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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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들과 기네스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

[재이의 여행블루스] 문학과 미술, 음악이 도시의 중심… 제임스 조이스 등 대문호 배출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6-05-05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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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코넬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첨탑 ‘더 스파이어’. GETTYIMAGES

    오코넬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첨탑 ‘더 스파이어’. GETTYIMAGES

    아일랜드 더블린은 유럽 수도 가운데 분위기로 가장 먼저 기억되는 도시다. 화려한 랜드마크나 압도적인 스케일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이 도시의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더블린은 눈으로 보기보다 직접 걷고 듣고 마주해야 이해가 되는 도시다. 

    여행은 더블린의 현재를 보여주는 오코넬 거리에서 시작된다. 넓게 뻗은 도로 양옆으로 주요 버스 노선들이 펼쳐지고 오래된 건물과 상점, 카페가 모여 있어 자연스럽게 도시 흐름을 파악하기 좋은 곳이다. 거리 한가운데는 120m 높이 첨탑인 ‘더 스파이어’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특별한 장식 없이 하늘로 곧게 뻗은 형태로, 더블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첨탑 주변에는 중앙우체국 같은 역사적 건물도 위치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흔적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활발한 버스킹 문화

    오코넬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리피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을 건너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강변과 다리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이 이어진다. 더블린은 유럽에서도 버스킹 문화가 활발한 도시로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 팝과 전통 음악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강을 건너면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 공간인 ‘트리니티칼리지 더블린’이 나온다. 16세기에 설립된 이 대학은 아일랜드의 수많은 정치인과 사상가,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즈’), 오스카 와일드(‘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대문호를 배출한 곳이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 소음이 한 발짝 물러나고 고풍스러운 건물과 넓은 잔디밭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곳에서 꼭 들러야 할 공간은 ‘롱룸’이다. 약 20만 권의 고서가 보관된 도서관은 길게 이어진 아치형 천장과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으로 유명하다. 은은한 빛 아래 오래된 책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수백 년 시간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다시 거리로 나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템플 바’로 이어진다. 17세기 영국 정치가 윌리엄 템플경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곳은 지금은 더블린을 대표하는 문화거리로 알려졌지만 과거에는 낡고 쇠퇴한 구역이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활기찬 공간으로 변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템플 바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붉은색 외벽에 둘러싸인 펍들이 불을 밝히고, 그 공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더블린에 존재하는 펍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음악이 흐르고 이야기가 오가는 이 도시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기네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으면 옆 테이블에 자리 잡은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웃으며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분위기. 낯선 도시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이곳에서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더블린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맥주 기네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은 단순한 공장을 넘어 하나의 문화공간처럼 구성돼 있다. 맥주 역사와 제조 과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바에 닿는다. 그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기네스는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한층 더 또렷이 기억하게 한다.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아일랜드 현대미술관’으로 향하자. 17세기 군 병원 건물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4500점 넘는 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전통적인 건축과 현대미술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코넬 거리 남쪽에 위치한 리피강. GETTYIMAGES

    오코넬 거리 남쪽에 위치한 리피강. GETTYIMAGES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도시

    더블린을 여행할 때 숙소는 동선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코넬 거리 주변은 교통이 편리하고, 템플 바 인근은 밤늦게까지 이동이 수월하다. 반대로 조용한 환경을 원한다면 남쪽 주거지역 인근에 숙소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도심 자체가 크지 않아 주요 명소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펍에서는 기네스와 함께 피시앤드칩스, 스튜, 스테이크 파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현대식 레스토랑도 많이 생겨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화려한 풍경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면, 아무 이유 없이 오래 머물렀던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더블린은 그런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도시다. 비가 잦은 도시지만, 더블린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온기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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