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남자들의 ‘의리’를 다룬 영화 ‘의형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진다. 송강호가 매번 같은 역할을 맡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대표하는 남성상인 ‘실패하고 외로운’ 40대를 그가 맛깔나게 연기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다.
‘의형제’는 남파되었지만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송지원(강동원 분)과 그를 쫓았던 국정원 이한규(송강호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과 북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밑그림이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체제는 배경에 불과하다. 국정원 전직 간부 이한규는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잡아 돈을 벌고, 송지원은 조국의 명령을 기다리며 잡역부로 위장근무 중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쉬리’ ‘웰컴 투 동막골’처럼 남북분단은 중요한 배경이지만 앞선 영화들과 달리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2010년 한국영화 속에서 남북관계는 어느덧 상처가 아니라 스토리가 된 셈이다.
송지원은 장기라고 할 만한 무술 실력과 은폐 능력이 있지만 지금은 쓸데가 없다. 이한규도 마찬가지. 국정원 출신을 자본 삼아 현대판 추노꾼처럼 도망간 유부녀를 잡아 돈을 번다. 도청 기술, 추적에 대한 직감이 대의명분과는 별개로 매매되고 있다. 그 와중에 송지원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고, 이한규는 이혼남이 되어 쓸쓸히 딸의 전화를 기다린다.
송지원과 이한규를 묶어주는 코드는 바로 ‘가장’이다. 그것도 실패한 가장. 장 감독은 워낙 남자 대 남자의 대결구도에 빼어난 장기를 보여주었다. 전작이자 데뷔작인 ‘영화는 영화다’ 역시 남자 대 남자의 대결구도 위에 조형됐다.
‘의형제’는 이 남자 대 남자의 대결구도에 실패한 가장의 가족 드라마를 덧씌웠다. 서로의 정체성을 속인 채 추적한다는 점에서 ‘무간도’와 닮았지만, 영화는 ‘무간도’의 비극적 자기 탐구보다는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낙관론을 제시한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같은 처지를 통해 그들은 친구가 된다.
의형제는 말 그대로 혈연이 아닌 의리와 의협심으로 맺어진 관계다. 의가 상하면 하루아침에 적이 될 수도 있고, 의를 위해 혈연보다 더한 연대감이 지속될 수도 있다. 영화가 선택한 것은 후자다. 장 감독은 조금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는 결말을 통해 그래도 ‘의’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그랬지만 ‘의형제’는 허허실실 고급스러운 말장난을 건네는 솜씨가 탁월하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감독으로 출연했던 고창석은 이번에도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웃음의 기폭제 구실을 한다. 무력한 아버지 송강호는 21세기 한국의 일상다반사를 대변하는 얼굴로 관객의 신뢰에 보답한다. 어둡고 불안한 모습의 강동원 역시 순정만화적 외모를 비장미로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장 감독은 적절한 수준에서 관객과 타협하며 배우들로부터 좋은 연기를 이끌어낸다. 어쩌면 자칭 고급 관객들은 홍콩 영화의 엔딩과 닮은 마지막 장면에서 억지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중간 중간, 두 남자가 의리로 형제애를 쌓아가는 에피소드가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의형제’는 완전한 몰입을 유도하는 추격신과 고급 농담을 통해 괜찮은 상업영화로서 합격점을 받는다. 관객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조금은 유치한 의협심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