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10월 4일 모스크바 국제 에너지포럼에서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밝히며 한 말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7월 2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평양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서 접한 정보를 17년간 비밀에 부치다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에 공개했다.
공고해지는 북․러 밀월관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크렘린궁 제공]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가 최근 2000년대 초반처럼 북한을 비호하고 나섰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2월 10일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과 인터뷰에서 “만약 미국의 도발이 계속된다면 북한 지도부가 그들의 국가 방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핵실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마체고라 대사는 “만약 핵실험이 이뤄진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일 7일 러시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역내에서 도발적 움직임을 계속한다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방위력 추가 증강을 위해 신규 핵실험을 결정하는 편이 낫다”고 밝혔다.
마체고라 대사가 2차례나 ‘북한 대변인’처럼 제7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러시아를 대표해 북한에 주재하는 마체고라 대사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적 주장이 아닌 본국과 조율된 입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발언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미국과 한국 등에 전달하며 위협의 강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러시아가 그 책임을 미국과 한국에 떠넘기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강력한 제재안을 제출할 것이 분명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이때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속셈을 내비친 것이다. 말 그대로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러시아, 북한제 무기 사용”
세르게이 볼피노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경찰국 수사국장이 공개한 북한 포탄 잔해 모습.[페이스북 캡처]
세르게이 볼피노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경찰국 수사국장은 2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가 하르키우 지역에서 북한제 무기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며 증거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하르키우의 한 농장에서 발견된 포탄 잔해가 나오는데, 여기에 ‘순타지-2신’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영국의 무기감시단체 분쟁군비연구소(CAR)도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1월 2일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한 탄도미사일 잔해에 한글 ‘지읒(ㅈ)’으로 보이는 문자가 손글씨로 쓰여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공군사령부는 2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13기를 요격했다며 이 가운데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1기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안드리 코스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역시 2월 16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해 2월 7일까지 러시아군이 12차례에 걸쳐 북한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7개 지역을 공격했다면서 이 미사일은 KN-23과 KN-24(북한판 에이태큼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북한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에 압도적인 양의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는 하루 2000발의 포탄을 간신히 쏘고 있는데, 북한의 도움을 받는 러시아는 하루에 1만 발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는 하루 7000발의 포탄을 발사해 하루 5000발을 발사한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위성과 핵잠수함 기술 등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1일 군사용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해 지구 궤도에 안착시켰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러시아가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 등 핵 투발 수단을 ‘만 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으로, 만리경-1호는 ‘만 리를 시야에 둔 조준경’으로 표현하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북한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는 러시아의 대함미사일 우란(kh-35)을 역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동·서해로 발사하고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화살 계열(1·2형)’과 신형 전략순항미사일이라고 밝힌 ‘불화살-3-31형’ 역시 러시아가 기술을 지원했을 수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첨단 무기 체계와 역량을 진전시키고 개발하려는 김정은의 지속적인 노력을 매우,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서 “북·러 간 급성장하는 국방 협력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보리 제재 무력화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안보리의 제재로 국제 금융망에서 고립된 북한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YT는 러시아가 자국 금융기관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금 3000만 달러(약 400억5000만 원) 가운데 900만 달러(약 120억1500만 원)의 인출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북한의 위장회사가 최근 친러시아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에 있는 러시아 은행에 계좌를 개설했다고도 전했다. 애런 아놀드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북한이 러시아를 이용해 러시아와 우호적인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리는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자산 동결, 국제금융거래 차단 등의 제재를 취해왔다.양국 간의 민간 교류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단체 관광객 97명이 2월 9일부터 12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평양 김일성 광장, 원산 마식령 스키장 리조트 등을 둘러봤다. 이는 지난해 12월 13일 북한 대외무역 전문기구인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와 러시아 연해주 정부가 합의한 ‘무역경제협조 쌍무실무그룹 제13차 회의 의정서’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 연해주 정부는 단체 관광객들이 3월 8일~11일, 3월 11일~15일 두 차례 북한을 여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2월 5일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철도를 이용해 노동자 300명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안보리는 2017년 12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통해 해외 파견 노동자를 24개월 내 전원 송환토록 했지만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를 3만 명까지 확대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노동 비자 대신 관광 비자나 유학 비자를 통한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청년층이 대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탓에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24년 만에 평양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1월 16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직접 만나 극진히 환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과 최 외무상의 면담 내용에 대해 “북한은 우리의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민감한 분야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3월 15일 실시되는 러시아 대선 이후인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즈음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로선 북한을 지렛대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지정학적 축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