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발이 묶인 컨테이너선이 4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근처 해상에 떠 있다. 뉴시스
이번 선박 나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1일 이란과의 휴전 연장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이후 이뤄졌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을 나포한 것은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통제 강화로 다시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혁명수비대가 무력행사에 나서자 선박들은 아예 호르무즈해협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기동성 좋은 고속 공격정 활용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이란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혁명수비대의 해군 전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미국 CBS는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 전력의 60%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고속 공격정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미국은 그동안 이란 해군 대형 함정의 92%와 기뢰 부설함 44척을 파괴했다. 이는 단일 국가 해군을 상대로 한 미군의 단기간 성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하지만 혁명수비대는 고속 공격정 등 비대칭 전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파르진 나디미 선임연구원은 “혁명수비대가 보유한 고속 공격정의 60% 이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그것들이 계속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대원들이 고속 공격정을 타고 거대한 화물선에 접근하고 있다. IRIB X(옛 트위터) 계정
혁명수비대는 3000여 척의 고속 공격정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르무즈해협에서 수많은 소형 고속정들이 근거리까지 접근해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퍼부으면,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의 첨단 방어 시스템으로도 방어하기 힘들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거대한 망치로 수백 마리의 모기를 한꺼번에 잡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호르무즈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은 폭이 34㎞에 불과해 대형 상선과 유조선 등이 기동성을 살리기 어렵다. 길이 250m가 넘는 대형 유조선은 선회와 가속이 느리다. 반면 혁명수비대의 고속 공격정은 제한된 공간에서도 급가속을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일반적 상황에서라면 미 해군 함정과 정면 승부를 벌일 수는 없는 소형 함정도 호르무즈해협에서라면 효과적인 전술 구사가 가능하다.
혁명수비대의 고속 공격정은 크게 세 종류다. ‘세라즈-1’은 영국제 경주용 보트 블레이드러너51을 제3국을 통해 도입해 역설계한 것이다. 길이 15∼16m, 폭 4.5m, 속도 80~85노트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군용 보트 중 하나로 꼽힌다. 다연장로켓과 중기관총으로 무장했고, 탄소 섬유로 동체를 제작해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였다. ‘졸파가르’는 길이 17~20m, 폭 5m, 속도 70노트로 레이더와 사거리 35㎞의 대함미사일을 탑재했다. ‘아슈라’는 기뢰 부설에 주로 쓰이며 길이 10~12m, 속도 90노트로 중기관총, RPG-7, 대함미사일, 어뢰 등으로 무장했다.
트럼프 “철통같이 호르무즈 봉쇄”
혁명수비대는 미국의 해상 봉쇄를 ‘적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혁명수비대 입장을 대변해온 이란 반관영 매체 타스님 통신은 이란이 미국의 휴전 연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해상 봉쇄는 이란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해상 봉쇄가 계속된다면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할 경우 해상 봉쇄를 무력으로 해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혁명수비대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지렛대 삼아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볼 수 있다. 혁명수비대가 무력시위를 하면 국제유가가 치솟게 되고, 그 결과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방치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다. 또 혁명수비대는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국내 여론 악화 등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버티기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실제로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려던 선박들을 나포했다는 소식에 4월 22일 브렌트유 가격이 다시 배럴당 100달러(약 14만8000원) 선을 넘어섰다.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국제유가가 더욱 치솟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4월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세계 원유 공급량은 하루 평균 1010만 배럴 감소한 9700만 배럴로 집계됐다. 전쟁 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던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석유제품 수출량이 지금은 하루 200만 배럴 안팎으로 줄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4월 23일 “현재까지 하루 평균 13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차단됐다”면서 “세계는 역사상 최대의 에너지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 또한 해상 봉쇄를 통해 미국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이란의 돈줄인 원유 수출 길을 막으면 이란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려 결국 핵 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합의에 이를 때까지 철통같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며 “미 해군 승인 없이는 어떤 배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엑스(X) 계정을 통해 “(해상 봉쇄로 인한 수출 차단으로) 며칠 안에 이란 하르그섬의 원유 저장시설이 가득 찰 것이고, 취약한 이란 유정들은 가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국방부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일대에 20개 이상의 기뢰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중 일부 기뢰는 GPS 기술을 이용해 원격 부설한 탓에 탐지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나머지 기뢰들은 혁명수비대가 고속 공격정을 이용해 직접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뢰 부설 방지를 명분으로 혁명수비대 고속 공격정에 대한 격침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는 기뢰 제거 작전이 전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보낸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기뢰 제거 작업은 전쟁 종료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최대 6개월이 걸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