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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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과 ‘선택적 기억’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4-18 2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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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상실증과 ‘선택적 기억’

    ‘메멘토’

    영화에서 ‘기억상실증’은 멋진 소재로 대접받아왔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을 등장시킨 영화가 넘쳐난다. 이것도 장르라면 ‘기억상실증 장르’라고나 할까?

    1940년대 작품 ‘마음의 행로’는 이 장르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명문가의 아들인 찰스가 전쟁 중 부상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여자를 만나 결혼한 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자동차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지만 이번엔 최근 몇 년간의 나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주머니에 든 열쇠 하나가 잃어버린 과거를 풀 유일한 단서일 뿐. 사업가와 정치가로 성공한 뒤 그는 어쩌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발길을 옮기는데, 그가 이른 곳은 한때 가정을 이루며 살던 집 앞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열쇠를 현관문에 꽂아보는데….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요즘은 기억상실증이 너무 흔한 소재라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이렇게 저렇게 비튼다.

    영화 ‘메멘토’가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전직 보험수사관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설정을 복잡한 퍼즐게임 속에 배치해놓았다. 아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된 충격으로 레너드는 기억을 잃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어떤 일이든 10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다. 그는 기억을 잊지 않으려 메모와 문신을 사용한다. 그의 기억은 늘 불완전하다. 자기 자신조차 기억을 확신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의 기억을 왜곡하려는 사람들도 있어 더욱 일을 어렵게 만든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처지는 관객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관객은 느긋하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언젠가는 주인공이 기억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숨은 보물을 찾듯 기억을 되찾고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해피엔딩에 대한 확신을 갖고 결말을 기다린다.



    그것이 영화와 현실이 다른 점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반드시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최근 일본 지방선거에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재선됐다. 극우 망언, 부패 추문 등으로 곤란에 처했던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역시 신타로답게 자성하는 듯하던 선거기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의 재선은 일본인들의 짧은 기억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를 밀어준 일본인들이 그의 빗나간 역사인식이나 가치관에 동조한 게 아니라면 기억력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나 여성 등에 대해 극우 망언을 내뱉는가 하면 호화 외유, ‘도정을 사유화했다’는 비판 등의 기억들이 신타로의 일시적 제스처 앞에 망각돼버린 것이다.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 ‘선택적 기억력’ ‘짧고 불분명한 기억력’이라고 한 비판과도 비슷한 것이다. 낭만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들이지 않은가.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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