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탄생은 1839년. 그러니까 150년 전의 역사는 글과 그림으로만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초기 사진도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지금 수준의 기록은 힘들었다. 현재와 같은 사진에 가까워진 것은 19세기 후반. 그때부터 ‘영상으로 기록된 세계’는 인쇄를 통해 유통되며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세계는 탐험가와 고고학자가 찍어온 사진을 보며 식민지를 개척하러 떠나기도 했고, 처참한 전쟁터의 사진을 보며 전쟁에 반대하기도 했다.

영국의 사진편집자 브루스 버나드(Bruce Bernard)가 편집한 ‘세기’(‘Century’, Bruce Bernard 저. 영국 Phaidon 출판사 1999년 발행)는 진보와 퇴보, 고통과 희망의 20세기를 1100여장의 사진으로 증언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세계 각국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방문하며 이 책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제작을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보다 지난 30년 이상을 영국의 ‘더 선데이 타임스 매거진’ ‘새터데이 인디펜던트 매거진’ 등에서 픽사진편집자와 비주얼 아트디렉터로 일해온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이 흔히 역사를 다루는 사진집이 갖는 두 가지 문제점―사진을 자료 그 자체로만 보는 시각과 너무 작품 위주로 전개시키는 것―을 극복한다.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도 10여장 있다.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의 것으로 한국전쟁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52년 미국의 유명한 여류 사진기자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촬영한 사진. 한국군이 공산게릴라의 목을 도끼로 자른 뒤 자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책에 있는 사진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으로, 전쟁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가지 안타까움은 사진을 찍고 편집한 사람의 시각이 서구인의 시각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 전쟁터에서 사진기자가 양쪽을 오가며 취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한쪽에서 받은 취재허가로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많은 사진들은 대부분 한쪽에서 기록되고 보관되어진 역사다. 기록마저도 결국 힘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작업임이 여실히 느껴진다.