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은 7월 12일 기자간담회 도중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친이계 중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일부 친이 소장파 그룹 핵심 국회의원들의 파워게임은 400여 년 전 조선시대 붕당정치(당쟁)를 보는 듯하다.
당시 사림(士林)은 도(道)를 추구하는 군자들의 모임을 진붕(眞朋), 이익을 탐하는 소인들의 모임을 위붕(僞朋)으로 구분하고 자신들은 진붕이라 치켜세우며 대립되는 세력을 위붕이라 배척했다. 현재 파워게임을 벌이는 이들도 한때 서울시에서 함께 일했고 안국포럼 핵심 맴버였는데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몇 해 전만 해도 절친했던 그들은 이제 자신의 명리(名利)만을 위해 대통령 위상도 망각한 채 진붕과 위붕을 외치며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는 무절제와 배신을 연출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결백을 호소하지만 누가 진붕이고, 위붕인지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여하튼 이런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암투를 보니 칼을 후려쳐서 목이 달아날지라도 마음이 결코 변치 않을 친구, 즉 생사를 함께할 친구를 일컫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가 떠오른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을 펼치면 문경지교 고사가 나온다. 때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로 조(趙)나라 인상여는 죽음을 무릅쓰고 진(秦)나라 왕을 만나 화씨(和氏)의 벽(璧), 이른바 완벽(完璧)이라는 구슬보석을 잘 지켜 상대부의 벼슬에 앉게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째 되던 해(기원전 280)에 진나라 소양왕(昭襄王)과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면지(하남성 낙양 서쪽)에서 회견을 가졌다. 이때 인상여는 치욕을 당할 뻔했던 혜문왕을 기지로 구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습을 하도록 만들어 진나라의 왕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 공으로 그는 일약 상경(上卿)에 임명돼 당시 조나라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염파(廉頗)보다 높은 벼슬에 앉게 됐다.
인상여가 이렇듯 빠르게 출세해 높은 벼슬을 하자,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며 무훈을 쌓은 염파는 “이 몸은 적군의 성새를 공략하고 시산혈해의 야전격투에 큰 공을 세우기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그는 입술이나 놀리는 일을 가지고 오늘날 나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근본부터 보잘것없는 식객(食客) 출신 인간의 아래 벼슬이나 지키고 있기에는 도저히 창피스러워 못 견디겠다”고 노골적인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염파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 인상여를 어디서든 만나는 날에는 내 반드시 그에게 모욕을 주리라”고 폭탄선언까지 했다.
문경지교 고사가 등장하는 ‘사기(史記)’의 사마천.
그러자 인상여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내가 아무리 바보 무골충이라 한들 염파 장군 일개인이 겁나서 그렇게 했겠느냐. 다만 깊이 생각할 때, 저 강대국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무력으로 침범해오지 못하는 까닭이 염파 장군과 나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물고 뜯고 싸움을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어느 쪽이든 한 놈은 죽고 말 거야. 그러니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위급을 생각함이요,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뒤로 밀쳐두기 때문일세. 알겠나?”라고 말했다.
인상여의 이야기가 끝나자 부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얕은 마음과 속된 감정을 뉘우쳤다.
한편 이 말을 전해들은 고집불통 염파 장군도 크게 부끄러움을 느껴 가시나무 묶음을 그의 알몸 잔등에 지고 가시나무 채찍으로 사정없이 자신을 때리는 심정으로 인상여 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식객들의 안내를 받아 인상여 집의 안뜰로 들어간 그는 “면목이 없소. 미안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무어라 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천하고 어리석은 탓으로 당신의 하늘과 같이 높고 바다처럼 넓고 깊은 뜻을 몰랐던 것이외다. 나를 벌하고 용서해주시오”라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맺고 죽는 날까지 이신동체로 지냈다고 한다.
대다수 국민은 친이·친박의 대립과 대통령 인맥 간의 심각한 내분을 보면서 비웃고 있다. 정녕 자기를 낮추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인상여 같은 인물은 없는 것일까. 대통령의 가신(家臣) 그룹이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해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인상여처럼 죽음을 생각하면 용기가 솟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