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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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 박힌 축구화 규정은 있을까 外

  • < 자료 : 지적 쾌락의 세계 와우밸리(www.wowvalley.com) >

    입력2004-10-12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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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 박힌 축구화 규정은 있을까 外
    축구화 밑바닥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징(stud)이 박혀 있다. 미끄럼을 방지할 뿐 아니라 태클 수비를 할 때는 위협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징이 박힌 축구화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1880년대 영국에서 잉글랜드 노동자 팀이 석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신사복을 입고 축구를 했다. 또 축구화가 따로 없어 평상화를 신고 경기를 했다.

    1930년대 축구화는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부츠처럼 목을 길게 디자인하고 징을 박는 경우가 있었다. 현대식 축구화, 즉 발목이 없고 여러 개의 징이 달려 있으며 징을 교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축구화는 1954년 아디다스사가 개발한 것이다. 독일팀은 이 축구화로 무장하고 그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이때부터 축구화와 징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축구 역사에 비해 징 박힌 축구화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반드시 징이 달린 축구화를 신어야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징이 있는 축구화가 필수는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규정집을 보아도 장비에 신발이 포함될 뿐, 징이 몇 개 달린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공인구가 나오기 전에 축구공은?



    축구공은 중세시대 이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바뀌었다.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은 공, 동물 가죽에 털을 넣은 공, 새끼줄로 말아 만든 공 등 지역마다 축구공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가 1872년 영국축구협회가 축구공은 가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면서 가죽공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30년 제1회 월드컵 때만 해도 공의 규격이 나라마다 달랐다. 이 대회의 결승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서로 자기 나라 공을 쓰겠다고 우겼고, 결국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인구를 선정하는 것도 이런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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