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마이클 볼튼, 두 우물 파 성공?

  • 정일서 KBS라디오 PD

    입력2006-04-03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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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볼튼, 두 우물 파 성공?
    마이클 볼튼의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3월31일과 4월1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4월4일에는 대구 경북대에서 그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다. 원래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것이 갑작스레 연기되는 진통을 겪은 끝에 이번에 성사됐다.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로 국내에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그이고 보면 반가운 공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백인에 의한 소울 음악, 이른바 블루아이드 소울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1953년생인 마이클 볼튼은 1970년대 중반 블랙잭이라는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가수생활을 시작했지만 초창기는 암울했다. 그의 허스키 보이스는 헤비메탈의 강력한 연주를 리드하기에는 파워가 부족했다. 오히려 그는 가수로서보다는 작곡가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후에 자신이 직접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는 그가 만든 곡이었지만, 원래는 1984년 로라 브래니건이 먼저 불러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이클 볼튼은 극적인 변신에 성공했다. 오랜 기간의 실패를 경험한 그는 소울로 음악적 방향을 급선회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 됐다. 그의 허스키 보이스와 소울은 찰떡궁합이었던 것이다. 그는 90년 벽두 3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오르며 빅 히트했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담고 있던 앨범 ‘Soul Provider’를 시작으로 91년작 ‘Time, Love And Tenderness’와 92년작 ‘Timeless’를 연달아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려놓았고, 퍼시 슬레지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When a man loves a woman’으로 다시 한 번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마이클 볼튼의 경우를 보면 아니다 싶으면 얼른 방향을 트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계속 로커를 고집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음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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