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나라의 큰일이고 생사를 좌우하며 존망을 가르는 길이니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나도 익숙한 ‘손자병법’의 들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2500년 전에 남겨진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은 잔인하지만 빈발하고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무력을 동원해 한 국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자연스러운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고금을 통해 드러난 전쟁연습의 위력
하지만 어느새 이 말도 바뀌어야 할 시대가 됐다. “비즈니스는 나라의 큰일이고…”로 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적어도 ‘정상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크게 잦아든 데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둘러싸고 벌이는 기업들의 냉혹한 비즈니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의 말단 사원부터 일국의 대통령까지 총출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국가 지도자로서 ‘군 통수권자’보다 ‘국가경제의 CEO(최고경영자)’라는 이미지가 유권자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큼 시대적 요구도 변화했다.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기업경영에서는 다방면으로 전쟁의 교훈을 활용해왔다. 먼저 리더십이 대표적이다. CEO 리더십의 전범으로 거론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칭기즈 칸, 나폴레옹을 보면 대부분 전쟁에서 걸출한 업적을 일궈낸 인물이다. 또한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된 ‘전략(strategy)’도 원래는 군사용어였다. 특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화하고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전쟁의 전략적 접근법이 경영 깊숙이 뿌리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전쟁 노하우를 경영에 응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워게임(War Game)이다. 워게임은 원래 여러 사람이 아군과 적군, 외부요인 등을 나눠 맡아 벌이는 축소판 모의 전쟁이다. 한국군에서는 ‘전쟁연습’이라고 하는데, 매년 벌어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대표적인 예. 전쟁연습이라 해서 장병들이 총 들고 산야를 누비는 광경을 상상해선 안 된다. 여기서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급 부대의 지휘관이 지휘소 스크린에 펼쳐지는 북한의 가상 남침상황에 대응해 병력을 이동시키고 교전을 명령한다. 이 결과는 워게임을 진행하는 중앙컴퓨터에서 처리된 뒤 다시 각급 지휘소로 전송된다. 이렇게 적군과 아군이 의사결정, 대응행동을 반복해나가면서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워게임이 경영계의 이목을 끌게 됐을까. 오늘날의 경영환경은 글로벌화, 빠른 기술진보, 신흥국 부상 등이 한데 얽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에는 절호의 기회가 된 반면, 조선산업에서는 10년을 유지한 선두 자리를 내주는 시련이 됐다. 친환경 가치가 부각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명가 GM이 몰락하고 도요타가 막대한 재고로 골치를 썩고 있는 사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비야디(比迪)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를 앞세워 아예 경쟁의 판을 바꿀 기세다.
보드게임에서 발전 비즈니스 워게임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전쟁에서는 오히려 일상적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누가 조조군의 패배를 예상했겠는가. 병력만 따지면 조조군은 15만~25만명, 상대편인 손권-유비 연합군은 3만~5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조조군은 보급난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특히 거센 동남풍이 부는 상황을 간과하다 황개(黃蓋)가 거짓 투항하며 벌인 결정적 화공에 참패하고 말았다. 돌발적인 환경변화와 그에 따른 경쟁자의 행동을 사전에 숙려하지 못한 결과다.
기업경영에서도 환경변화의 가능성과 경쟁자의 다양한 반응을 미리 헤아려보는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천리(天理)를 읽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1980년대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가 미래 IT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을 예견하고, 미-일 경쟁자들이 불황을 이유로 투자를 기피할 때 역발상의 투자 확대로 성공의 길을 달리고 있다. 천리를 읽고 역지사지했다. 경쟁자가 시장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논리를 고민하면서 이를 능동적으로 응용하는 자세는 경영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게임은 바로 이런 소양을 길러주는 도구로서 가치가 있다. 워게임을 처음 개발하고 적용한 것은 19세기 프로이센군이었다. 19세기 초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연패한 뒤 대대적인 군제개혁에 나섰다. 특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왕족, 귀족 출신 장군들을 체계적으로 보좌하는 장교들과 전쟁 수행조직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그 결과 1807년 참모본부(Grosser Generalstab)가 설립됐고, 전문성을 갖춘 참모장교 육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개설됐다. 1824년 포병 소위였던 게오르그 하인리히 폰 라이스비츠가 아군, 적군, 판정관 등 세 편으로 나눠 벌이는 일종의 보드게임인 ‘Kriegs- spiel(전쟁놀이)’을 개발하자, 프로이센군의 참모본부는 이를 즉시 보급했다. 참모장교들은 워게임을 통해 실전에서의 돌발상황을 미리 체험해봄으로써 작전에 대한 이해와 대응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프로이센은 이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였음에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연파하고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각국 군대도 이를 벤치마킹해 도입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업경쟁에서도 응용돼 ‘비즈니스 워게임(Business War Game)’이란 형태로 발전했다. 비즈니스 워게임에서는 군사 워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양한 기업, 규제당국, 환경요인 등의 역할을 나눠맡게 된다.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지도에 표시되는 명확한 전선이 없는 대신, 시장의 소비자 역할이 추가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2004년에 영국재정청(FSA)과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이 벌인 비즈니스 워게임이 화제였다. 금융위기 이전이던 당시 두 금융당국은 날로 확대되는 모기지 규모와 관련 금융파생상품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위험을 확인하고자 워게임을 벌였다. 각 당국자가 팀을 나눠 개별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 역할을 맡은 뒤 가상의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시나리오를 점검한 것이다. 그 결과 노던록(Northern Rock) 등의 소매금융 중심 은행이 먼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뒤이어 HBOS 등 대형 은행으로 이 위기가 파급된다는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워게임을 통해 이런 결과물을 얻고도 사후조치를 게을리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대로 실제 상황이 진행돼 워게임의 유용성은 톡톡히 증명된 셈.
이 밖에도 비즈니스 워게임을 기업현장에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많다. 첫째, 앞서 말했듯 공동학습을 통해 임직원의 전략적 안목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기업구조의 특성상 개별 기업은 특정 업무에 매몰돼 좀더 큰 시장의 경쟁구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망하기 어렵다. 워게임에서는 자사의 전략적 입지, 기존 전략체계의 강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조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량이 길러진다.
둘째, 경영진의 집단사고를 방지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많은 기업에서는 CEO의 의지가 완고할 때가 많다. 설령 반론이 나오더라도 CEO의 의지를 꺾을 만큼 명확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기 때문에 건설적 논의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롤 체인지, 즉 역할 바꾸기가 좋은 자극제가 된다. 워게임에서는 CEO나 핵심 전략임원일수록 필히 경쟁사 역할을 맡아 자사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해보도록 한다. 당연히 워게임에서는 자사가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의 패배는 독약이지만, 워게임에서의 패배는 보약이다. 패배 시나리오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숙의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소통과 고정관념 물갈이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체계를 단련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군대나 경쟁에 돌입한 기업 모두 시장 및 경쟁자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쟁과 비즈니스 세계는 논리적, 합리적 판단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초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이고 막다른 골목에서도 경험, 직관, 통찰이 결합된 일격으로 상황이 급반전된다. 실무진이 머리 싸매고 작성해서 올리는 통상적인 전략기획서와 대응매뉴얼에 이러한 가능성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워게임을 통해 CEO와 경영진 모두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간접경험을 쌓아야만 효과적인 보완책이 마련될 수 있다.
과거를 반복하면 백전백패
우리는 기업경영의 통찰을 얻기 위해 기업 사례를 분석하고, 역사책을 들여다본다. 물론 과거가 오늘날에 똑같이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패턴이 반복되리라는 믿음이 기업을 망친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휴대전화 시장을 새로 개척한 모토롤러의 자신감은 1990년대 전 세계를 위성통신망으로 엮겠다는 이리듐 사업으로까지 뻗어갔다. 그러나 그 터무니없는 낙관의 결과는 1999년의 처참한 파산과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었다. 또한 소니는 1980년대 비디오 규격에서 폐쇄적인 ‘베타’ 시스템을 고수하다 VHS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1990년에 내놓은 ‘미니디스크(MiniDisc·MD)’는 실패를 교훈 삼아 상당한 개방 플랫폼을 추구했지만 이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말았다. 변화한 환경과 새롭게 무장한 경쟁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전략적 판단은 이처럼 무망하다.
반면 워게임은 경영자에게 과거와 다른 현재 게임의 법칙을 가늠하고, 열린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해준다. 워게임에서 도출되는 여러 미래 시나리오는 기껏해야 하나만 맞아떨어진다. 심지어 다 틀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통찰은 미래를 여는 힘이 된다. 손자는 불확실성에 놓인 경영자의 숙명을 이렇게 예견한 바 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적이 승리할 수 없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아군이 승리하게 할 수는 없다.”
전쟁의 오랜 역사와 워게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이 문구에 있다. 필승의 욕심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겸허한 경영자의 자세가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손자병법’의 들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2500년 전에 남겨진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은 잔인하지만 빈발하고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무력을 동원해 한 국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자연스러운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고금을 통해 드러난 전쟁연습의 위력
하지만 어느새 이 말도 바뀌어야 할 시대가 됐다. “비즈니스는 나라의 큰일이고…”로 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적어도 ‘정상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크게 잦아든 데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둘러싸고 벌이는 기업들의 냉혹한 비즈니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의 말단 사원부터 일국의 대통령까지 총출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국가 지도자로서 ‘군 통수권자’보다 ‘국가경제의 CEO(최고경영자)’라는 이미지가 유권자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큼 시대적 요구도 변화했다.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기업경영에서는 다방면으로 전쟁의 교훈을 활용해왔다. 먼저 리더십이 대표적이다. CEO 리더십의 전범으로 거론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칭기즈 칸, 나폴레옹을 보면 대부분 전쟁에서 걸출한 업적을 일궈낸 인물이다. 또한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된 ‘전략(strategy)’도 원래는 군사용어였다. 특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화하고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전쟁의 전략적 접근법이 경영 깊숙이 뿌리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전쟁 노하우를 경영에 응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워게임(War Game)이다. 워게임은 원래 여러 사람이 아군과 적군, 외부요인 등을 나눠 맡아 벌이는 축소판 모의 전쟁이다. 한국군에서는 ‘전쟁연습’이라고 하는데, 매년 벌어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대표적인 예. 전쟁연습이라 해서 장병들이 총 들고 산야를 누비는 광경을 상상해선 안 된다. 여기서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급 부대의 지휘관이 지휘소 스크린에 펼쳐지는 북한의 가상 남침상황에 대응해 병력을 이동시키고 교전을 명령한다. 이 결과는 워게임을 진행하는 중앙컴퓨터에서 처리된 뒤 다시 각급 지휘소로 전송된다. 이렇게 적군과 아군이 의사결정, 대응행동을 반복해나가면서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워게임이 경영계의 이목을 끌게 됐을까. 오늘날의 경영환경은 글로벌화, 빠른 기술진보, 신흥국 부상 등이 한데 얽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에는 절호의 기회가 된 반면, 조선산업에서는 10년을 유지한 선두 자리를 내주는 시련이 됐다. 친환경 가치가 부각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명가 GM이 몰락하고 도요타가 막대한 재고로 골치를 썩고 있는 사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비야디(比迪)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를 앞세워 아예 경쟁의 판을 바꿀 기세다.
보드게임에서 발전 비즈니스 워게임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전쟁에서는 오히려 일상적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누가 조조군의 패배를 예상했겠는가. 병력만 따지면 조조군은 15만~25만명, 상대편인 손권-유비 연합군은 3만~5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조조군은 보급난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특히 거센 동남풍이 부는 상황을 간과하다 황개(黃蓋)가 거짓 투항하며 벌인 결정적 화공에 참패하고 말았다. 돌발적인 환경변화와 그에 따른 경쟁자의 행동을 사전에 숙려하지 못한 결과다.
중국 진출과 관련한 영업전략 회의를 하는 금융기관 임원들.
워게임은 바로 이런 소양을 길러주는 도구로서 가치가 있다. 워게임을 처음 개발하고 적용한 것은 19세기 프로이센군이었다. 19세기 초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연패한 뒤 대대적인 군제개혁에 나섰다. 특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왕족, 귀족 출신 장군들을 체계적으로 보좌하는 장교들과 전쟁 수행조직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그 결과 1807년 참모본부(Grosser Generalstab)가 설립됐고, 전문성을 갖춘 참모장교 육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개설됐다. 1824년 포병 소위였던 게오르그 하인리히 폰 라이스비츠가 아군, 적군, 판정관 등 세 편으로 나눠 벌이는 일종의 보드게임인 ‘Kriegs- spiel(전쟁놀이)’을 개발하자, 프로이센군의 참모본부는 이를 즉시 보급했다. 참모장교들은 워게임을 통해 실전에서의 돌발상황을 미리 체험해봄으로써 작전에 대한 이해와 대응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프로이센은 이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였음에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연파하고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각국 군대도 이를 벤치마킹해 도입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업경쟁에서도 응용돼 ‘비즈니스 워게임(Business War Game)’이란 형태로 발전했다. 비즈니스 워게임에서는 군사 워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양한 기업, 규제당국, 환경요인 등의 역할을 나눠맡게 된다.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지도에 표시되는 명확한 전선이 없는 대신, 시장의 소비자 역할이 추가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2004년에 영국재정청(FSA)과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이 벌인 비즈니스 워게임이 화제였다. 금융위기 이전이던 당시 두 금융당국은 날로 확대되는 모기지 규모와 관련 금융파생상품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위험을 확인하고자 워게임을 벌였다. 각 당국자가 팀을 나눠 개별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 역할을 맡은 뒤 가상의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시나리오를 점검한 것이다. 그 결과 노던록(Northern Rock) 등의 소매금융 중심 은행이 먼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뒤이어 HBOS 등 대형 은행으로 이 위기가 파급된다는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워게임을 통해 이런 결과물을 얻고도 사후조치를 게을리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대로 실제 상황이 진행돼 워게임의 유용성은 톡톡히 증명된 셈.
이 밖에도 비즈니스 워게임을 기업현장에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많다. 첫째, 앞서 말했듯 공동학습을 통해 임직원의 전략적 안목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기업구조의 특성상 개별 기업은 특정 업무에 매몰돼 좀더 큰 시장의 경쟁구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망하기 어렵다. 워게임에서는 자사의 전략적 입지, 기존 전략체계의 강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조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량이 길러진다.
둘째, 경영진의 집단사고를 방지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많은 기업에서는 CEO의 의지가 완고할 때가 많다. 설령 반론이 나오더라도 CEO의 의지를 꺾을 만큼 명확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기 때문에 건설적 논의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롤 체인지, 즉 역할 바꾸기가 좋은 자극제가 된다. 워게임에서는 CEO나 핵심 전략임원일수록 필히 경쟁사 역할을 맡아 자사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해보도록 한다. 당연히 워게임에서는 자사가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의 패배는 독약이지만, 워게임에서의 패배는 보약이다. 패배 시나리오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숙의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소통과 고정관념 물갈이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체계를 단련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군대나 경쟁에 돌입한 기업 모두 시장 및 경쟁자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쟁과 비즈니스 세계는 논리적, 합리적 판단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초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이고 막다른 골목에서도 경험, 직관, 통찰이 결합된 일격으로 상황이 급반전된다. 실무진이 머리 싸매고 작성해서 올리는 통상적인 전략기획서와 대응매뉴얼에 이러한 가능성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워게임을 통해 CEO와 경영진 모두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간접경험을 쌓아야만 효과적인 보완책이 마련될 수 있다.
과거를 반복하면 백전백패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서 워게임을 하는 한미 양군(軍).
반면 워게임은 경영자에게 과거와 다른 현재 게임의 법칙을 가늠하고, 열린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해준다. 워게임에서 도출되는 여러 미래 시나리오는 기껏해야 하나만 맞아떨어진다. 심지어 다 틀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통찰은 미래를 여는 힘이 된다. 손자는 불확실성에 놓인 경영자의 숙명을 이렇게 예견한 바 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적이 승리할 수 없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아군이 승리하게 할 수는 없다.”
전쟁의 오랜 역사와 워게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이 문구에 있다. 필승의 욕심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겸허한 경영자의 자세가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