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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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쯤 글로벌 데이터센터 사업 본격화로 메모리 수요가 공급 넘어설 듯”

박재근 한양대 교수 “삼성전자 감산은 잘한 결정… 지금은 반도체 산업 위기이자 기회”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3-04-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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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반도체 산업의 위기이자 기회다. 삼성전자가 현 위기만 잘 극복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다시 퀀텀점프(비약적 도약)할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삼성전자에 대해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64)가 내린 평가다. 최근 삼성전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는 감산 조치에 나섰다.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이 공급 과잉으로 약세를 면치 못해 영업실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초창기 D램 산업이 자리 잡는 데 일조했고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과 생산기술센터 기술고문을 지냈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기술 개발에 성공했는데, 이 기술은 이후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오랜 시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오며 정부와 기업에 기술 자문을 하고 있다. 2018년부터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산증인인 박 교수를 4월 12일 만나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감산 조치의 의미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전략에 대해 들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지호영 기자]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지호영 기자]

    “공급 과잉에 D램 값 급락”

    삼성전자의 이례적인 감산 조치 배경은 무엇인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스마트폰 수요도 늘었다.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 등이 대대적으로 증산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발(發)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경제침체 등의 영향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감했다. 반도체시장에서 특히 큰 이슈는 D램으로, 공급 과잉 탓에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지난해 감산했고, 세계 시장점유율 40%로 1위인 삼성전자는 그간 ‘감산은 없다’고 버텼다. 반도체 부문 적자가 심화되자 삼성전자도 기술적 감산에 이어 인위적 감산을 단행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차이를 줄이는 작업을 시작한 셈인데, 실제로 삼성전자의 감산 조치 발표 이후 D램 가격이 슬라이트(slight)하게 올랐다.”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음에도 이제까지 감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초 삼성전자는 올해 3~4분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 듯하다. D램 사업은 CPU(중앙처리장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올해 초 인텔이 데이터센터 서버용 CPU ‘사파이어 래피즈’를 새롭게 내놨다. 새로운 D램 규격인 DDR-5를 지원하는 최초 CPU로, 테스트 결과 평이 좋다고 한다. 시장에서 기존 D램보다 성능이 뛰어난 DDR-5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적잖았다. D램을 생산하려면 공정에 약 3개월이 소요되므로 메모리 반도체 커스터머(수요자)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전에 주문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DDR-5 수요 증가를 고려해 감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치킨게임’으로 경쟁자를 압도하던 전략이 이제 유효하지 않은 건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구태여 치킨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삼성전자가 감산하지 않아 공급 초과 현상이 더 심해지면 D램 3사 모두 힘들어지고, 최악의 경우 업계가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감산 결심은 자사를 위해서도, 또 다른 국내 기업 SK하이닉스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다. 세계경제가 좋지 않으면 데이터센터 증설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크게 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이 서버 업그레이드 계획을 지연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업계에서 이 같은 업그레이드 지연 조짐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감산 조치는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DDR-5 수요 증가할 것”

    올해 하반기에는 반도체 시장 상황이 나아질까.

    “최근 챗GPT 같은 초거대 AI(인공지능)가 각광받고 있다. 초거대 AI를 운영하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D램, 낸드플래시가 필요하다. 설비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옛날 버전의 GPU와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하면 데이터센터의 크기와 전력 소모량이 지나치게 커진다. 따라서 DDR-5 같은 고속 D램이 필요한 것이다.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 글로버 데이터센터의 업그레이드 사업이 본격화되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해 삼성전자도 메모리 반도체 생산 총량을 줄이되, DDR-5 비중은 키울 필요가 있다.”

    “파운드리 사업, 2등은 해야 출혈경쟁 피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 (GAA)’ 기술을 적용한 3㎚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 (GAA)’ 기술을 적용한 3㎚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한파’에도 삼성전자의 맞수 TSMC의 실적은 비교적 견조하다. 두 기업의 희비가 교차한 것은 사업 구조 차이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의 제왕이라면, TSMC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최강자다. 파운드리 사업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비해 업황 진폭이 적은 데다, 최근 챗GPT 열풍으로 AI용 반도체 주문량이 급증하는 호재를 맞았다. 그 결과 TSMC의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가 3개 분기 연속 삼성전자를 앞지를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덩치를 키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확대 필요성에 대해 박 교수는 “당연한 것인데, 동시에 참 어려운 일”이라면서 “반도체시장에서 3, 4등이 되면 사실상 출혈경쟁에 노출되기에 적어도 2등은 차지해야 적자를 피하면서 지속적인 기술 투자로 왕좌를 탈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현주소는 어떤가.

    “파운드리 종류는 굉장히 많은데, 최근 주로 운위되는 것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다. 앞으로 반도체시장에선 AP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으로 AI, 메타버스,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분야에 AP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급성장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을 위시한 해외 주요 커스터머 시각에서 TSMC의 파운드리 기술력이 삼성전자보다 더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 생산량도 TSMC가 3배가량 많다. AP 일감 중에서도 수익률이 높은 최신형은 주로 TSMC에, 비교적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삼성전자 쪽으로 가는 실정이다.”

    어떤 추격 전략이 필요한가.

    “기술 측면에서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확보해 TSMC를 앞질렀다. TSMC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을 다소 개선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을 희망이 있다. 다만 반도체 산업에선 기술적으로 앞서는 것 못지않게 수율을 높이고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검증된 기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더 저렴하고 수율도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중장기적으론 삼성전자의 과감한 신기술 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 기술에만 매달리면 TSMC를 앞서기 어렵다. 차세대 기술을 적용한 제품 생산 부분에서 삼성전자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언젠가 TSMC도 GAA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할 텐데, 그 시점에서 노하우를 먼저 쌓은 삼성전자가 역전할 가능성이 있다. 가격 경쟁력이나 신뢰성 측면에서 TSMC와 동등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기술 투자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점차 커스터머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주문량이 늘면 그때 투자에 박차를 가해 생산량을 키우면 된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격랑을 맞았다. 최근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조정하면서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 지원법)은 물론, 각종 가드레일 조항을 도입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확보하고, 중국으로의 반도체 설비 및 기술 반출을 막는 게 뼈대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으로 자칫 한국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중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중국 현지에 우리 기업이 수십조 원을 들여 만든 설비가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출구 전략이 마땅치 않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곧 있을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서 반도체 산업 현안을 주요 어젠다로 논의했으면 한다.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돈을 벌어야 미국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정책을 큰 틀에서 바꿀 순 없으니, 적어도 (중국으로의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 유예 기간을 5년 단위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과 연계를 꾀하는 동시에, 국내에도 반도체 자강(自强)을 위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경기 용인시에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은 어떻게 보나.

    “기존에는 기업이 새로운 공장 부지를 조성하고 여기에 필요한 도로, 용수, 전력망 등 인프라도 구축해야 했다. 이번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 삼성전자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가 들어설 입지와 각종 인프라를 패키지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기존에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한국은 7년가량 걸렸다. 반면 미국은 3년, 대만은 2년 6개월 정도 소요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가 국가산업단지 차원에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삼성전자의 투자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남사읍 일대 전경. [뉴시스]

    삼성전자의 투자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남사읍 일대 전경. [뉴시스]

    “대학·대학원 반도체 교육 더 늘려야”

    반도체 인력은 어떻게 양성해야 할까.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해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은 1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반도체 전공수업을 들어본 사람은 20%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인력을 채용해도 현장에 바로 투입하지 못하고 2년가량 교육을 시키는 실정이다. 현장 경험을 갖춘 인력이 당장 절실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소부장업체로부터 수천 명을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소부장업체가 마치 대기업을 위한 인력 트레이닝 역할을 하는 셈인데, 소부장 산업 경쟁력에는 오히려 좋지 않은 현상이다. 결국 대학, 대학원에서 반도체 전문 인력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 교육부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반도체 대학원’을 육성하겠다고 나서는 등 노력하고 있다. 다만 지원 대상과 규모가 아직 부족하다. 향후 관련 예산을 늘려 반도체 전문 인력을 많이 양성해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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