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은사이기도 하고 서울대 총장에다 장관까지 지낸 양반이 이번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공천받으려고 JP(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대체 금배지가 뭐기에 그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지….”(국회 사무처의 모 인사)
“C전의원은 어떤 줄 아나. 얼마 전에 모 공사 사장 자리도 사표를 내고 요즘은 하루 종일 기자실과 총재실, 명예총재실을 왔다갔다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서까지 동원해 명예총재 전화받는 일을 시켰다더라. 정말 금배지 다는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없는 것이 이 판이다….”(자민련 충청권 L의원) “당직 인선이 발표되고 나서 제일 똥줄이 빠진 사람들이 공천희망자들이다. 우리들도 사무총장이 김옥두의원으로 바뀔 줄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한화갑총장으로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이 때문에 한총장에게 줄대고 있던 사람들은 김총장에게 라인을 대기 위해 그야말로 난리를 치는 중이다. 참 살벌한 풍경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새천년민주당 L중진의원)
당선 위해서라면 체면도 인격도 없다?
적도, 동지도, 피눈물도 없는 세계. 바로 정치판이다. 그리고 이런 세계를 만드는 중심에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있다. 요즘 각 정당의 주요 당직자 방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양복은 말쑥하게 잘 차려 입었지만, 퀭하니 들어간 눈에 뭔가 초점을 잃은 듯한 시선, 부어올라 터진 입술, 까칠해진 얼굴, 전과 다르게 훌쩍 야윈 몸집…. 공천을 위해 온 몸을 던지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총선출마 희망자들에게는 요즘 그야말로 까다롭기 짝이 없는 ‘시어머니’가 한 명 더 생겨났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참여연대의 박원순상임집행위원장이 ‘부적격자 명단’에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는 전화를 100여통 가까이 받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명단에서 빠지기 위한 현역 의원들의 로비는 가히 필사적이다. 의원들의 소명자료도 줄을 이었다. 처음에는 강력히 반발하던 이들도 결국 시민단체에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출마 희망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심정일 듯하다. 시쳇말로 ‘나 떨고 있니?’ 그 자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왜 아우성들인가. 도대체 금배지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뭐기에….
우선은 우리 사회가 매우 수구적인 신분사회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신분(계급)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사회적 관습과 전통이 바뀌지 않는 한, 옛날로 치자면 대제학을 지낸 양반도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행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총선출마 희망자들은 대체적으로 신분유지형과 신분상승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분유지형. “그럴 듯한 관직에 있다가 끈 한번 놓쳐봐라. 그 심정이 어떤가.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잊어 가는 것 같은 초조함에다, 나만이 초라하게 외톨이로 늙어 가는 것 같은 절박함에 빠져서 살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럴 때에 가장 적당한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다. 한번 금배지 달면 4년은 그냥 가는 것 아니냐. 적당히 자기 신분을 유지하는 데 국회의원처럼 좋은 자리가 없다.” 한나라당 S중진의원의 얘기다.
“솔직히 금배지가 별건가. 과거와 달라 축재를 하기도 힘들다. 옛날에는 금배지가 재산 불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못하다. 그러면 왜 하려고 난리냐. 뭔가 맛이 있기 때문이다. 장관과 총리를 불러서 호통치는 맛,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 맛, 나라가 돌아가는데 뭔가 내 개인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뿌듯한 맛. 바로 이런 것들이 금배지를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금배지가 별것이긴 하다.” 민주당 재선 P모 의원의 얘기. 이러니 한번 금배지를 달았던 사람은 그 기간을 더 연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헤어날 수 없다. 오죽하면 마약과 같다고 했을까. 그래서인지 한번 금배지를 달았던 사람이 낙선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처럼 각계에서 한 자락 했던 사람들이 온통 정치권으로만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우리 사회에 ‘노후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고,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 풍토도 커다란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 은퇴해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뭔가 자신만의 분야를 집대성하려는 연구활동을 잘 알아주지 않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니까 ‘대접받는 것은 역시 정치뿐이야’라는 인식이 악순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분상승형의 경우는 어떨까.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민주당 서울 공천을 희망하는 수도권 모 대학의 교수 A씨. “아침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남모르게 눈물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접받는 입장에서 대접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고,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먹고 살만이야 하지만 명예로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총선에 임하고 있다. 장관 한 번 하는 것이 소원인데, 그러자면 국회의원이 제일 빠른 길 아닌가.”
물론 이번 선거에 처음 나오는 출마자들이 모두 신분상승형이거나 출세지향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 중에는 정당의 강권에 못이겨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마를 결심한 이들도 적지 않고, 자신들의 전문성을 사회의 공익에 폭넓게 활용하고자 뜻을 굳힌 사람들도 많다. 386세대의 대부분은 그들의 대학시절을 관통한 운동성향을 정치개혁으로 승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출마의 변’ 저변에는 명예에 대한 욕구가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분상승형 출마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거철이면 으레 나타나는 ‘상습 출마자’들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그해의 국운에 대한 나름대로의 장광설을 언론사에 팩스로 보내는 모 역술인은 최근 아들과 함께 동시 출마를 선언했다. 부자가 동시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는 것. 15대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 공화당총재 역시 최근 공화당공천자를 발표하고 자신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상습출마자는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출마 자체가 직업이 돼 정치권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서울의 경우 2개 선거구당 한 명 정도는 두 번 이상 출마해 낙선한 사람들. 이번 총선 역시 상습출마자는 수백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들은 뚜렷한 직업 없이 가족의 생계조차 챙기지 못하면서도 국회의원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14대 총선 당시 김포-강화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선 김두섭전의원은 7전8기 끝에 당선되는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15대 국회의 이 부문 기록자는 4전5기의 한나라당 백승홍의원(상자기사 참조).
사실상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란 새마을호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고, 외국에 나갈 때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며, 보좌관 및 비서를 둘 수 있다는 정도다(상자기사 참조). 서민 입장에서 이것도 크다면 크겠지만 보기에 따라선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은 온갖 특혜를 다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권이야말로 그들 권력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원들은 하기에 따라선, 또 마음먹기에 따라선 어느 한 분야 정도는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내가 14대에서 모셨던 K전의원은 국회 노동위에서 노동부 관료들의 분위기를 싹 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부 관료들은 노골적으로 사측 입장만을 대변했지만, 이 영감이 노동위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서 아, 의원들이 이런 힘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한 고참 보좌관의 얘기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결함제조물책임법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도 이같은 사례 중 하나이다. 결함제조물 책임법이란 자동차급발진사고 등 제조물 결함으로 인해 인명피해나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자에게 제조업자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법안. 선진국에서는 아주 일반화돼 있고 흔히 ‘PL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소비자단체 등이 지난 80년부터 18년 동안이나 입법을 시도했지만, ‘기업에 큰 부담을 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번번이 좌절됐던 법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추미애의원의 끈질긴 주장에 의해 결국 당안으로 채택됐고, 업계의 반발과 로비에 의해 주춤하는 재경위까지 억지로 열게 만들어 간신히 통과시켰던 것. 바로 이런 예가 국회의원 자리의 진정한 매력인 셈이다.
“C전의원은 어떤 줄 아나. 얼마 전에 모 공사 사장 자리도 사표를 내고 요즘은 하루 종일 기자실과 총재실, 명예총재실을 왔다갔다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서까지 동원해 명예총재 전화받는 일을 시켰다더라. 정말 금배지 다는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없는 것이 이 판이다….”(자민련 충청권 L의원) “당직 인선이 발표되고 나서 제일 똥줄이 빠진 사람들이 공천희망자들이다. 우리들도 사무총장이 김옥두의원으로 바뀔 줄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한화갑총장으로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이 때문에 한총장에게 줄대고 있던 사람들은 김총장에게 라인을 대기 위해 그야말로 난리를 치는 중이다. 참 살벌한 풍경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새천년민주당 L중진의원)
당선 위해서라면 체면도 인격도 없다?
적도, 동지도, 피눈물도 없는 세계. 바로 정치판이다. 그리고 이런 세계를 만드는 중심에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있다. 요즘 각 정당의 주요 당직자 방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양복은 말쑥하게 잘 차려 입었지만, 퀭하니 들어간 눈에 뭔가 초점을 잃은 듯한 시선, 부어올라 터진 입술, 까칠해진 얼굴, 전과 다르게 훌쩍 야윈 몸집…. 공천을 위해 온 몸을 던지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총선출마 희망자들에게는 요즘 그야말로 까다롭기 짝이 없는 ‘시어머니’가 한 명 더 생겨났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참여연대의 박원순상임집행위원장이 ‘부적격자 명단’에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는 전화를 100여통 가까이 받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명단에서 빠지기 위한 현역 의원들의 로비는 가히 필사적이다. 의원들의 소명자료도 줄을 이었다. 처음에는 강력히 반발하던 이들도 결국 시민단체에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출마 희망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심정일 듯하다. 시쳇말로 ‘나 떨고 있니?’ 그 자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왜 아우성들인가. 도대체 금배지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뭐기에….
우선은 우리 사회가 매우 수구적인 신분사회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신분(계급)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사회적 관습과 전통이 바뀌지 않는 한, 옛날로 치자면 대제학을 지낸 양반도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행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총선출마 희망자들은 대체적으로 신분유지형과 신분상승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분유지형. “그럴 듯한 관직에 있다가 끈 한번 놓쳐봐라. 그 심정이 어떤가.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잊어 가는 것 같은 초조함에다, 나만이 초라하게 외톨이로 늙어 가는 것 같은 절박함에 빠져서 살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럴 때에 가장 적당한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다. 한번 금배지 달면 4년은 그냥 가는 것 아니냐. 적당히 자기 신분을 유지하는 데 국회의원처럼 좋은 자리가 없다.” 한나라당 S중진의원의 얘기다.
“솔직히 금배지가 별건가. 과거와 달라 축재를 하기도 힘들다. 옛날에는 금배지가 재산 불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못하다. 그러면 왜 하려고 난리냐. 뭔가 맛이 있기 때문이다. 장관과 총리를 불러서 호통치는 맛,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 맛, 나라가 돌아가는데 뭔가 내 개인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뿌듯한 맛. 바로 이런 것들이 금배지를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금배지가 별것이긴 하다.” 민주당 재선 P모 의원의 얘기. 이러니 한번 금배지를 달았던 사람은 그 기간을 더 연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헤어날 수 없다. 오죽하면 마약과 같다고 했을까. 그래서인지 한번 금배지를 달았던 사람이 낙선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처럼 각계에서 한 자락 했던 사람들이 온통 정치권으로만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우리 사회에 ‘노후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고,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 풍토도 커다란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 은퇴해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뭔가 자신만의 분야를 집대성하려는 연구활동을 잘 알아주지 않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니까 ‘대접받는 것은 역시 정치뿐이야’라는 인식이 악순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분상승형의 경우는 어떨까.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민주당 서울 공천을 희망하는 수도권 모 대학의 교수 A씨. “아침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남모르게 눈물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접받는 입장에서 대접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고,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먹고 살만이야 하지만 명예로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총선에 임하고 있다. 장관 한 번 하는 것이 소원인데, 그러자면 국회의원이 제일 빠른 길 아닌가.”
물론 이번 선거에 처음 나오는 출마자들이 모두 신분상승형이거나 출세지향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 중에는 정당의 강권에 못이겨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마를 결심한 이들도 적지 않고, 자신들의 전문성을 사회의 공익에 폭넓게 활용하고자 뜻을 굳힌 사람들도 많다. 386세대의 대부분은 그들의 대학시절을 관통한 운동성향을 정치개혁으로 승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출마의 변’ 저변에는 명예에 대한 욕구가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분상승형 출마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거철이면 으레 나타나는 ‘상습 출마자’들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그해의 국운에 대한 나름대로의 장광설을 언론사에 팩스로 보내는 모 역술인은 최근 아들과 함께 동시 출마를 선언했다. 부자가 동시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는 것. 15대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 공화당총재 역시 최근 공화당공천자를 발표하고 자신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상습출마자는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출마 자체가 직업이 돼 정치권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서울의 경우 2개 선거구당 한 명 정도는 두 번 이상 출마해 낙선한 사람들. 이번 총선 역시 상습출마자는 수백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들은 뚜렷한 직업 없이 가족의 생계조차 챙기지 못하면서도 국회의원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14대 총선 당시 김포-강화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선 김두섭전의원은 7전8기 끝에 당선되는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15대 국회의 이 부문 기록자는 4전5기의 한나라당 백승홍의원(상자기사 참조).
사실상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란 새마을호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고, 외국에 나갈 때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며, 보좌관 및 비서를 둘 수 있다는 정도다(상자기사 참조). 서민 입장에서 이것도 크다면 크겠지만 보기에 따라선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은 온갖 특혜를 다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권이야말로 그들 권력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원들은 하기에 따라선, 또 마음먹기에 따라선 어느 한 분야 정도는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내가 14대에서 모셨던 K전의원은 국회 노동위에서 노동부 관료들의 분위기를 싹 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부 관료들은 노골적으로 사측 입장만을 대변했지만, 이 영감이 노동위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서 아, 의원들이 이런 힘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한 고참 보좌관의 얘기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결함제조물책임법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도 이같은 사례 중 하나이다. 결함제조물 책임법이란 자동차급발진사고 등 제조물 결함으로 인해 인명피해나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자에게 제조업자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법안. 선진국에서는 아주 일반화돼 있고 흔히 ‘PL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소비자단체 등이 지난 80년부터 18년 동안이나 입법을 시도했지만, ‘기업에 큰 부담을 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번번이 좌절됐던 법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추미애의원의 끈질긴 주장에 의해 결국 당안으로 채택됐고, 업계의 반발과 로비에 의해 주춤하는 재경위까지 억지로 열게 만들어 간신히 통과시켰던 것. 바로 이런 예가 국회의원 자리의 진정한 매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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