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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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과 함께 그때 그 영화를

‘대책 없이 해피엔딩’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7-19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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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짝과 함께 그때 그 영화를

    김연수·김중혁 지음/ 씨네21/ 339쪽/ 1만2000원

    ‘친구’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면 가슴에 온기가 돈다. 그 앞에 ‘고향’이나 ‘불알’을 붙이면 훈훈함은 두 배가 된다. 모든 이의 가슴 한구석에는 어린 시절 단짝이 산다. 내 단짝은 열 살 때부터 붙어 지내던 ‘토끼이빨’ 지현이. 지금은 간혹 안부를 묻는 처지지만, 그 친구와의 교감에는 다른 우정으로는 덧씌울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사소한 모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1년에 한 번쯤은 텔레파시가 통하는 기묘한 일도 일어난다. 혼잣말로 이름을 부르면 곧바로 문자메시지가 오거나 하는 것. ‘대책 없이 해피엔딩’을 읽다 보면 고향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 절절해진다.

    지은이 김연수와 김중혁은 오랜 친구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김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줄곧 다른 반이었던 김중혁이 김연수를 찾아와 불러낸다. 야구경기 기록지를 교환하자는 용건. 이후 단짝이 된 두 사람은 차례로 소설가 타이틀을 달고, 마흔 가까운 나이에 함께 책을 내게 된다. 2009년 1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대책 없이 해피엔딩’. 칼럼 제목은 ‘영화 대꾸 에세이’지만 ‘절친’끼리 주고받은 자유로운 편지글에 가깝다.

    책에는 모두 55개의 칼럼이 실렸다. 신작만 대상으로 하는 기존 영화칼럼과 달리, 필자들이 좋아하는 온갖 영화가 출동한다. 김연수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편이고, 김중혁은 영화 애호가지만 최근에는 ‘흡혈’ ‘뱀파이어’ 따위에 관심이 많다. ‘김연수(김중혁)가 김중혁(김연수)에게’로 시작해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이별인사’에 이르는 칼럼 가운데 몇 개를 소개한다.

    영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틈새 읽기’가 생활화된 작가들이라 작품을 읽는 눈이 만만찮다. 김연수는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에서 이별 후 찾아오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홍림과 왕이 서로의 가슴에 칼을 내리꽂는 마지막 장면.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며 죽어가면서도 끝내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통속을 넘어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김중혁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의 ‘욕’에서 주인공들의 애환을 들춘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문장 대부분이 욕. 하지만 이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분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격적인 욕이 아닌 방어적인 욕을 하는 그들을 보며 “존댓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칼로 찌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만 가지 욕을 하면서 속으로 우는 사람도 있다”는 감상을 남긴다.



    ‘더 리더 : 책 읽는 남자’를 보고 김연수는 한나를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에 반한다. 반한 김에 고향 친구 대신 윈즐릿의 답장을 받고 싶다는 바람도 적었다. 다음 회, 윈즐릿으로 분한 김중혁이 편지를 띄웠다. “제가 출연한 시트콤 ‘엑스트라즈’ 보셨나요? 독일군에게 쫓기는 수녀 역할이었는데, 촬영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나서 제 입에선 이런 욕이 튀어나왔어요. ‘아 씨팔, 무릎 아파 죽겠네.’ 제가 입이 좀 거친 편이죠.”

    읽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책을 덮고 나니 ‘영화’보다 ‘대꾸’ 쪽에 무게가 실린다. 경쟁하듯 하나 던지면 둘로 받아치는 유치함. ‘절친’인 ‘척’이 아니라 진짜 ‘절친’이어야 보듬을 수 있는 자폭 유머들. 영화와 두 사람의 추억 그리고 인생사를 넘나드는 에세이에는 단맛, 짠맛, 신맛이 골고루 녹아 있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갈음하는 책을 읽는 동안 지현이, 그리고 그때 그 ‘캔디’ ‘시티헌터’ ‘그랑블루’ 등이 머릿속을 스쳤다.

    혼자였다면 활자화된 농담 따먹기가 이렇게 그럼직했을까. 김연수가 적었듯 “아놔, 친구도 같이 썼기” 때문에 긴장은 덜고 진솔함은 더한 칼럼이 가능했으리라. 오늘 당장 친한 친구와 듀엣 에세이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한 기억 위주로 최대한 상세하고 솔직하게, 평소 말투를 고스란히 재현한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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