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보고 따라 하면 자신의 것이 되는 기술과 달리 학문은 현시점의 단순한 ‘연마’를 통해선 결코 얻을 수 없다. 학문이란 먼저 공부한 선각자들이 쌓아올린 계단 위에 후학이 또 계단을 올리면, 다음 세대가 그 위에 올라서서 새로운 계단을 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기술이 계단의 한 지점이라면, 학문은 계단 전체를 가리키는 셈이다.
그래서 학문의 각 전문분야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과거 철학이나 문학의 시대에는 독각(獨覺)이나, 개별적 사유로 다양한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았으나, 그간 쌓아올린 계단이 까마득히 높아진 지금은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오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대부분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전문가나 학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도 이 때문. 그래서인지 타인의 전문분야에 대한 관심은 대개 호기심 수준을 넘지 않는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더라도 남자 심리학, 위험한 심리학, 협상의 심리학 같은 응용기술 차원의 지식에 관심을 가지지, 심리학 전공서적에 손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생명이 화두인 세상이 됐다지만, 일반인이 헨리 그레이의 아나토미(해부학 고전)나 가이턴의 생리학 등을 사서 읽는 경우는 없다.
얼마 전까지 경제학도 마찬가지였다. 서점에서 열풍처럼 번지는 경제학 관련 서적의 인기도 실용적 재테크나 경제행위에 대한 일반론 이상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없었다. 경제학보다 경제학을 표방한 기술서적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인 사이에 맨큐의 경제학, 프리드먼의 화폐론 등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첫째는 ‘미네르바’ 사건으로 대표되는 지적 호기심이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무용지물이 됐고,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알아야 산다’라는 구호로 대치됐다. 두 번째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에 있다. 경제학은 정치와 밀접하다. 그리고 경제학은 사회학, 심리학, 철학, 수학, 공학, 법학 등을 아우르는 일종의 융합학문이다. 그래서인지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또 몇 번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거치면서 정치적인 판단 역시 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움튼 것도 한 원인이다. 사실 정치는 경제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당장 정치세력의 정체성은 큰 정부와 작은 정부에서 가늠된다. 이것은 곧 정치권력의 경제관을 말하는 것으로, 정치는 경제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뿐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경제현상을 이해하던 일반인이 가치판단의 문제를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됐다. 언론이 전하는 정보는 늘 후행적이며, 경제지의 화려한 경제용어가 사실은 독자의 자각을 방해한다고 믿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 공부 열풍이 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이 ‘경제학 입문’ 혹은 ‘원론’ 등을 공부하고 싶어 하고 이에 대한 욕망도 높아졌다.

박경철<br>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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