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미국의 무디스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높여, 일본이 서방선진 7개국 중 신용이 가장 낮은 나라로 전락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일본 관방상은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라며 항의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지금의 초라한 일본 경제를 보면 인간사의 새옹지마를 보는 듯하다.
불과 10년 전에 벌어졌던 장면으로 돌아가보면 그 같은 새옹지마의 격세지감이 실감난다. 90년대 초, 미국 전역 극장가 앞에서는 일본인들의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불씨는 새로 개봉된 영화 한 편에서 비롯됐다. 문제의 영화는 우리나라에 ‘떠오르는 태양’이란 직역 제목으로 소개됐던 ‘라이징 선’(Rising Sun)이라는 작품.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한 이 영화의 무엇이 그토록 일본인들로 하여금 강한 반발을 부르게 했을까. 기업 인수와 관련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 사상 가장 노골적인 반일감정을 드러낸 영화였다.
LA의 ‘나카모토’라는 일본 기업체 내에서 한 백인 여성이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일본인은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악한으로 묘사된다. 형사로 분한 주연 배우 숀 코널리는 일본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대사를 수시로 내뱉는다.
“저놈은 대일무역협상위원을 하다가 일본에 붙었어.”
이런 영화에 일본인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시위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아시아계까지 가세했다. 일본시민연맹 등은 이 영화가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며 극장 앞에서 규탄 시위를 가졌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삼류 공상물 ‘데몰리션 맨’에서도 대일 반감이 물씬 풍긴다. 배경이 된 미래의 LA는 빅브라더에 의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 그런데 이처럼 암울한 미래의 지배자들은 모두 일본풍 옷을 입고 있다. 미국 영화에 이처럼 지독한 일본 피해의식이 등장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반일무드의 원천은 무엇이었나. 그 근저에는 할리우드의 ‘일본 때리기’라는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기업의 ‘바이 아메리칸’, 특히 ‘바이 할리우드’에 대한 불안감과 방어심리였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90년대 초는 일본 경제의 절정기. 일본 기업이 대대적인 ‘미국 기업 사냥’에 나서던 때였다. 특히 상징적이었던 것은 잇따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인수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GM 등 자동차 3사가 제조업의 상징이라면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서비스 부문의 대표 선수격이다. 그런 회사들이 줄줄이 일본에 넘어갔다. 89년에는 소니가 컬럼비아사를 사들여 충격을 주더니 이듬해에는 MCA가 마쓰시타에 넘어갔다. “미국의 혼(컬럼비아)이 팔렸다”는 당시 미 언론 헤드라인에서 충격의 강도가 엿보인다. ‘라이징 선’과 ‘데몰리션 맨’이 비(非)일본계 메이저인 20세기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작품이라는 것도 이런 사정을 짐작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반일무드 뒷면엔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겐 일본의 ‘경제침략’은 제2의 진주만 공격이었던 것이다.
‘라이징 선’(일본)과 ‘날개 꺾인 독수리’(미국).
그러나 10년 만에 모든 것은 뒤집어졌다. 미국도 호황이 끝나 회복을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벼랑으로 떨어진 일본의 처지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컬럼비아사와 MCA가 미국인에게 회수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래서인가. ‘일본 때리기’ 영화가 자취를 감춘 것도 공교롭게 같은 시기다.
일본 관방상은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라며 항의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지금의 초라한 일본 경제를 보면 인간사의 새옹지마를 보는 듯하다.
불과 10년 전에 벌어졌던 장면으로 돌아가보면 그 같은 새옹지마의 격세지감이 실감난다. 90년대 초, 미국 전역 극장가 앞에서는 일본인들의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불씨는 새로 개봉된 영화 한 편에서 비롯됐다. 문제의 영화는 우리나라에 ‘떠오르는 태양’이란 직역 제목으로 소개됐던 ‘라이징 선’(Rising Sun)이라는 작품.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한 이 영화의 무엇이 그토록 일본인들로 하여금 강한 반발을 부르게 했을까. 기업 인수와 관련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 사상 가장 노골적인 반일감정을 드러낸 영화였다.
LA의 ‘나카모토’라는 일본 기업체 내에서 한 백인 여성이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일본인은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악한으로 묘사된다. 형사로 분한 주연 배우 숀 코널리는 일본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대사를 수시로 내뱉는다.
“저놈은 대일무역협상위원을 하다가 일본에 붙었어.”
이런 영화에 일본인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시위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아시아계까지 가세했다. 일본시민연맹 등은 이 영화가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며 극장 앞에서 규탄 시위를 가졌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삼류 공상물 ‘데몰리션 맨’에서도 대일 반감이 물씬 풍긴다. 배경이 된 미래의 LA는 빅브라더에 의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 그런데 이처럼 암울한 미래의 지배자들은 모두 일본풍 옷을 입고 있다. 미국 영화에 이처럼 지독한 일본 피해의식이 등장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반일무드의 원천은 무엇이었나. 그 근저에는 할리우드의 ‘일본 때리기’라는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기업의 ‘바이 아메리칸’, 특히 ‘바이 할리우드’에 대한 불안감과 방어심리였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90년대 초는 일본 경제의 절정기. 일본 기업이 대대적인 ‘미국 기업 사냥’에 나서던 때였다. 특히 상징적이었던 것은 잇따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인수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GM 등 자동차 3사가 제조업의 상징이라면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서비스 부문의 대표 선수격이다. 그런 회사들이 줄줄이 일본에 넘어갔다. 89년에는 소니가 컬럼비아사를 사들여 충격을 주더니 이듬해에는 MCA가 마쓰시타에 넘어갔다. “미국의 혼(컬럼비아)이 팔렸다”는 당시 미 언론 헤드라인에서 충격의 강도가 엿보인다. ‘라이징 선’과 ‘데몰리션 맨’이 비(非)일본계 메이저인 20세기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작품이라는 것도 이런 사정을 짐작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반일무드 뒷면엔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겐 일본의 ‘경제침략’은 제2의 진주만 공격이었던 것이다.
‘라이징 선’(일본)과 ‘날개 꺾인 독수리’(미국).
그러나 10년 만에 모든 것은 뒤집어졌다. 미국도 호황이 끝나 회복을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벼랑으로 떨어진 일본의 처지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컬럼비아사와 MCA가 미국인에게 회수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래서인가. ‘일본 때리기’ 영화가 자취를 감춘 것도 공교롭게 같은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