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 동포 출신 감독 장률은 원래 소설가다. 그가 영화를 하게 된 것은 친구와의 사소한 언쟁 때문이었다. 영화감독인 친구의 작품을 보고 소설가 장률은 “이런 영화는 나도 만들 수 있다. 영화 좀 잘 만들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처음 단편영화를 만든 것이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그 뒤 장편 데뷔작 ‘당시’를 만들었다. 촬영은 했지만 후반 작업할 돈이 없어 완성을 못하던 영화 ‘당시’는 한국의 제작자를 만나 한국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공개됐다. 장률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망종’도 중국에서 촬영했지만, 감독과 여주인공 모두 조선족이고 한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다. ‘망종’으로 장률 감독은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나는 ‘망종’을 먼저 본 뒤 ‘당시’를 봤다. ‘망종’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혼자 살면서 김치 행상을 하는 조선족 여인 최순희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서사를 펼쳐나가는 비범한 솜씨에 감탄했다. 감정은 절제돼 있고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도시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미장센이 뛰어나서 미학적 쾌감이나 울림도 상당했다. 그래서 ‘망종’을 보고 장률 감독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한 영화사가 작품 제의를 해 몽골에 가서 촬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10월, ‘경계’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나를 보고 북한식 억양으로 물었다.
의사소통 단절,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어색치 않은 소통
“오랜만입니다. 영화 심심하죠?”
영화 ‘경계’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경계가 등장한다.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몽골의 경계, 문화적으로는 몽골문화와 조선문화의 경계, 성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 욕망을 표현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경계, 정착민과 유목민의 경계 등이 있지만 영화 시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사막과 초원의 경계다.
‘경계’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 전인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와 함께 초청됐다. 국제적인 감독으로 부상하고 있는 장률 감독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비밀로 감추고 있다. 그는 중국어로 어떤 소설을 썼는지도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문학과 이혼하고 영화와 결혼했는데 왜 자꾸 전체에 대해 묻습니까?”
몽골의 초원은 넓다. 카메라가 좌에서 우까지 90도 넘게 이동하는 패닝샷으로도 그 쓸쓸함은 한꺼번에 담기지 않는다. 기교적으로 표현한다면 ‘경계’는 극단적인 패닝샷의 영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롱테이크 패닝샷을 찍을 때 카메라를 지지하는 트라이포드를 세워놓고 고정샷으로 찍어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일반적인 예와 달리 핸드헬드로 찍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들이 서 있는 풍경은 조금씩 흔들린다. 인물을 따라가는 카메라 교본의 패닝샷을 버리고 인물보다 때로는 먼저, 또는 뒤늦게 카메라가 이동함으로써 사막과 초원의 텅 빈 공간을 더욱 황량하게 우리 뇌리에 각인하는 구실을 한다.
“주인공 이름을 짓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경계’의 여주인공 이름을 ‘망종’처럼 최순희, 그녀의 아들은 창호로 똑같이 지었다.”
‘망종’에서와 같이 ‘경계’의 여주인공 이름도 최순희(서정 분)이며, 아들도 창호(신동호 분)로 이름이 같다. 두만강을 넘는 도중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다. 국경을 넘은 최순희 모자가 걷고 걸어 당도한 곳은 몽골인 항가이(바트을지 분)의 텐트다. 탈북한 최순희 모자는 남자의 허락을 받고 텐트에 머문다. 항가이의 아내는 귓병을 앓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텐트에서 최순희 모자가 머무는 침대와 항가이의 침대 사이에는 커튼으로 경계가 쳐 있다.
“‘경계’를 촬영할 때 통역이 세 사람 필요했다. 나는 중국어가 더 편하고 여주인공 최순희는 한국어, 남주인공 항가이는 몽골어를 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촬영할 때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경계’에서는 최순희 모자가 쓰는 한국어와 항가이 등이 쓰는 몽골어가 교차된다. 그들은 서로의 언어로 의사소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보디랭귀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침묵 속에서 화면이 전개되고 카메라의 시선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서 있는 그들을 비출 뿐이다. ‘망종’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지역에서 김치를 팔았던 최순희는 몽골의 초원지대에서도 역시 이방인이다. 그녀는 며칠 쉬었다가 떠나려고 한다. 항가이의 몽골 텐트가 그들의 영원한 정착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아들 창호는 더 걷는 것이 싫다며 텐트에 머물기를 원한다.
“결국 ‘경계’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이야기다. 최순희 모자는 떠나고 항가이는 남는다. 자신의 땅을 지키는 것과 지킬 수 없는 것, 그 차이다.”
몽골인 항가이는 주변 사람들이 텐트를 거두고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사막지대에 묘목을 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가이는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변화하는 몽골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초원이 있는 곳을 찾아 떠돌며 살다가 한곳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묘목은 시들고 모래바람은 푸른 잎을 덮어버린다. 카메라는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느리게 이동한다. 보이는 것은 모래사막과 그 위에 심어진 묘목들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항가이의 텐트가 있다.
몽골 국민배우 바트을지의 힘 있는 연기 돋보여
장률의 영화언어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시적이며, 속도감에 의지하는 감각적 영상보다는 관찰과 응시의 내면적 언어다. 최순희 모자가 어떤 사연으로 고향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창호의 대사를 통해 그들이 평양에 살았고, 그것도 번화한 지역에 거주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들의 탈북은 다른 탈북자처럼 생계형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정착민이던 최순희는 유목민이 됐고, 유목민이던 항가이는 정착민이 되려 한다. 그 경계가 그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게 한다.
몽골의 국민배우 바트을지의 연기는 힘이 있고 여백이 크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을 혼자서 지키는 외로움과 고집, 카리스마가 잘 드러난다. 김기덕 감독의 ‘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서정은 ‘망종’의 최순희 캐릭터와 연장선상에 있다. ‘망종’과 ‘경계’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모자를 영화 속에 던져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인물일 수 있다. ‘망종’에서와 마찬가지로 ‘경계’에서도 최순희 모자를 보호해줄 사람은 없다. 그들 자신뿐이다.
최순희가 알몸으로 한밤중에 사막을 걷는 장면은 인상 깊다. 장률 감독은 그것이 몽유병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꼭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 지친 여인이 밤이 되자 알몸으로 따뜻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은 커다란 시적 울림을 준다.
“두 달 동안 딱 한 번 씻었다. 정말 고생하며 촬영했다. 촬영 끝나고 다시는 몽골에서 영화 안 찍는다고 스태프들에게 말했지만 그 말을 한 뒤 사흘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여기서 한 편만 찍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 다음 작품도 몽골을 배경으로 찍고 싶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서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률 감독은 자신의 네 번째 작품을 다시 몽골을 배경으로 찍기 위해 이미 시나리오를 썼고, 새롭게 촬영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는 ‘망종’을 먼저 본 뒤 ‘당시’를 봤다. ‘망종’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혼자 살면서 김치 행상을 하는 조선족 여인 최순희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서사를 펼쳐나가는 비범한 솜씨에 감탄했다. 감정은 절제돼 있고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도시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미장센이 뛰어나서 미학적 쾌감이나 울림도 상당했다. 그래서 ‘망종’을 보고 장률 감독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한 영화사가 작품 제의를 해 몽골에 가서 촬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10월, ‘경계’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나를 보고 북한식 억양으로 물었다.
‘경계’는 조선족 출신 장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오랜만입니다. 영화 심심하죠?”
영화 ‘경계’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경계가 등장한다.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몽골의 경계, 문화적으로는 몽골문화와 조선문화의 경계, 성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 욕망을 표현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경계, 정착민과 유목민의 경계 등이 있지만 영화 시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사막과 초원의 경계다.
‘경계’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 전인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와 함께 초청됐다. 국제적인 감독으로 부상하고 있는 장률 감독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비밀로 감추고 있다. 그는 중국어로 어떤 소설을 썼는지도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문학과 이혼하고 영화와 결혼했는데 왜 자꾸 전체에 대해 묻습니까?”
몽골의 초원은 넓다. 카메라가 좌에서 우까지 90도 넘게 이동하는 패닝샷으로도 그 쓸쓸함은 한꺼번에 담기지 않는다. 기교적으로 표현한다면 ‘경계’는 극단적인 패닝샷의 영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롱테이크 패닝샷을 찍을 때 카메라를 지지하는 트라이포드를 세워놓고 고정샷으로 찍어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일반적인 예와 달리 핸드헬드로 찍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들이 서 있는 풍경은 조금씩 흔들린다. 인물을 따라가는 카메라 교본의 패닝샷을 버리고 인물보다 때로는 먼저, 또는 뒤늦게 카메라가 이동함으로써 사막과 초원의 텅 빈 공간을 더욱 황량하게 우리 뇌리에 각인하는 구실을 한다.
“주인공 이름을 짓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경계’의 여주인공 이름을 ‘망종’처럼 최순희, 그녀의 아들은 창호로 똑같이 지었다.”
‘망종’에서와 같이 ‘경계’의 여주인공 이름도 최순희(서정 분)이며, 아들도 창호(신동호 분)로 이름이 같다. 두만강을 넘는 도중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다. 국경을 넘은 최순희 모자가 걷고 걸어 당도한 곳은 몽골인 항가이(바트을지 분)의 텐트다. 탈북한 최순희 모자는 남자의 허락을 받고 텐트에 머문다. 항가이의 아내는 귓병을 앓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텐트에서 최순희 모자가 머무는 침대와 항가이의 침대 사이에는 커튼으로 경계가 쳐 있다.
“‘경계’를 촬영할 때 통역이 세 사람 필요했다. 나는 중국어가 더 편하고 여주인공 최순희는 한국어, 남주인공 항가이는 몽골어를 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촬영할 때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경계’에서는 최순희 모자가 쓰는 한국어와 항가이 등이 쓰는 몽골어가 교차된다. 그들은 서로의 언어로 의사소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보디랭귀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침묵 속에서 화면이 전개되고 카메라의 시선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서 있는 그들을 비출 뿐이다. ‘망종’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지역에서 김치를 팔았던 최순희는 몽골의 초원지대에서도 역시 이방인이다. 그녀는 며칠 쉬었다가 떠나려고 한다. 항가이의 몽골 텐트가 그들의 영원한 정착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아들 창호는 더 걷는 것이 싫다며 텐트에 머물기를 원한다.
“결국 ‘경계’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이야기다. 최순희 모자는 떠나고 항가이는 남는다. 자신의 땅을 지키는 것과 지킬 수 없는 것, 그 차이다.”
몽골인 항가이는 주변 사람들이 텐트를 거두고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사막지대에 묘목을 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가이는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변화하는 몽골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초원이 있는 곳을 찾아 떠돌며 살다가 한곳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묘목은 시들고 모래바람은 푸른 잎을 덮어버린다. 카메라는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느리게 이동한다. 보이는 것은 모래사막과 그 위에 심어진 묘목들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항가이의 텐트가 있다.
몽골 국민배우 바트을지의 힘 있는 연기 돋보여
장률의 영화언어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시적이며, 속도감에 의지하는 감각적 영상보다는 관찰과 응시의 내면적 언어다. 최순희 모자가 어떤 사연으로 고향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창호의 대사를 통해 그들이 평양에 살았고, 그것도 번화한 지역에 거주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들의 탈북은 다른 탈북자처럼 생계형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정착민이던 최순희는 유목민이 됐고, 유목민이던 항가이는 정착민이 되려 한다. 그 경계가 그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게 한다.
몽골의 국민배우 바트을지의 연기는 힘이 있고 여백이 크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을 혼자서 지키는 외로움과 고집, 카리스마가 잘 드러난다. 김기덕 감독의 ‘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서정은 ‘망종’의 최순희 캐릭터와 연장선상에 있다. ‘망종’과 ‘경계’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모자를 영화 속에 던져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인물일 수 있다. ‘망종’에서와 마찬가지로 ‘경계’에서도 최순희 모자를 보호해줄 사람은 없다. 그들 자신뿐이다.
최순희가 알몸으로 한밤중에 사막을 걷는 장면은 인상 깊다. 장률 감독은 그것이 몽유병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꼭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 지친 여인이 밤이 되자 알몸으로 따뜻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은 커다란 시적 울림을 준다.
“두 달 동안 딱 한 번 씻었다. 정말 고생하며 촬영했다. 촬영 끝나고 다시는 몽골에서 영화 안 찍는다고 스태프들에게 말했지만 그 말을 한 뒤 사흘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여기서 한 편만 찍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 다음 작품도 몽골을 배경으로 찍고 싶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서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률 감독은 자신의 네 번째 작품을 다시 몽골을 배경으로 찍기 위해 이미 시나리오를 썼고, 새롭게 촬영 계획을 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