너지발전이 11.6%를 차지했다. 석탄화력발전이 대폭 줄어든 이유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탄소세 부담과 재생에너지의 부상 역시 석탄발전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석탄화력발전을 선도했던 영국이 해당 발전에 종지부를 찍는 첫 국가가 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4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G7 기후·에너지·환경장관들은 2035년까지 자국 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영국은 G7 국가 가운데 올해 안에 가장 먼저 석탄화력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자 독일은 2038년, 캐나다는 2030년, 프랑스는 2027년, 이탈리아는 사르데냐섬을 제외하고 2025년을 목표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할 계획이다. 미국도 203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했다.

    반면 일본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대한 구체적인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일본은 전력 생산에서 석탄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일본은 전력 생산에서 석탄의 비중이 27%나 된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비중을 급격하게 줄였기 때문에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G7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기로 결정해 기후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이에 따른 에너지 대란도 우려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의 전기차 전환, 가스 난방에서 히트펌프로 전환, 인공지능(AI)용 데이터센터 신설 등으로 향후 영국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2050년이면 영국 전력 수요는 현 2배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은 원자력발전소를 대거 건설해 전력 수요를 보충한다는 계획이다.

    석탄화력발전 줄이는 G7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 6.5GW (기가와트) 수준에서 24GW로 늘려 전체 전력 생산의 25%를 원자력발전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영국은 남서부 서머싯주 브리지워터에 1.6GW 규모의 대형 원전 2기를 건설하는 힝클리 포인트 C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은 2029년부터 완공될 예정이다. 이 원전을 건설 중인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당초 2025년에 원전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2029년으로 연기했다. 이 때문에 원전 건설비용은 180억 파운드(약 31조4000억 원)에서 460억 파운드(약 80조3400억 원)로 상승했다.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은 영국 총 전력 수요의 7%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영국은 남동부 서퍽주 사이즈웰 C 지역에 3.2GW 규모의 사이즈웰 C 원전도 건설할 계획이다. 이 원전은 이르면 203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이즈웰 C 원전도 영국 전체 전력 수요의 7%를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영국 정부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 5년마다 3~7GW 규모의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 콜더홀을 건설한 바 있다. 영국은 이후로도 15년간 원전 28개를 지었다. 원전 강국이던 영국이 직접 원전 건설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1980년대부터 원전 건설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국은 원전 설계·시공 능력 대부분과 관련 인력을 상실해버렸다. 영국이 프랑스 전력공사에 원전 건설을 맡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국 롤스로이스가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감도. [롤스로이스 제공]

    영국 롤스로이스가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감도. [롤스로이스 제공]

    ‌영국 정부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통해 원전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앞으로 5년간 2억 파운드(약 3500억 원)를 투자해 최대 16기의 SMR을 건설할 계획이다. SMR은 탈탄소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전력 생산 게임 체인저로 부상 중이다. 특히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비가 월등하게 적은 SMR의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전 세계적으로 2030년 30~180여 기, 2050년 400~1000여 기의 SMR이 가동될 것으로 예측한다. 영국의 경우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 기업 롤스로이스가 SMR 개발과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잠수함용 원자로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롤스로이스는 2029년 470㎿급 SMR 1호기를 만들고 2035년까지 10기, 2050년까지 16기를 제작할 계획이다.

    롤스로이스가 개발 중인 SMR이 차지하는 부지는 기존 대형 원전의 10분의 1 넓이다. 원자로를 비롯해 주요 설비를 하나의 커다란 용기에 담은 일체형으로, 수명은 60년이며 기당 470㎿ 전력을 생산해 45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다. SMR 16기 건설이 완료되면 520억 파운드(약 90조82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폴 스테인 롤스로이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SMR 사업으로 새로운 일자리 4만 개를 창출해 영국 원전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원자력규제청도 롤스로이스가 개발한 SMR을 대상으로 한 총 3단계 심사 중 1단계를 마쳤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크기만 한 소형원자로를 만들어 2029년까지 달에 보내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항공우주국은 롤스로이스의 SMR 연구개발에 290만 파운드(약 50조65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톰 그레이터렉스 영국 원자력산업협회 회장은 “대형 원전과 SMR을 동시에 추진하는 쌍방향 접근법이 영국을 원전 강국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첨단 핵연료 생산 국가 포문 여나

    영국 정부는 차세대 핵연료로 주목받고 있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을 생산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전에는 농축도가 5% 미만인 저농축 우라늄(LEU)이 사용된다. 그런데 SMR 등 차세대 원전에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이 필요하다.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은 우라늄235의 농축도가 5∼20%인 핵연료다.

    현재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뿐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자칫 SMR 등 차세대 원전에 공급하는 핵연료를 독점할 수도 있다. 영국 정부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의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자 3억 파운드(약 5240억4000만 원)를 들여 자체적으로 이를 개발, 생산할 방침이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지역에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 생산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경우 영국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에서 첨단 핵연료를 생산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앞으로 전 세계에서 첨단 핵연료를 생산하는 선도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이처럼 석탄화력발전소를 완전 폐쇄하는 대신 원전 강국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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