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출간된 지 9개월이 된 책에 대해 요즘도 보도자료와 책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심심치 않게 들어오고 꾸준히 증쇄를 거듭해서 웬일인가 싶다. ‘고조선 사라진 역사’(성삼제 지음)가 주인공인데, 이 책의 운명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 책이 나온 직후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 누락’ 논란이 일어났다. 새로 문을 연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전시장 벽면에 대형 연표가 걸려 있는데 여기에 고조선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언론보도를 접한 순간, 책에 소개된 일본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세계 연표가 떠올랐다. 이 연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낙랑군과 고구려 이전의 역사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돼 있다. 저자도 보도를 접하고 흥분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일본 역사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며 수정을 요청한 부분을 우리가 그대로 따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했던 저자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몇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책과 보도자료를 함께 보냈다. 이런 소동에 즈음해 책이 주목받기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웬걸. 박물관 측이 재빨리 연표에 고조선을 넣는 것으로 논란을 마무리 짓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조선 문제는 쑥 들어가버렸다. 그 와중에 이 책은 신간 취급도 못 받고, 저자가 제기한 고조선을 둘러싼 9가지 쟁점은 그렇게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 책이 요즘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드라마 ‘주몽’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를 무대로 한 ‘주몽’의 시청률이 30%대에 이르고 ‘주몽’을 앞세운 책이 이미 10여 권이 나왔다. 여기에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한국 고대사를 다루는 사극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니 고구려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이렇게 한국 고대사를 복원하다 보면 결국 고조선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고조선 사라진 역사’가 느리지만 꾸준히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책은 나름의 운명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