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uffing’(2007)
그는 전통적 도상의 형상과 색채를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전형을 흐트러뜨리고 규범을 파괴하며 기존의 의미체계를 교란한다. 그것은 이분법적 구분을 혼재와 혼융의 양상 속에서 재편하는 작업이다. 이 같은 이질적 요소들의 창의적 결합이야말로 비판적 시선의 동기이자 결론이다. 따라서 그것은 형상인식과 색채감각 모두가 서구적인 근대성에 포섭되는 상황에 대한 강력한 이의 제기다.
홍지연의 이러한 재구조화 작업은 전통 미학의 규범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생명체와 사물, 색면과 선의 요소 등을 거치며 종횡무진한다. 호랑이와 모란과 수탉, 연꽃과 색동 줄무늬가 부분적으로 결합해 전혀 다른 맥락을 만들어낸다. 이런 시도는 각각 다른 시점의 책가도(冊架圖)와 색동의 조합을 통해 매우 감각적인 색면 추상회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의 야심작 ‘레퀴엠’에 등장하는 검은 배경 위의 모란꽃은 부귀와 죽음의 동거를 통해 ‘화려한 죽음’이라는 역설을 성립시킨다. 그의 작업이 시각적 요소들의 재배치를 통해 감각적인 화면을 제공할 뿐 아니라 ‘비판적 사유와 열린 감성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Stuffed Flowers’(2006), ‘Butterfly’(2006), 모두 캔버스에 아크릴(왼쪽부터).
겉보기에 화려한 홍지연의 작품은 실은 음울한 회의와 도발적 상상을 동시에 내포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적 주체의 모습으로 경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착화한 시각체계를 교란하며 문화적 혼성을 제안하는 홍지연의 작업은 새로운 인지와 감성을 개발하는 융합의 장이다. 나아가 그것은 한국적 전통을 내세우며 스스로 전통을 박제화하고 타자화하는 구태의 시각을 뒤집는 행위다.
우리가 홍지연에게 동시대의 감성에서 나오는 낭랑한 내러티브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시대의 시각체계를 재검토하는 그의 성찰 태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7년 4월11~24일, 인사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