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은 이스라엘 현대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계속된 노동당 집권이 종결되고 리쿠드당이 새로이 집권정당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28일 실시된 선거의 결과로 2006년 또한 기억해야 하는 연도가 되었다. 노동당-리쿠드당의 양당체제가 깨지고 신당 카디마가 집권정당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제17대 크네셋(이스라엘 국회) 선거 결과는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신당 카디마의 집권과 리쿠드당의 몰락 △ 연금생활자당 등 군소정당의 약진 △낮은 투표율 등이다.
지난해 8월 집권정당이던 리쿠드당의 샤론 총리 주도로 ‘가자지구에서의 일방적 철수’가 강행됐다. 이에 대한 찬반을 놓고 리쿠드당은 내분에 휩싸였고, 결국 11월 샤론 총리가 탈당해 카디마당을 창당하는 분열을 겪었다.
양당체제에 리쿠드당 가세 3당체제로
원래 우파정당이었던 리쿠드당은 철수정책에 찬성하는 인사들이 카디마로 떨어져나감으로써 정치 스펙트럼에서 더욱 우측으로 이동했다. 철수정책에 찬성하는 리쿠드당 내 인사뿐 아니라 리쿠드당의 오랜 라이벌이자 좌파정당인 노동당의 중량급 인사들까지 카디마당에 합류해 스펙트럼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좌우파 인사들의 합류로 세를 불린 카디마는 창당 이후 계속된 여론조사에서 제1정당의 자리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기에 집권정당이 되리라는 것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노동당-리쿠드당의 양당체제가 카디마-노동당-리쿠드당의 3당체제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 예측대로 카디마당은 전체 120석의 크네셋 의석 중 28석을 획득해 제1당이 되었다. 노동당이 20석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리쿠드당은 11석을 얻는 데 그쳐 제5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샤론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이 떠난 리쿠드당은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이번 선거를 준비했다. 리쿠드당의 목표는 카디마가 주도할 중도좌파 연정 구성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수 확보였다. 이는 팔레스타인 측에 더 이상의 영토 양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3위로 나왔지만 2위 노동당과의 차이가 크지 않아 전 이스라엘 우파 유권자들의 결집을 호소하며 막판 뒤집기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더욱이 투표 마감 후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 참패가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장에 네타냐후 전 총리를 제외한 상당수 장관급 고위 공직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후 이들의 행보에 따라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리쿠드당의 몰락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이변은 연금생활자당의 약진이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에서는 선거 때마다 기존 정당 외에 급조된 군소 정당들이 출마를 선언한다. 이들 군소 정당은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사안에 대한 찬반을 정당 강령으로 채택해 현실 정치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98년 선거에서 이스라엘 내에 카지노 설립을 목적으로 출마한 ‘카지노당’이 대표적 예다. 물론 이러한 정당들은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해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해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어도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로는 연금생활자당도 이러한 부류에 속했다. 어떠한 여론조사도 이 정당의 의석 획득을 예견하지 못했다.
연금생활자당은 정부가 경제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노인에 대한 연금지급 규모를 줄이자 이에 반발해 노인복지 혜택 확대를 주장하는 노인들이 설립한 정당이다. 정당 대표인 79세의 라피 에이탄을 비롯해 대부분 정당원들은 노인들. 이 당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7석을 차지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에서 7석이면 연정에 참여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이 같은 성공은 연금생활자당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이 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명부에는 단 6명의 후보만 올라 있어 나머지 한 석은 아직 주인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선거로 총리로 부상하게 된 카디마당 대표 에후드 올메르트는 선거 직후 연정에 연금생활자당을 참여시킬 뜻을 밝혔다.
연금생활자당 대표 라피 에이탄의 경력도 이채롭다. 에이탄은 80년대까지 모사드 요원으로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 그는 유대인 600만 학살의 주역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10년 넘게 추적해 체포했고, 미 해군 정보부에 근무하던 조너선 폴라드를 포섭해 정보를 빼낸 장본인. 80년대 이후 에이탄은 각 정권의 안보 관련 보좌관으로 활동하다 은퇴해 개인사업으로도 성공했다.
이번 이스라엘 총선은 63.2%라는 역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아직은 투표율이 높은 편이지만 다른 민주주의국가들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이후 투표율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양당체제 아래서는 투표율이 낮으면 집권여당에 유리하나 여러 정당이 난립한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군소 정당에 유리하다. 군소 정당의 경우 지지층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결속력이 대형 정당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번 선거에서도 이 같은 정설이 그대로 적용됐다. 대형 정당인 카디마당, 노동당, 리쿠드당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 결과보다 2석에서 5석가량 의석수가 줄어든 반면, 종교정당인 샤스당이 13석으로 제3당이 되고 옛 소련 이민자를 지지기반으로 한 ‘이스라엘 베이테누(이스라엘은 우리 집)’당이 12석으로 제4당에 오르는 등 군소 정당의 의석수는 늘어났다. 연금생활자당의 약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국회선거가 실시된 3월28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는 지난 1월 실시된 팔레스타인 입법의회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하마스가 구성한 내각이 의회의 인준을 받았다. 카디마당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행은 웨스트뱅크 지역 내에 정착하고 있는 유대인 중 6만여 명을 철거시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디마당이 원내 1당이 되고 그 뒤를 좌파정당인 노동당이 받침으로써 이 정책의 시행을 위한 기본조건은 확보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이-팔 간의 점진적 관계 개선을 점치는 이들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중도우파 성향의 카디마와 이슬람원리주의 정당인 하마스가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공조체제를 갖출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3월28일 실시된 선거의 결과로 2006년 또한 기억해야 하는 연도가 되었다. 노동당-리쿠드당의 양당체제가 깨지고 신당 카디마가 집권정당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제17대 크네셋(이스라엘 국회) 선거 결과는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신당 카디마의 집권과 리쿠드당의 몰락 △ 연금생활자당 등 군소정당의 약진 △낮은 투표율 등이다.
지난해 8월 집권정당이던 리쿠드당의 샤론 총리 주도로 ‘가자지구에서의 일방적 철수’가 강행됐다. 이에 대한 찬반을 놓고 리쿠드당은 내분에 휩싸였고, 결국 11월 샤론 총리가 탈당해 카디마당을 창당하는 분열을 겪었다.
양당체제에 리쿠드당 가세 3당체제로
원래 우파정당이었던 리쿠드당은 철수정책에 찬성하는 인사들이 카디마로 떨어져나감으로써 정치 스펙트럼에서 더욱 우측으로 이동했다. 철수정책에 찬성하는 리쿠드당 내 인사뿐 아니라 리쿠드당의 오랜 라이벌이자 좌파정당인 노동당의 중량급 인사들까지 카디마당에 합류해 스펙트럼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좌우파 인사들의 합류로 세를 불린 카디마는 창당 이후 계속된 여론조사에서 제1정당의 자리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기에 집권정당이 되리라는 것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노동당-리쿠드당의 양당체제가 카디마-노동당-리쿠드당의 3당체제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 예측대로 카디마당은 전체 120석의 크네셋 의석 중 28석을 획득해 제1당이 되었다. 노동당이 20석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리쿠드당은 11석을 얻는 데 그쳐 제5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샤론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이 떠난 리쿠드당은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이번 선거를 준비했다. 리쿠드당의 목표는 카디마가 주도할 중도좌파 연정 구성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수 확보였다. 이는 팔레스타인 측에 더 이상의 영토 양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3위로 나왔지만 2위 노동당과의 차이가 크지 않아 전 이스라엘 우파 유권자들의 결집을 호소하며 막판 뒤집기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더욱이 투표 마감 후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 참패가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장에 네타냐후 전 총리를 제외한 상당수 장관급 고위 공직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후 이들의 행보에 따라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리쿠드당의 몰락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이변은 연금생활자당의 약진이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에서는 선거 때마다 기존 정당 외에 급조된 군소 정당들이 출마를 선언한다. 이들 군소 정당은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사안에 대한 찬반을 정당 강령으로 채택해 현실 정치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98년 선거에서 이스라엘 내에 카지노 설립을 목적으로 출마한 ‘카지노당’이 대표적 예다. 물론 이러한 정당들은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해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해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어도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로는 연금생활자당도 이러한 부류에 속했다. 어떠한 여론조사도 이 정당의 의석 획득을 예견하지 못했다.
연금생활자당은 정부가 경제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노인에 대한 연금지급 규모를 줄이자 이에 반발해 노인복지 혜택 확대를 주장하는 노인들이 설립한 정당이다. 정당 대표인 79세의 라피 에이탄을 비롯해 대부분 정당원들은 노인들. 이 당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7석을 차지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에서 7석이면 연정에 참여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이 같은 성공은 연금생활자당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이 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명부에는 단 6명의 후보만 올라 있어 나머지 한 석은 아직 주인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선거로 총리로 부상하게 된 카디마당 대표 에후드 올메르트는 선거 직후 연정에 연금생활자당을 참여시킬 뜻을 밝혔다.
연금생활자당 대표 라피 에이탄의 경력도 이채롭다. 에이탄은 80년대까지 모사드 요원으로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 그는 유대인 600만 학살의 주역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10년 넘게 추적해 체포했고, 미 해군 정보부에 근무하던 조너선 폴라드를 포섭해 정보를 빼낸 장본인. 80년대 이후 에이탄은 각 정권의 안보 관련 보좌관으로 활동하다 은퇴해 개인사업으로도 성공했다.
이번 이스라엘 총선은 63.2%라는 역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아직은 투표율이 높은 편이지만 다른 민주주의국가들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이후 투표율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양당체제 아래서는 투표율이 낮으면 집권여당에 유리하나 여러 정당이 난립한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군소 정당에 유리하다. 군소 정당의 경우 지지층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결속력이 대형 정당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번 선거에서도 이 같은 정설이 그대로 적용됐다. 대형 정당인 카디마당, 노동당, 리쿠드당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 결과보다 2석에서 5석가량 의석수가 줄어든 반면, 종교정당인 샤스당이 13석으로 제3당이 되고 옛 소련 이민자를 지지기반으로 한 ‘이스라엘 베이테누(이스라엘은 우리 집)’당이 12석으로 제4당에 오르는 등 군소 정당의 의석수는 늘어났다. 연금생활자당의 약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국회선거가 실시된 3월28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는 지난 1월 실시된 팔레스타인 입법의회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하마스가 구성한 내각이 의회의 인준을 받았다. 카디마당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행은 웨스트뱅크 지역 내에 정착하고 있는 유대인 중 6만여 명을 철거시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디마당이 원내 1당이 되고 그 뒤를 좌파정당인 노동당이 받침으로써 이 정책의 시행을 위한 기본조건은 확보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이-팔 간의 점진적 관계 개선을 점치는 이들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중도우파 성향의 카디마와 이슬람원리주의 정당인 하마스가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공조체제를 갖출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