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정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은 순수한 시민들의 응축된 결집력이 이같은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무혈 쿠데타’에 비견될 만하다.
시민연대에 의한 공천반대 명단 66명(무소속 한이헌의원은 이날 정계은퇴 선언으로 제외)이 발표되던 1월24일 김대중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서영훈대표 등에게 임명장을 준 뒤 “정치권이 국민의 신망을 잃어 국민이 시민단체들을 지지하는 결과가 됐으며, 크게 보면 대의민주주의가 참여-직접-전자민주주의로 가는 큰 흐름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 흐름에 발맞추는 정당과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에 의한 ‘선거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 정동영대변인도 이날 고위당직자 회의를 마치고 나와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을 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시민사회가 나선 것이며, 이는 정치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시민에 의한 ‘혁명’의 배경을 정리했다. 정대변인은 또 “정치권이 외부의 힘에 개혁되는 것은 정치권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며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J, 시민들에 의한 선거혁명 지지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의 반응과 달리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시민단체들의 총선 부적격자 명단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편파 사정’이자 ‘인위적인 물갈이 음모’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민련은 특히 김종필명예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대거 명단에 포함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이양희대변인은 논평 요구에 “어이가 없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간부회의에서 명단에 포함 된 이태섭부총재는 “공천 부적격자를 심사했다는 밀실이 성공회 사무실”이라며 “이 사무실은 민주당 이재정정책위의장의 사무실이 아니냐”고 청와대와 시민단체들의 연계 의혹을 나타냈다. 다른 자민련 관계자들 역시 “시민단체라는 ‘홍위병’을 이용해 정치권 물갈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격분했다. 이같은 자민련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다. 전체 66명 중 한나라당이 30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병역비리의혹 대상 정치인 21명 중 15명이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소문에 난감하기 짝이 없는 마당이다. 이런 사실 때문인지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편파 사정’으로 몰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날 이사철대변인은 “우리 당 의원들, 특히 편파 보복 사정에 의한 피해자들을 이번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지난번 경실련 명단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평을 발표해 ‘편파 사정’이라는 주장을 보호막으로 삼아, 여당에 대한 공세를 펼칠 태세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이런 반발이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전국민적 지지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다시 말해 공천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정가를 장악하고 있는 것. 만약 시민단체들에 맞섰다가는 선거 기간 내내 시민단체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감시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상대방 후보와의 싸움에 앞서 시민단체와 소모전을 치르는 이중의 전력 소비로 인해 그만큼 총선 전략이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 시민연대 장원 대변인은 “공천반대 명단에 포함된 인사가 출마한다면 시민운동 진영의 역량을 총동원해 낙선운동을 벌일 것” 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우선 민주당은 권노갑 김봉호 김상현 박상천 등 중진 인사들이 포함된 데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번 명단에 이들 중진 인사가 포함된 사실은 당내 중진 물갈이설과 맞물리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은 그렇지 않아도 일부 중진들의 지도위원 및 당무위원 배제설이 나와 뒤숭숭한 판이다. 지난 주말에는 당사자로 지목된 중진들이 청와대와 당에 항의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물갈이 방침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돌쇠와 같은 ‘뚝심’의 김옥두의원이 사무총장에 임명된 것도 그렇고, 김대통령이 당 중진들의 최근 면담 요청을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런 사실들은 김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중진들 공헌도와 별개로 공천에서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징표로 읽힌다. 결국 김대통령의 청와대와 시민단체들은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개혁’이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명단에 포함된 김윤환 김수한 김명윤 박관용 김정수 황낙주 정재철 오세응 신경식의원 등 중진 및 수뇌부의 공천 여부가 일차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러나 신경식의원을 제외하고는 이회창총재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이총재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공천 과정에서 ‘계파 불인정’을 선언한 이총재는 이번 명단 발표를 자신의 공천 장악력을 높이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당내 민주계와 김윤환 이기택계 등이 그동안 공천 지분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한 탓에 공천심사위마저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총재 입장에서는 시민단체들의 명단 발표를 딱히 반대하기도 어렵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과 별개로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정형근의원 등 부산 경남지역 출신 의원 12명에 대해 이들 지역 유권자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는 점. 그동안 켜켜이 쌓인 지역 감정을 감안할 때 이들 의원은 공천이 곧 당선이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이같은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이총재가 측근인 정형근의원을 공천할 것인지, 그럴 경우 유권자들이 정의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관심 사항으로 떠올랐다.
자민련의 경우는 이번 사태로 인해 민주당과 공동 여당을 계속 이끌어갈 것인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물론 내각제 갈등도 있었지만 그것이야 권력구조를 둘러싼 갈등이었지, 이번처럼 당의 존립 기반을 한꺼번에 뒤흔드는 갈등 요인은 아니었다. 따라서 공동여당의 갈등은 계속 증폭될 조짐이며, 때에 따라선 결별까지 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여-여 후보가 맞부닥침에 따라 생겨나는 파열음은 당 지도부의 견제 범위를 벗어날 것이고, 거듭된 충돌은 결국 공동 정권의 축을 허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저런 정치권의 기류 변화와 상관없이 이번 명단에 포함된 정치인은 사실상 16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가 쉽지 않게 됐다.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유례없는 세대교체가 진행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이는 한국 정치의 지형도가 근본부터 완전히 뜯어 고쳐질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대대적인 변화의 폭풍 속에서 보다 젊고, 개혁적이며, 참신한 전문가 집단이 정치권의 주류로 대체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는 멀리 내다보면 16대 대통령선거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2년 반 후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는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속출할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피플 파워’가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정치권 환경의 격변은 사당 정치, 보스 정치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몰아내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기성 정치권은 강력한 ‘자정(自淨) 시스템’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총선이든 대선이든 이에 따른 격변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시민의 힘에 의한 ‘정치 혁명 원년의 해’라 기록될 만하다.
시민연대에 의한 공천반대 명단 66명(무소속 한이헌의원은 이날 정계은퇴 선언으로 제외)이 발표되던 1월24일 김대중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서영훈대표 등에게 임명장을 준 뒤 “정치권이 국민의 신망을 잃어 국민이 시민단체들을 지지하는 결과가 됐으며, 크게 보면 대의민주주의가 참여-직접-전자민주주의로 가는 큰 흐름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 흐름에 발맞추는 정당과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에 의한 ‘선거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 정동영대변인도 이날 고위당직자 회의를 마치고 나와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을 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시민사회가 나선 것이며, 이는 정치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시민에 의한 ‘혁명’의 배경을 정리했다. 정대변인은 또 “정치권이 외부의 힘에 개혁되는 것은 정치권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며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J, 시민들에 의한 선거혁명 지지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의 반응과 달리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시민단체들의 총선 부적격자 명단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편파 사정’이자 ‘인위적인 물갈이 음모’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민련은 특히 김종필명예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대거 명단에 포함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이양희대변인은 논평 요구에 “어이가 없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간부회의에서 명단에 포함 된 이태섭부총재는 “공천 부적격자를 심사했다는 밀실이 성공회 사무실”이라며 “이 사무실은 민주당 이재정정책위의장의 사무실이 아니냐”고 청와대와 시민단체들의 연계 의혹을 나타냈다. 다른 자민련 관계자들 역시 “시민단체라는 ‘홍위병’을 이용해 정치권 물갈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격분했다. 이같은 자민련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다. 전체 66명 중 한나라당이 30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병역비리의혹 대상 정치인 21명 중 15명이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소문에 난감하기 짝이 없는 마당이다. 이런 사실 때문인지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편파 사정’으로 몰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날 이사철대변인은 “우리 당 의원들, 특히 편파 보복 사정에 의한 피해자들을 이번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지난번 경실련 명단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평을 발표해 ‘편파 사정’이라는 주장을 보호막으로 삼아, 여당에 대한 공세를 펼칠 태세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이런 반발이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전국민적 지지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다시 말해 공천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정가를 장악하고 있는 것. 만약 시민단체들에 맞섰다가는 선거 기간 내내 시민단체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감시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상대방 후보와의 싸움에 앞서 시민단체와 소모전을 치르는 이중의 전력 소비로 인해 그만큼 총선 전략이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 시민연대 장원 대변인은 “공천반대 명단에 포함된 인사가 출마한다면 시민운동 진영의 역량을 총동원해 낙선운동을 벌일 것” 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우선 민주당은 권노갑 김봉호 김상현 박상천 등 중진 인사들이 포함된 데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번 명단에 이들 중진 인사가 포함된 사실은 당내 중진 물갈이설과 맞물리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은 그렇지 않아도 일부 중진들의 지도위원 및 당무위원 배제설이 나와 뒤숭숭한 판이다. 지난 주말에는 당사자로 지목된 중진들이 청와대와 당에 항의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물갈이 방침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돌쇠와 같은 ‘뚝심’의 김옥두의원이 사무총장에 임명된 것도 그렇고, 김대통령이 당 중진들의 최근 면담 요청을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런 사실들은 김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중진들 공헌도와 별개로 공천에서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징표로 읽힌다. 결국 김대통령의 청와대와 시민단체들은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개혁’이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명단에 포함된 김윤환 김수한 김명윤 박관용 김정수 황낙주 정재철 오세응 신경식의원 등 중진 및 수뇌부의 공천 여부가 일차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러나 신경식의원을 제외하고는 이회창총재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이총재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공천 과정에서 ‘계파 불인정’을 선언한 이총재는 이번 명단 발표를 자신의 공천 장악력을 높이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당내 민주계와 김윤환 이기택계 등이 그동안 공천 지분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한 탓에 공천심사위마저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총재 입장에서는 시민단체들의 명단 발표를 딱히 반대하기도 어렵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과 별개로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정형근의원 등 부산 경남지역 출신 의원 12명에 대해 이들 지역 유권자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는 점. 그동안 켜켜이 쌓인 지역 감정을 감안할 때 이들 의원은 공천이 곧 당선이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이같은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이총재가 측근인 정형근의원을 공천할 것인지, 그럴 경우 유권자들이 정의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관심 사항으로 떠올랐다.
자민련의 경우는 이번 사태로 인해 민주당과 공동 여당을 계속 이끌어갈 것인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물론 내각제 갈등도 있었지만 그것이야 권력구조를 둘러싼 갈등이었지, 이번처럼 당의 존립 기반을 한꺼번에 뒤흔드는 갈등 요인은 아니었다. 따라서 공동여당의 갈등은 계속 증폭될 조짐이며, 때에 따라선 결별까지 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여-여 후보가 맞부닥침에 따라 생겨나는 파열음은 당 지도부의 견제 범위를 벗어날 것이고, 거듭된 충돌은 결국 공동 정권의 축을 허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저런 정치권의 기류 변화와 상관없이 이번 명단에 포함된 정치인은 사실상 16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가 쉽지 않게 됐다.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유례없는 세대교체가 진행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이는 한국 정치의 지형도가 근본부터 완전히 뜯어 고쳐질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대대적인 변화의 폭풍 속에서 보다 젊고, 개혁적이며, 참신한 전문가 집단이 정치권의 주류로 대체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는 멀리 내다보면 16대 대통령선거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2년 반 후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는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속출할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피플 파워’가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정치권 환경의 격변은 사당 정치, 보스 정치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몰아내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기성 정치권은 강력한 ‘자정(自淨) 시스템’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총선이든 대선이든 이에 따른 격변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시민의 힘에 의한 ‘정치 혁명 원년의 해’라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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