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시인이 있다. 꾸준히 성실하게, 마치 산을 오르듯이, 아니 그렇게 힘들여 오르고 정복하기보다는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와 들판을 공들여 산책하듯이, 꼼꼼하게 시작노트를 채워온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이 한번은 연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해외의 어디 낯선 곳에 한 열흘 갔다 와서는 ‘여행서’ 한 권씩 뚝딱 내는 요즘 같은 세태에 연어를 서너 달이나 1년쯤 들여다봤다면 어김없이 책 한 권쯤 낼 수 있으련만, 이 시인은 그 연어를 10년이나 성찰했다. 연어에게 말 걸기? 아니, 그런 경지를 넘어서서 연어가 시인에게 말을 거는 정도가 되는 10년 세월을 묵혀서야 시인은 경건하고 따스한 언어로 어루만진 은빛 물고기를 출간했다.
시인 고형렬 이야기다. 연어는 평생 동안 3200km를 회유한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살피느라 시인은 10년 세월을 바쳤다. 이 책 에서 저자(시인)는 속초 공항에 도착해 태백산맥 깊은 산중에 사는 노인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이로써 양양 남대천 강바닥에 흩뿌려진 치어가 3200km를 회유하는 연어가 되어 아름다운 한 생애를 살아가는 기록이 시작된다. 연어의 생태와 운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 생명체의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시적인 문체로 다듬어진다. 시인은 2003년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문학적 자전에서 이렇게 썼다.
“연어를 통하여 내가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성냥개비만한 치어들이 베링해까지 갔다가 다 자라서 2, 3년 만에 산란 회귀하는 그들의 놀라운 기억력과 뜨거운 죽음에 탄복한다. 그들의 일생을 그리면서 나는 은연중 내가 살아가고 있는 파편화와 상승과 동반 상실의 복잡한 시대에 이 글 한 토막을 썼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인 고형렬 경건한 찬미와 기도
연어에게 바치는 이 갸륵한 헌사는 어떤 점에서 동해 앞바다를 바라보며 성장했고 대처로 나와 서울이며 수도권을 전전하면서도 끝내 저 속초와 강릉, 그 위의 고성과 아래의 울진까지도 잊지 못하는 시인의 삶, 그러니까 연어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힘겨우면서도 고결한 견인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 고형렬은 1970년대 중반에 시단에 나왔지만, 21세기 들어 그의 깊은 눈매와 금강석 같은 시어들은 단단하게 응축돼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그는 강원도 속초시 사진리(현 장사동)에서 태어났다. 속초시의 북쪽으로, 미시령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영랑호를 낀 바닷가의 작은 동네다. 고형렬은 그곳에서 태어나 속초고교를 마치고 북쪽 고성 현내면에서 면서기 생활을 했다. 현내면은 남북이 나뉘어 있는 최북단의 분단면. 훗날 고형렬은 서울로 올라와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하고 교편을 잡기도 했으나 늘 시를 쓰면서, 그 마음의 시는 설악산 저 너머에서 서성거렸다. 다시 시인이 2003년에 쓴 문학적 자전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나의 모체와 지체는 아직도 설악 동쪽에 남아 있다.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서울 도심을 드나들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에 도착하지 못했다. 적응하지 못한 것인가. 부러 도착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작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상실감 혹은 미도착 현상이 묻혀 찾을 수 없게 될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긁으면 가려워지는 것처럼 그곳은 불편해도 없어선 안 되는, 근원에 닿게 하는 줄기 같은 것. 거기서 시가 나오는 것 같다.”
그 말처럼 그의 시는 ‘거기서’ 나왔다. 늘 속초와 설악에서 시가 나오고, 더러 대처에서 얻은 시들도 먼 곳을 돌아오는 연어처럼 설악의 저 너머 바다를 지향한다. 첫 시집이 대청봉 수박밭이었고 그의 고향 이름을 딴 사진리 대설로 큰 평가를 얻었으며, 2006년에는 밤 미시령을 출간했다. 그사이 김포 운호가든에서로 한국 서정시사의 큰 관절을 만들었다. 시 사진리 대설은 대설이 펑펑 내리다가 아흐레 만에 겨우 그친 어느 겨울날, 시인이 얻은 것이다. 그 한 대목을 읽어본다.
모든 형상과 색이 파묻혀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사진리에서 그 끝까지가 고요, 고요였다.
공룡 청봉이라는 것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하였다.
후우 세게 입김을 불면 날아가버릴 듯이 작아져서
마치 산은 사진리에서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가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듯이
맑게 갠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
고형렬의 시는 삶의 존엄성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대도시의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편들 중에는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육체적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느 섣부른 문명비판 시들과 달리 이 시들은 남녀의 건강하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보폭과 웃음과 살결을 찬미하면서, 궁극적으로 한 생애 금세 끝나갈 뿐인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그가 속초와 강릉, 그 위와 아래의 바다와 마을들, 그리고 숙명처럼 버티고 선 설악산이며 오대산 준령들에 대해 바치는 헌시들도 막연하고 공허한 자연찬가나 채 무르익지 않은 생태시의 이전 단계로 깊숙이 들어간다. 인간과 자연, 그 사이의 온갖 미물까지 포함한 이 거룩한 대지의 합일성에 대한 경건한 찬미와 기도의 힘이 고형렬의 시에는 묵직한 질량으로 담겨 있다.
미시령의 하늘에서 돌을 얻다
시인은 어느 날 미시령의 밤하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을 얻는다. 이 시를 심호흡 한번 하고 낮은 목소리라도 내가면서 천천히 읽다 보면, 이 비루하고 하찮은 생애를 살아가는 인간이 그 거룩한 대지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어 어쩌면 한순간으로 뭔가 마감되고 끝장나는 게 아니라, 우주의 영속성이라는 유전자가 우리 헐거운 몸속에도 들어 있지 않은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산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이 물음을 찾아 나는 설악의 돌을 밟고 걷는다
모든 설악의 밤은 비밀을 지키고 있다
입이 불에 데어 말할 수가 없다 때론 어떤 자들은
그것을 스스로의 우주의 저항이라 하지만 그들의 입은 달라붙어버렸다
화석이여 말문은 열지 마라 침묵을 지키자
이 산속 가득한 나무들의 생애가 알지 않느냐
뼈의 나뭇가지들 아래 뒹구는 불타버린 이빨, 등골 자국들
널려 있는 설악의 세계, 검은 화강암이 된
죽음의 길바닥을 만든, 울퉁불퉁한 혀들을 밟는다
나는 캄캄한 밤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 빛의 영혼들을 본다
머리를 들어, 아 하늘 속에 떠 있는 수많은 돌을 쳐다본다
시인 고형렬 이야기다. 연어는 평생 동안 3200km를 회유한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살피느라 시인은 10년 세월을 바쳤다. 이 책 에서 저자(시인)는 속초 공항에 도착해 태백산맥 깊은 산중에 사는 노인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이로써 양양 남대천 강바닥에 흩뿌려진 치어가 3200km를 회유하는 연어가 되어 아름다운 한 생애를 살아가는 기록이 시작된다. 연어의 생태와 운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 생명체의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시적인 문체로 다듬어진다. 시인은 2003년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문학적 자전에서 이렇게 썼다.
“연어를 통하여 내가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성냥개비만한 치어들이 베링해까지 갔다가 다 자라서 2, 3년 만에 산란 회귀하는 그들의 놀라운 기억력과 뜨거운 죽음에 탄복한다. 그들의 일생을 그리면서 나는 은연중 내가 살아가고 있는 파편화와 상승과 동반 상실의 복잡한 시대에 이 글 한 토막을 썼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인 고형렬 경건한 찬미와 기도
연어에게 바치는 이 갸륵한 헌사는 어떤 점에서 동해 앞바다를 바라보며 성장했고 대처로 나와 서울이며 수도권을 전전하면서도 끝내 저 속초와 강릉, 그 위의 고성과 아래의 울진까지도 잊지 못하는 시인의 삶, 그러니까 연어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힘겨우면서도 고결한 견인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속초 사진리(왼쪽 페이지)와 설악산 권금성.
“나의 모체와 지체는 아직도 설악 동쪽에 남아 있다.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서울 도심을 드나들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에 도착하지 못했다. 적응하지 못한 것인가. 부러 도착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작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상실감 혹은 미도착 현상이 묻혀 찾을 수 없게 될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긁으면 가려워지는 것처럼 그곳은 불편해도 없어선 안 되는, 근원에 닿게 하는 줄기 같은 것. 거기서 시가 나오는 것 같다.”
그 말처럼 그의 시는 ‘거기서’ 나왔다. 늘 속초와 설악에서 시가 나오고, 더러 대처에서 얻은 시들도 먼 곳을 돌아오는 연어처럼 설악의 저 너머 바다를 지향한다. 첫 시집이 대청봉 수박밭이었고 그의 고향 이름을 딴 사진리 대설로 큰 평가를 얻었으며, 2006년에는 밤 미시령을 출간했다. 그사이 김포 운호가든에서로 한국 서정시사의 큰 관절을 만들었다. 시 사진리 대설은 대설이 펑펑 내리다가 아흐레 만에 겨우 그친 어느 겨울날, 시인이 얻은 것이다. 그 한 대목을 읽어본다.
모든 형상과 색이 파묻혀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사진리에서 그 끝까지가 고요, 고요였다.
공룡 청봉이라는 것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하였다.
후우 세게 입김을 불면 날아가버릴 듯이 작아져서
마치 산은 사진리에서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가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듯이
맑게 갠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
고형렬의 시는 삶의 존엄성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대도시의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편들 중에는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육체적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느 섣부른 문명비판 시들과 달리 이 시들은 남녀의 건강하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보폭과 웃음과 살결을 찬미하면서, 궁극적으로 한 생애 금세 끝나갈 뿐인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그가 속초와 강릉, 그 위와 아래의 바다와 마을들, 그리고 숙명처럼 버티고 선 설악산이며 오대산 준령들에 대해 바치는 헌시들도 막연하고 공허한 자연찬가나 채 무르익지 않은 생태시의 이전 단계로 깊숙이 들어간다. 인간과 자연, 그 사이의 온갖 미물까지 포함한 이 거룩한 대지의 합일성에 대한 경건한 찬미와 기도의 힘이 고형렬의 시에는 묵직한 질량으로 담겨 있다.
미시령 새 길(아래)과 설악산에서 바라본 영랑호.
시인은 어느 날 미시령의 밤하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을 얻는다. 이 시를 심호흡 한번 하고 낮은 목소리라도 내가면서 천천히 읽다 보면, 이 비루하고 하찮은 생애를 살아가는 인간이 그 거룩한 대지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어 어쩌면 한순간으로 뭔가 마감되고 끝장나는 게 아니라, 우주의 영속성이라는 유전자가 우리 헐거운 몸속에도 들어 있지 않은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산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이 물음을 찾아 나는 설악의 돌을 밟고 걷는다
모든 설악의 밤은 비밀을 지키고 있다
입이 불에 데어 말할 수가 없다 때론 어떤 자들은
그것을 스스로의 우주의 저항이라 하지만 그들의 입은 달라붙어버렸다
화석이여 말문은 열지 마라 침묵을 지키자
이 산속 가득한 나무들의 생애가 알지 않느냐
뼈의 나뭇가지들 아래 뒹구는 불타버린 이빨, 등골 자국들
널려 있는 설악의 세계, 검은 화강암이 된
죽음의 길바닥을 만든, 울퉁불퉁한 혀들을 밟는다
나는 캄캄한 밤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 빛의 영혼들을 본다
머리를 들어, 아 하늘 속에 떠 있는 수많은 돌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