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은 정기검진으로 조기에 발견해야 예후가 나쁘지 않다.
만성 B·C형 간염 환자 요주의!
간암은 우리나라 성인에게 세 번째 흔한 암으로, 암으로 인한 3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간암 발생률이 높은 까닭은 만성 간질환 환자가 많기 때문인데, 특히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률이 높다. 간경변은 어떤 원인이든 지속적·반복적인 손상으로 간이 굳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간경변으로 진행되면 간암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의 약 70%가 만성 B형 간염, 15~20%가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있어 간암과 간염 바이러스 감염의 관련성은 85%가 넘는다. 습관성 음주로 인한 간경변도 간암의 원인이 되며, 만성 간질환 환자의 습관성 음주는 간암 발생 위험을 2배 이상 높인다.
필자가 만성 간질환 환자를 10년간 관찰 조사한 결과 간경변 환자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았으며, 만성 B·C형 간염 환자에서도 위험성이 높았다. 특히 이들 중 40세 이상 남성, 수년 동안 매일 술을 마셔온 상습 음주자, 간수치 이상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간암 발생 위험성이 더욱 높았다.
특징적인 자각증상 없어
간암은 특징적인 자각증상이 없다. 하지만 간암이 커지거나 간경변이 동반돼 간기능이 나빠지면 증상이 나타난다. 주증상은 오른쪽 배가 아프거나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고 체중이 이유 없이 줄며, 황달이나 복수가 생겨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대부분 암이 진행된 상태로 치료가 힘든 경우가 많다. 우연히 초음파검사나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 암임을 알게 됐을 경우엔 보통 치료가 가능한데, 암 크기가 작을 때 발견할수록 치료가 쉽고 완치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간암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는 담당의사와 상의해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종양표지자 검사)를 3~6개월 간격으로 받아보는 게 좋다. 국가에서도 간암 조기진단을 위한 정기검진을 권하고 있다.
최근엔 영상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초음파를 이용한 검사,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간동맥조영술 등으로 1cm 이하 작은 간암도 찾을 수 있게 됐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는 간암 이외의 숨겨진 암을 찾아내기도 한다.
적극적 치료와 보존적 치료
간염-간경변-간암의 진행 모습.
간암의 병기는 1기에서 4기까지 나뉘는데, 1기는 종양이 1개이면서 크기가 2cm 이하인 경우다. 이때는 조기진단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 2기까지는 암이 국소적으로 존재해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3기는 종양이 크거나 여러 개여서 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4기는 암이 간에 광범위하게 퍼졌거나 간 밖에까지 퍼진 상태로 국소적인 치료가 어렵고 예후가 나쁘다.
간암의 병기를 알기 위해서는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을 하며, MRI 촬영이나 혈관조영술로 병기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PET 검사는 여타 검사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간암 치료는 간암이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1, 2기엔 환자의 전신건강과 간기능 상태를 고려해 절제수술이나 비수술적 방법으로 국소적 치료를 한다. 치료법 중 수술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이지만, 시술에 따른 부담이 커서 절제 범위와 간기능 상태를 고려해 결정한다. 간암이 1, 2기에 해당하지만 간경변이 심한 경우엔 간이식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환자의 건강상태가 수술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 비수술적 치료법으로 간동맥색전술이나 국소적 주입술을 시행할 수 있다. 간동맥색전술은 혈관조영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간암으로 향하는 혈관이 발달한 경우 효과적이며 색전술 시행 시 항암제를 투여해 이중으로 암을 파괴한다. 하지만 시술 후 간기능 악화로 황달이나 복수가 생겨 배가 붓기도 한다.
국소적 주입술로는 초음파유도하 주입 방법을 쓰는데, 종양이 2~3cm로 작으면서 그 수가 3개 이하인 1, 2기 환자에게 주로 시행한다. 그동안 많이 쓰인 방법은 100% 무수알코올을 주입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저렴하고 시술이 간편한 반면 반복 주입해야 하고 통증이 잘 생기며 간혹 완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주파열치료는 비교적 넓은 부위를 파괴해 알코올 주입 치료보다 효과적이며, 전이성 암에도 좋은 결과를 보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방사선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사선 동위원소 물질을 키토산 복합체(밀리칸)와 혼합 주입해 암을 파괴하는 방법을 국내 임상연구를 통해 동화약품과 연세대 의대가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했는데, 알코올 주입술보다 통증이 적고 여러 차례 반복해 주입하지 않아도 효과적이다.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적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임상시험한 결과 종양의 크기가 2cm 이하인 경우 한 차례 주입술로 90% 이상 완치됐으나 종양 크기가 2cm 이상이거나 여러 개인 경우, 시술자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초음파유도하 주입이 어려운 경우는 성공률이 떨어졌다.
진행성 간암의 치료
간염 예방접종은 최선의 간암 예방책이다.
최근엔 간동맥으로 항암제가 지속적·반복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케모포트(항암제 투입구를 몸에 부착하는 시술)를 몸에 삽입해 치료하는 방법도 국내외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전신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간암전문클리닉은 방사선 조사(照射) 병용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이 치료법은 간기능 저하를 우려해 한동안 금기시됐으나 최근 간암 부위에 선택적으로 방사선 조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고, 시술 경험이 발달하면서 간동맥색전술 등 다른 치료법과 병행해 효과를 높이고 있다. 필자는 간문맥혈전이 온 4기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동시 적용(국소적 항암·방사선 병용요법)해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 밖에 국소적으로 냉동치료요법, 초음파를 이용한 치료, 사이버 나이프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시도가 언론에 소개됐고, 전신적인 유전자 치료, 면역치료요법 등이 효과적이라는 보고도 있으나 앞으로 객관적으로 치료 효과를 받아들일 정도의 충분한 임상자료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1·2차 예방 모두 중요
간암은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의 경우 정기적인 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간암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1차 예방은 B형 또는 C형 간염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B형 간염의 경우 예방접종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C형은 오염된 피에 감염되지 않아야 하는데, 특히 몸에 상처를 내거나 주사침의 공동 사용 등은 피해야 한다.
2차 예방은 이미 감염된 환자인 경우 간염 관리를 잘해 간경변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항(抗)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돼 있으므로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는 것이 좋다. 습관성 음주나 폭음, 과로를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간암 치료 후의 관리
간암은 성공적으로 치료한 후에도 재발이 잘된다. 따라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는 게 중요하다. 완치를 속단해 정기검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간암의 예후는 과거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된 경우 평균수명이 3~6개월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간질환에 대한 관리와 치료법이 발전하고, 간암이 조기 발견되는 빈도가 높아진 데다 치료기술이 발달해 간암 진단 후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또한 간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팀 접근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