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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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같지 않은 일본, 오키나와 

[재이의 여행블루스] 중국과 동남아, 일본 사이에서 해상 교역으로 번성했던 과거 독립 국가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6-04-18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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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 언덕에 자리한 슈리성. GETTYIMAGES

    나하 언덕에 자리한 슈리성. GETTYIMAGES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일본에서 가장 먼저 바다가 따뜻해지는 섬이 있다. 남쪽 바다에서 길게 이어진 류큐 열도 가운데 가장 큰 섬, 오키나와다. 4월이 되면 오키나와 공기는 이미 초여름에 가깝다. 따뜻한 햇살은 부드럽고 바다색은 에메랄드빛에서 짙은 남색으로 바뀐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같은 일본이지만 도쿄나 오사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일본이 아니라 류큐왕국(1429~1879)이라는 독립된 국가였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본 사이에서 해상 교역을 하며 번성했던 나라다. 바다를 통해 여러 문화가 들어오고 섞이면서 류큐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키나와를 여행하다 보면 일본과 닮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언어와 음식부터 건축, 음악까지 이 섬에는 류큐 문화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따뜻해지는 섬

    그 흔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나하 언덕에 자리한 슈리성이다. 붉은색으로 칠한 성문과 지붕 장식이 전통적인 일본 성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중국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색과 장식이 인상적이다. 한때 류큐왕국의 정치와 외교 중심지이던 이곳에 서 있으면 오키나와가 지나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오갔을 상인들 모습이 어렴풋이 겹쳐 보인다. 

    슈리성에서 내려와 나하 시내로 들어오면 섬 분위기가 달라진다. 오키나와의 중심 도시인 나하는 섬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공항과 항구, 시장, 상점들이 모여 있어 대다수 여행자가 이 도시를 지나게 된다. 도시 한가운데 오키나와 최대 번화가인 국제거리가 자리한다. 약 1.6㎞ 길이인 거리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카페와 아기자기한 상점이 이어지고 여행자들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낮에는 시장과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들로 붐비고, 저녁이 되면 식당과 이자카야에 불이 켜지면서 한층 활기찬 분위기를 띤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키나와 소바를 파는 오래된 가게나 지역 술인 아와모리를 내놓는 이자카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고리섬(일명 코우리섬)으로 이어지는 고리대교.  GETTYIMAGES

    고리섬(일명 코우리섬)으로 이어지는 고리대교. GETTYIMAGES

    오키나와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바다다. 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해안선과 작은 섬들이 이어진다. 북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나타난다. 고리섬(일명 코우리섬)으로 이어지는 고리대교다. 다리에 올라서면 양쪽으로 투명한 바다가 펼쳐진다. 물빛은 믿기 어려울 만큼 맑고 멀리 작은 섬들이 점처럼 떠 있다. 차를 잠시 세운 뒤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오키나와 북부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추라우미수족관이다. 거대한 수조 속을 헤엄치는 고래상어와 만타가오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리벽 앞에 서 있으면 신비로운 바다 생물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바다를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아도 바닷속 세계가 얼마나 넓고 신비로운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수족관이 자리한 해양공원 주변에는 넓은 해변과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거나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오키나와 여행의 좋은 점은 서둘러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마음에 드는 해변이 보이면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다 이름 모를 카페를 발견하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쉬어 간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여행의 추억으로 쌓인다.

    휴양과 관광이 결합된 여행

    휴양과 관광을 겸한 오키나와 여행에서 숙소는 하루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섬 북서쪽 온나손 해안에는 바다를 마주하는 리조트가 모여 있다. 창문을 열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잔잔한 파도 소리가 밀려오듯 들려온다. 수영장과 정원이 있는 호텔도 많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어떤 날은 해변을 산책하고 어떤 날은 호텔 수영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가 천천히 바다 아래로 내려가면 노을이 바다 위로 번지고 야자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행을 떠나오기 전 분주했던 일상과 마음을 무겁게 하던 일들이 어느새 조금씩 풀려가는 듯하다. 어쩌면 여행은 이렇게 마음을 다시 고요하게 만드는 순간을 만나려고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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