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의 성도(省都)인 쿤밍에서 가까운 석림.
‘1년에 겨우 며칠뿐인 휴가를 어디서 보낼 것인가’를 두고 꽤나 오래 고민했다. 이곳저곳 비교해보다 윈난성에 대해 설명을 듣자 당장 가보고 싶어서 안달 날 지경이 됐다. 26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곳, 중국 남쪽에 위치하지만 해발 2000m의 고산지대라 1년 내내 봄 날씨인 곳, 맑은 수로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과 때묻지 않은 자연, 호수와 만년설로 덮인 설산…. 열흘이면 충분한 배낭여행 일정이 나온다고 하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 등 일주일 코스로 딱!
우선 쿤밍에서 가까운 석림으로 향한다. ‘바위가 밀림을 이루고 있다’ 해서 석림이라 불린다는데, 과연 수많은 뾰족바위들이 넓은 지역에 걸쳐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바위 밀림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언덕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어느 외계의 별을 헤매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2억 년 전 이곳은 바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세월의 깊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석림에서 구향동굴로 가는 길은 염소 떼가 점령하고 있다. 냇가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있고, 아이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오리 떼가 몰려다닌다. 구향동굴은 무척이나 길고 아기자기하다. 굽이굽이 좁은 곳이 나왔다가 다시 넓은 곳이 나왔다가 또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아이코, 이제 다리가 아파오는걸’ 할 때쯤 동굴의 끝이 나온다.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배낭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쿤밍을 떠나 따리로 가기 위해 기차역 식당에 들렀다. 식당은 뭐랄까, 특이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식당 주인과 종업원이 서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선가 나타난 아기에게 ‘얼레리~’ ‘까꿍~’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종업원이나 주인이나 밥공기를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산만한 식당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더니 ‘한복을 입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대장금’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저녁을 먹고 오른 기차 안도 무척이나 시끌시끌하다. 침대기차지만 어느 누구도 곧장 잠을 청하지 않는다. 한동안 복도 의자에 앉아 이쪽에선 카드놀이를 하고 저쪽에선 온갖 음식을 꺼내 먹는다. 물론 술도 함께. 누가 더 크게 이야기하나 내기라도 하듯 고성이 오간다. 모두들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긴다. 나도 맥주 한 병 사서 함께 건배를 한다. “술 잘 마셔요? 노래 한 곡 불러봐요!” 내게 말은 거는 아저씨는 신이 났다. 아무튼 건배!
리장 마을에서 춤추는 사람들(오른쪽). 말을 타고 청산에 오르는 관광객들.
오후에는 물을 보러 간다. 바다만큼 넓다는 얼하이 호수. 가까운 전망대에 다녀오는 표가 무려 100위안. 너무 비싸서 안 사겠다고 하니 40위안까지 내려간다. 도대체 정가가 얼만지 궁금하다. 함께 배를 탄 중국인 관광객은 80위안을 냈다고 하니, 그나마 싸게 샀나 보다 하고 위안한다. 정말로 바다만큼 드넓은 호수 위로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황금빛 물결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구향동굴.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노래 부르기 전투’랄까, 한바탕 노래 경연대회가 열린다. 왼쪽에 모인 사람들이 큰 소리로 몇 구절 노래를 부른 뒤 ‘야써 야써 야야써’ 하며 마무리로 악을 쓰며 오른쪽 사람들 기를 죽인다. 그러면 오른쪽에 모인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뒤 주먹을 추켜올리며 ‘야써 야써 야야써! 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되다 한쪽에서 마땅한 노래를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면 반대쪽에서 ‘우~’ 하는 함성을 내지른다. 양쪽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나도 중국 노래를 안다면 어느 쪽에든 동참해보고 싶다. 어쩌다 이런 대결이 펼쳐지게 된 걸까?
따리에선 식당마다 ‘백족 음식’이라 쓰여 있더니 리장에는 식당마다 ‘나시 음식’이라 쓰여 있다. 나시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과 매우 닮았다. 나시볶음밥은 영락없는 김치볶음밥이고, 시엔차이(김치)도 있다. 과거 고구려의 후예가 이곳으로 건너왔다는 설이 있는데, 단순한 설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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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족 음식 중에는 ‘꾸차오미씨엔’이 유명하다. ‘다리 건너 쌀국수’라는 뜻인데, 그 유래가 재밌다. 한 학자가 긴 다리로 연결된 조용한 섬에서 공부했다. 그 부인이 식사 때마다 섬으로 음식을 운반해 갔는데, 섬에 도착할 즈음이면 항상 음식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닭 요리는 식지 않았다. 왜 그런가 봤더니 기름이 국물 표면을 덮고 있어 열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유래를 가진 닭고기 쌀국숫집이 따리에는 엄청 많다. 맛은 먹을수록 괜찮다.
중국의 음식 중 잊혀지지 않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꼬치다. 쇠고기·염소 고기· 닭 엉덩이 고기·파·돼지껍질·똥집·감자 등을 꼬치에 끼워 파는데, 1위안씩이다. 양꼬치가 가장 맛있다. 특이한 양념 때문에 입맛에 잘 맞지 않았지만, 한번 맛을 들이고 나니 지금도 자꾸만 그 맛을 다시 보고 싶다.
느긋하게 골목길 걸으며 쇼핑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옷, 중국차, 기념품 몇 가지를 산다. 흥정을 하면 부르는 값의 절반까지 내려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이곳에서 보내는 매 시간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다면 여행의 재미는 상당 부분 깎여나갈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