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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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없는 1등은 없다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7-04-18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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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치는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한국 정치는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이른바 승자 독식주의다.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이기기 위해, 1등을 위해 선거 때마다 목숨을 건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선택도 감행한다. 1997년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를 강행한 이인제 의원은 1등주의 정치문화의 산물이었다. 3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승자 독식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한나라당 일각에서 ‘경선불가론’이 퍼지고 있다. 특정 주자가 손 전 지사처럼 변칙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핵심 내용이다.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기자에게도 전달되는 것으로 보아 소문은 생각보다 널리 퍼진 모양인데, 이 경선불가론이 1등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대로 가면 질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가 배경에 깔렸기 때문이다.

    1등에게만 권력을 허락하는 한국 정치문화는 권력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정치인들의 변신도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치러지는 각 당의 경선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권력을 얻을 수 없는 2등도 하기에 따라선 정치적 가치를 취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승부에서 진 정치인이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는 원칙과 명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거머쥐게 된다. 국민은 이 원칙과 명분을 얻은 정치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역전당한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완주해 아름다운 2위를 차지했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모두 2위의 한계를 극복하고 1위에 올랐거나 근접한 자리까지 접근한 인물들이다.



    2등이 두려워 링에 오르지 않고 외곽을 빙빙 도는 범여권 대선 후보들이나 경선불가론에 휘말린 한나라당 인사들에게 YS나 정 전 의장의 2등 전략을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고 싶다. 2등 없는 1등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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