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초회.
맛있는 음식을 내는 식당이야 왜 없겠는가. 나도 잘 안다. 일본에서도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일식을 내는 식당이 이 땅에 있으며, 황토밭에 잔설 남아 있듯 하얀 지방질이 붉은 살코기에 켜켜이 박혀 씹는 건지 녹는 건지 알 길 없는 최상의 쇠고기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문제다. 한 접시에 20만원이 넘는 회나 갈비 한 대에 6만원 하는 쇠고기를 두고 ‘맛있다’고 추천하면 나는 더 큰 야단을 들을 것이다. 이런 ‘최고급’(가격에서!) 식당들은 맛없으면 욕해야 할 집들이지 맛있다고 추천할 집들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음식 맛은 재료에서 판가름이 난다. 좋은 재료로 맛 내는 일은 쉽지만 나쁜 재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반의 성공’만 이룰 뿐이다. 그러면 “좋은 재료를 골라 음식을 내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이 재료의 가격 차이란 게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령 광어 한 마리만 놓고 보더라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식당에 도매로 팔리는 광어가 그 질에 따라 다섯 배는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음식점 추천을 하려면 이런 것도 따져야 하는 것이다. ‘음, 한 접시에 20만원짜리 회인데 광어는 최상급이 아냐. 주방장이 칼질을 잘하든 못하든 이 집은 아니야. 돈이 얼만데…. 음, 한 접시에 2만원짜리 광어회인데 적어도 3kg는 됨직한 광어를 썼군. 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주인이 물건 사오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네. 그래, 일단 점수 줬다’ 이런 식으로.
내가 찾는 식당들은 극히 서민적인 곳들이다. 비싼 음식일수록 맛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나 그 돈 주고 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은 것이다. 재벌도 갈 수 있고 재벌집 운전기사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식당, 그중에 맛있는 식당, 이런 식당들이 너무 없어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집사람과 밤마실이 잦다. 일산이 ‘외식 천국’이라고 하지만 둘이서 가볍게 술 한잔 하면서 요기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외식 트렌드의 경연장이라는 라페스타를 헤매다 참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일본라면 전문점이라 해서 라면만 파나 했더니 자잘한 안줏거리도 있고 마실 만한 술도 있다. 가격도 만족스럽다. 비싸야 1만원 내외다.
사진은 6000원짜리 고등어초회다. 주인장에게서 추천받은 메뉴다. 짜릿한 게 숙성 솜씨가 있다. 잘 차린 일식집에서만 먹다 이런 조그만 선술집에서 대하니 더 맛깔스러웠다. 이어 1만원짜리 꼬치(오뎅)를 먹었는데 약간 육중한 듯하면서 달지 않은 국물에 내용물도 실했다. ‘이거, 요리 솜씨가 장난 아닌데’ 하면서 배가 이미 불렀지만 시험 삼아 크로켓(5000원이었나 6000원이었나)을 시켰는데 이도 합격점이다. 돼지고기 누린내를 잡았고, 튀김옷에 개운하고 달콤한 채소 향이 확 풍긴다.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주인과 잠시 방담을 나누었는데 라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방송에도 몇 차례 나가 라면 요리 솜씨를 뽐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방 위에 방송 출연 사진을 걸어놓았다. ‘에이, 이 집도 언론 플레이 하는 곳인가’ 하고 마이너스 점수 주고 나오는데 문밖에는 방송 출연했다는 어떤 표시도 없다. 이런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가슴까지 따뜻해진다. 다음엔 라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상호가 ‘담뽀뽀’인데 한글보다 일본어가 커서 먼저 눈에 들어온다. 라페스타 공영 제4주차장 바로 곁에 있다. 전화 031-903-0757.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 담뽀뽀는 일본어로 민들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