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4

..

고기 먹은 후 밥 먹는 편견을 버려!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입력2004-02-27 13: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기 먹은 후 밥 먹는 편견을 버려!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서 함께 식사를 하면 훨씬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주제들이 지면에 등장했지만 아직 다루지 않은 것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깃집’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한식당, 한식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고깃집 말이다.

    고깃집에 대해 얘기하자니 평소 느꼈던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왜 밥을 나중에 먹을까? 원래 우리 식습관은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것인데….’ 고깃집에서 냉면을 먹을 때도 대부분 고기를 구워 먹은 다음에 먹는다. 당연히 밥을 먹을 때도 ‘등심 4인분 먹은 뒤 된장찌개와 밥 3공기’를 주문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만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과 함께 고깃집에 가서 배부르게 고기를 먹은 뒤 “식사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놀라 뒤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먹은 고기는 식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만큼 우리 고깃집 문화는 독특하다.

    고깃집에 가면 보통 밑반찬이 가장 먼저 나온다. 상추, 깻잎, 고추, 김치, 깍두기, 과일 샐러드, 된장 등등….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식사를 시작한다. 고기가 나오면 상추에 고기를 얹고 된장을 발라 싸 먹는다. 물론 그냥 고기만 먹는 사람도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기 때문에 더 많이 먹기 위해 치열한 경쟁도 벌어진다. 예전에 한 친구가 “회식 장소로 고깃집에 갔을 때 가장 미운 사람은 고기만 한꺼번에 두세 점씩 집어 먹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웃은 적이 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이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잔뜩 고기를 먹은 후 또 ‘식사’를 하는 것이다.

    ‘식사’가 나중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보니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고기의 순수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있고, 고기를 더 많이 먹게 하기 위한 상술 때문에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서양식 코스 요리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약속 장소를 고깃집으로 정하면 사람들이 제 시간에 모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습관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들어오는 대로 고기를 구워 먹은 뒤 다 모이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중식이나 양식을 먹을 경우 나중에 온 사람은 식사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모두 알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고기를 다 먹은 후 ‘식사’를 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깃집에 가면 고기와 냉면을 같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확실히 고기를 덜 먹게 되고, 고기의 느끼함을 시원한 냉면으로 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독특하게 먹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팥빙수를 먹을 때는 얼음과 팥을 섞지 않고 얼음 따로 팥 따로 먹는다. 자장면도 자장에 비비지 않고 그냥 먹을 때가 많다. 면 따로, 자장 따로 먹어 입안에서 섞는 것이다. 예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자장과 면을 섞는 시간도 아까워 그렇게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괜찮아 가끔 그렇게 먹는다. 면만 먹으면 혀가 심심하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면 자장을 조금 공급하는 식이다. 이렇게 먹을 경우 확실히 자장을 덜 먹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은 동시에 먹느냐 시간을 두고 따로 먹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 고깃집에서 주문할 때 밥과 된장찌개를 미리 달라고 해보자. 그러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볼 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쓰면 고기를 훨씬 적게 먹게 된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면 “집에서는 원래 이렇게 먹지 않느냐”고 당당히 말하면 된다.

    고기 먹은 후 밥 먹는 편견을 버려!

    회식 때 식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고기 먼저, 밥 나중에’라는 식습관이 생겼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느끼하지 않은 맛으로 인기가 높은 허브 삼겹살.(왼쪽부터)

    고깃집은 다 똑같을 것 같지만 고기 맛은 식당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차이는 고기의 산지, 숙성 정도, 그리고 어떻게 썰었느냐 등에 따라 생기는 것 같다. 고깃집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단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강북인지 강남인지에 따라 맛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강남은 다소 깔끔하고 가벼운 맛을 좋아하는 반면, 강북은 좀더 전통적이고 중후한 맛을 선호한다. 그래서 강남에 살지만 식사는 강북에 가서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전에 요리전문잡지 ‘쿠켄’에 고깃집만을 따로 분류한 평가가 실린 적이 있는데 당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버드나무집’이었다.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우래옥’을 비롯한 많은 유명 고깃집들이 맛은 좋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느낌이 든다. 가격이 싼 대신 맛이 수준 이하인 곳도 많다. 문제는 적당한 가격을 매긴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비싸거나 너무 싸거나 둘 중의 하나다. 비싸도 비쌀 만하다고 느껴지는 고깃집이 거의 없다.

    전체적으로 고깃집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맛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비싼 가격을 받으려면 식당 인테리어, 종업원의 서빙 능력 등에서도 일류 레스토랑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식이 세계화되려면 고깃집 경영자의 마음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