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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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은 道人들의 집안싸움

신앙대상 교체 시도가 원인… 재단법인체 대표 몰래 바꿔 갈등의 골 깊어져

  • 입력2006-07-03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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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를 넘은 道人들의 집안싸움
    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가 지난해부터 내분을 벌이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내분은 지난해 7월16일 수습대책위 소속 도인들이 경기도 여주에 있는 대순진리회 본부도장을 점거함으로써 가시화됐다. 이후 대순진리회는 여주 본부도장에 들어간 ‘수습(收拾)대책위’와 여주 본부도장을 내주고 서울 중곡동 도장으로 옮겨온 ‘도정(道政) 회복위’측으로 나뉘어, 주요 신문 광고란에 성명서 등을 내며 대립해 왔다. 지난 1월6일에는 서울 중곡동 도정회복위에 속하는 일부 도인들이 여주 본부도장 탈환을 시도했다가 수습대책위 측과 다시 충돌하는 사태를 연출했다.

    대순진리회는 강증산(姜甑山·1871∼1907) 사상을 따르는 종교다. 강증산의 사상은 유-불-선 통합을 주장하며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 사상과 비슷하나, 종교적으로는 완전 별개다. 강증산 사후 도인들은 보천-보을-태을-훔치-무극도 등 여러 개로 쪼개졌는데, 이중 가장 세력이 커진 것이 무극도를 이어받은 대순진리회다.

    대순진리회의 첫 번째 신앙 대상은 강증산이다. 두번째로는 강증산 사상을 이어 대순진리회의 모태가 된 무극도를 창시한 조정산(趙鼎山·1895∼1958)도주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조정산 도주 사후 대순진리회를 이끈 박한경(朴漢慶·1917∼1996)도전을 중요시해, 이 세 사람을 대순진리회의 ‘원위’(元位)로 모시고 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신앙대상을 모시는 곳을 ‘영대’(靈臺)라고 한다. 그런데 생전의 박한경도전은 세 사람의 원위를 모시게 돼 있는 영대에 강증산과 조정산, 그리고 석가모니를 모시게 해놓고 “절대로 바꾸지 말라”고 엄명하고 96년 작고했다. 대순진리회의 내분은 박도전의 3년상(喪)이 끝날 무렵, 한 그룹이 영대에서 석가모니를 내리고 박한경도전을 올리려고 하면서 시작됐다.

    문제의 그룹은 여주 본부도장과 천안 방면을 책임진 이모씨가 이끌고 있었다. 대순진리회는 강증산과 조정산-박한경 세 사람이 한 말은 철저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일단의 세력들이 수습대 책위를 만들고, “박한경도전이 하신 말씀을 어기고 영대에 모신 원위를 바꾸려 한 것은 잘못”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수습대책위측은 이모씨와 그 휘하 세력이 굿판을 벌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은 대순진리회를 장악할 힘을 얻기 위해 굿판을 벌였다. 굿판을 벌인 것은 대순진리회의 숭배 대상이 아닌 다른 신을 받든 배교(背敎)행위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모씨측이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자, 지난해 7월16일 새벽 수습대책위측은 이모씨와의 면담을 구실로 여주 본부도장에 난입했다.

    그 과정에서 양측은 물리적인 충돌을 빚었고, 30여명이 다치게 됐다. 이 대결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이모씨 그룹은 여주 본부도장을 내주고 서울 중곡동도장으로 물러나 도정회복위를 만들었다. 이후 양측은 7·16사태 와중에 상대가 폭언했다며 여주경찰서에 고발하는 종교인답지 않은 모습을 연출했다. 여주 본부도장을 접수한 수습대책위는 ‘빠른 개혁’을 요구하며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대순진리회는 몇 개의 학교와 병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종교단체와는 별도로 등록된 재단법인체가 있어야 한다. 7·16사태를 전후해 수습대책위측은 서울 광진세무서에 신고된 재단법인의 대표가 이모씨를 비롯한 몇 사람으로 변경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정정했다.

    이로 인해 수습대책위와 도정회복위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도정회복위측은 ‘수습대책위가 야심한 새벽에 신성한 본부도장에 난입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과 ‘수습대책위를 이끄는 몇몇 인사가 자신의 가묘(假墓)를 만들고, 그 앞에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비문까지 세워놓았다’는 것 등을 거론하며 수습대책위측을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양측은 여주경찰서와 여주지청에 상대의 부정을 고발하는 투서까지 띄웠다. 천지공사를 통해 후천선경을 만들겠다는 도인들이 자신들의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해 사회 법에 의존하려는 추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여주경찰서와 여주지청은 양쪽을 불러 화해를 유도하며 개입을 피했다.

    경찰과 검찰의 중재로 인해 지난해 가을부터 대치 국면은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난 1월6일 이 모씨가 이끄는 천안 방면 도인들이 여주 본부도장을 탈환하러 들어가 7·16사태 뒤 농성중인 수습대책위측과 다시 충돌하는 사태를 벌였다. 이에 대해 도정회복위측의 한 인사는 “1월6일 충돌은 도정회복위가 아니라 이모씨가 이끄는 천안 방면 사람들이 동원된 것”이라며, 도정회복위와 수습대책위가 다시 대립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대순진리회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는 상극(相剋) 구도를 타하고 서로 도우며 살자는 상생(相生) 구조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서로간에 원한은 풀고, 은혜로써 보답해야 한다며 ‘해원상생’(解寃相生) ‘보은상생’(報恩相生)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대순진리회가 보여준 국면은 철저한 대립과 상극구도였다.

    대순진리회 도인들도 이 점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수습대책위와 도정회복위가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문제를 풀어가라고 제의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행동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과연 해원상생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말 강증산이 창시

    지도자 사망 때마다 분열… 대학 고교 병원 등 운영


    대순진리회측 설명에 따르면 창시자인 강증산은 신명계(神明界·하늘이라는 뜻)에 있는 상제(上帝)였다 고 한다. 조선시대 말 사회 혼란이 극심해지고 인간사가 상극으로 치닫자, 상제께서 몸소 교화하기 위해 모악산 부근의 전북 고부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는데, 이때 얻은 이름이 강일순이었다고 한다. 강일순은 호를 ‘증산’으로 정하고, 인간사를 상생 코스로 바꾸는데 진력했는데, 이 작업을 대순진리회에서는 ‘천지공사’라고 한다

    강증산이 세상을 떠난 뒤 일부 제자들이 보천교(普天敎) 등으로 갈려 나가고, 조정산(본명은 조철제)이 종파를 모아 1925년 ‘무극도’(無極道)를 창시했다. 무극도는 1941년 조선총독부의 민족종교 해산령에 따라 해체했다가, 해방후인 1948년 부산에서 ‘태극도’(太極道)로 부활했다.

    1958년 조정산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종통 다툼이 벌어져 박한경도전을 따르는 신도와 그렇지 않는 신도로 나뉜다. 박도전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태극도로 남고, 박도전을 따르는 신도들은 서울 중곡동으로 올라와 본거지를 정하고, 1972년 대순진리회로 이름을 정했다.

    이후 대순진리회는 비약적으로 교세가 커져 경기도 포천의 대진대학교와 경향 각지에 6개의 대진고등학교, 그리고 분당 제생병원 등 세 개 병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의 대순진리회 분규는 1996년 박한경도전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대순진리회는 지도자가 사망할 때마다 분열을 반복해 온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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