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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쪽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도 자살폭탄 공격이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말이 인티파다(intifada·봉기)지, 20개월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는커녕 정치·경제적으로 골병만 들었다. 아리엘 샤론의 밀어붙이기식 무단(武斷)정책 탓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그들의 깊은 절망을 숨기지 않았다.
카페서도 보안요원 고용 손님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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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 여자 보안요원으로부터 10분 동안 왜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등등 시시콜콜한 물음에 일일이 대꾸해 주어야 했다. 걸핏하면 벌어지는 자살폭탄 테러공격 때문일지는 몰라도 필자 눈에는 어리석은 질문들로 비쳐졌다. “테러리스트가 무기를 지닌 채 비행기를 타고 와 이스라엘 공항을 폭파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냐”는 필자의 되물음에 그녀는 메마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입국자들에 대한 보안요원들의 이런 물음은 일종의 심리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훈련이 잘된 노련한 테러리스트라면 그런 심리전에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숙소에 도착한 뒤 TV를 켜자마자, 텔아비브 인근의 리숀레치온 지역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온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범인은 이제 겨우 16세 된 팔레스타인 소년이었다. 20개월을 넘긴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기간중 가장 어린 자살폭탄 공격자다. 팔레스타인 쪽의 깊은 절망과 증오는 10대 청소년과 여자들마저 허리춤에 폭탄을 차고 나서게 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이튿날엔 텔아비브 나이트클럽을 향해 돌진하는 폭탄차량 운전자를 향해 경비원이 총을 쏴 저지한 일도 일어났다.
이런 잦은 폭탄공격 사건으로 이곳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종의 ‘테러강박증’(신경과민)에 걸릴 지경이다. 필자가 묵은 호텔 지배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레스토랑이나 백화점, 극장 같은 곳엔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루살렘 중심가인 야포 거리의 한 카페에선 두 달 전 자살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임산부가 죽은 일도 있었다. 그 카페를 물어 찾아가 보니, 50대 후반의 유대인 사장은 손님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보안요원 한 사람을 고용해 입구에 세워두고 있었다. 이른바 ‘영업외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 카페뿐 아니라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 슈퍼마켓, 나이트클럽 등 대중이 많이 드나드는 곳엔 어김없이 권총 찬 사설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은 테러 공포, 유혈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 경제에 주름살이 깊어가고 있다. 군사 부문의 과다한 지출은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쳐 이미 1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올 들어 10%를 넘어섰고, 화폐(이스라엘 세켈)가치도 1년 사이에 20% 가량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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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실리적인 잣대로 볼 때 어떻게든 지금의 정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고 있다. 자페 전략문제센터(텔아비브대학 부설) 부소장 에프라임 캄 교수는 “보안문제에 관한 한 많은 지식인이 샤론 총리의 정책을 지지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강공책이 유효할지에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주름살 가운데 하나가 관광산업의 몰락이다. 지금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내 호텔은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다. 특급호텔 이스로텔은 예루살렘 중심가에 자리잡은 까닭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 직후인 2000년 10월, 이스라엘 정부가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날마다 브리핑하는 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현재 예루살렘 내 호텔들의 객실 평균 점유율은 6%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관광협회의 한 실무자는 “지금까지 문을 닫지 않고 버텨온 호텔들도 심각하게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한다. 중동 유혈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관광객의 발길은 끊어질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쪽 호텔 사정도 험악하기는 마찬가지다. 필자가 묵었던 가자 시내 한 호텔은 객실이 100실 규모인데, 손님은 필자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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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티파다가 일어나기 전 하급 단순노동자든 숙련공이든 이스라엘에서 취업했던 14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다. 가자지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경제무역부의 한 실무자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의 기준으로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 두 명 중 한 명이 절대빈곤 상태다”고 어려운 사정을 전한다. 국제적 기준의 절대빈곤은 5인 가족이 하루 10달러(1인 2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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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예루살렘뿐 아니라 필자가 둘러본 서안지구 나블러스, 라말라, 헤브론, 예닌, 그리고 가자지구 곳곳 도로를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막은 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었다. 이런 통제정책을 두고 팔레스타인 온건파 지식인의 한 사람인 하산 카티브(동예루살렘 미디어센터 소장)는 “이스라엘이 우리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집단적인 징벌이자 학대”라고 규정한다. 카티브도 라말라에 갇혀 출근조차 못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한 달 가까이 펼쳐졌던 이스라엘군의 방벽작전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아라파트를 집무실에 가두고 서안지구를 사실상 재점령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군의 방벽작전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가한 물리적 충격은 엄청나 보였다. 서안지구 곳곳에 널려 있는 파괴현장들이 이를 말해준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갇혀 지낸 라말라 집무실 주변, 팔레스타인 보안군이 거주한 건물들은 보기에 딱한 모습으로 허물어졌다.
이스라엘군은 그 뒤로도 서안지구 도시들을 번갈아가며 일시적 점령과 퇴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방벽작전으로 일단 재점령의 전례를 만든 이스라엘 쪽은 언제든 필요에 따라 팔레스타인 거점들을 재점령할 ‘무료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쪽의 테러공격을 막으려면, 방벽작전의 연장선상에서 공격적인 방어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게 우리 군의 판단이다”는 주장이다.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만일 우리의 군작전이 비효율적이라 판단되면 좀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작전을 펼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문제는 그런 재점령-강공책을 편다 해도 이른바 ‘테러의 하부구조’(terrorist infrastructure)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없거니와, 이스라엘의 국제적인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