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과 기사단으로 상징되는 중세의 봉건제가 붕괴된 원인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제사학자들은 생산력의 발전에 주목한다. 다른 관점에서 기술의 발전이 중세사회를 붕괴시켰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동양으로부터 전해진 화약을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칼과 창이 주요 전쟁무기였던 당시에는 영토 보호를 위해 철갑으로 무장한 군대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한 장비와 훈련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부유한 일부 귀족들이었다. 이에 따라 귀족은 방위를 담당하는 대신 농민들은 그들에 귀속되는 중세체제가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약의 힘을 받은 총알이 중장갑을 쉽게 뚫고 나가면서 유지비가 많이 드는 기사단의 존재가 무의미해졌다. 상대적으로 사용이 용이한 총포류의 보급은 소수 상비군보다는 다수 시민군의 역할을 중요하게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귀족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근대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혁명도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변화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개인이나 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까지도 무언가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의 모습에는 아직 불명확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정보유통 비용이 대폭 줄어들면서 불완전한 정보 때문에 존재했던 많은 비효율성이 제거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전자상거래가 발전하면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상품의 가격 및 수량 정보를 입수할 수 있으므로 가격은 생산비 수준으로 하락하고 가격편차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서적, CD, 소프트웨어의 가격편차는 재래시장에서보다 온라인 시장에서 더 크다고 한다. 온라인 시장에서 동일한 제품에 대한 평균적인 가격편차가 서적의 경우 33%, CD가 25%, 비행기 티켓이 2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아직 온라인 시장이 성숙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기술이 우리에게 끼칠 영향이 심대하리라는 것은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전개될 모습에 대해서는 의외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기업 차원에서는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간 제휴 또는 결합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물결을 대표하는 정보통신 업체간뿐 아니라 새로운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전통적 기업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작년 말에 인터넷 업체인 아마존사와 전통적인 소매상인 월마트사가 제휴하여 서로의 사업영역을 공유해 나가기로 한 것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신경제’와 ‘구경제’가 손을 잡았다고 평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올 들어서도 전통적 기업과 정보통신 기업들간의 활발한 제휴와 합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제와 구경제의 밀월관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개인의 삶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산업의 발전에 따라 신규 직종이 늘어나겠지만 반대로 수년 내에 급속히 몰락하는 직업도 생길 것이다. 새로운 조류 내에서도 승자보다 많은 패자가 나올 것이다. 패배자에 대해 무자비한 시장원리에 이들의 앞날을 전적으로 맡겨놓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변화의 희생자를 최소화시키고 이들을 재무장시킬 수 있는 장치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